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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은 문화다 내 얘길 담은

10년 전쯤 드렁큰 타이거는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로 성난 포효를 시작했다. “우리가 모두의 귀를 확실하게 바꾸어 줄게”라며 “음악 같지 않은 음악들”에 던지는 선전포고는 당당했지만, 그 노랫말은 비주류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힙합은 마이너였고, 매니어들의 것이었고, 왠지 거칠어 보이고 불순해 보이는 무엇이었다. 보수적인 중년층에게 멜로디 없이 중얼거리는 랩과, 지지직 긁어대는 레코드 소리와, 남의 음악들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 후렴구로 쓰는 ‘노래 같지 않은 노래’가 제대로 된 음악으로 보일 리 없었다.

“껄렁한 애들이나 듣는 음악”쯤으로 힙합을 치부했던 어른들이라면 오늘 한국에서 펼쳐지는 힙합 붐에 당혹스러울지 모른다. 드렁큰 타이거가 야심 차게 내놓은 2CD 앨범 8집은 무려 10만 장의 판매량을 눈앞에 두고 있다. 힙합계뿐 아니라 가요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수위를 다투는 판매 실적이다.

최고의 예능 프로 ‘무한도전’을 통해 타이거 JK는 자동차, 패션CF가 쏟아지는 아이돌 스타 못잖은 인기인이 됐다. 리쌍의 길, DJ DOC의 이하늘 등 대책 없는 자유 영혼들은 대중을 웃긴다. 한국 힙합은 예전 10대들의 뮤직쇼에서 아이돌 그룹의 말랑말랑한 댄스나 발라드의 간주를 때우는 추임새로서의 랩 수준에서 벗어나 대중음악의 당당한 주류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30~40대는 쏟아지는 힙합 리듬과 랩을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흥겨워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흐르자 닫혀 있던 중년들의 귀가 열린 것이다.

이쯤 되면 ‘도대체 힙합이 뭐지’ 하는 궁금증이 생겨날 만하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힙합 신을 대표하는 세 팀, 즉 드렁큰 타이거(타이거 JK)와 다이나믹 듀오, 에픽하이에게 물었다. 중년들에게는 아직은 낯선, 그러나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부르는 힙합의 정체에 대해.

-그러니까, 힙합이란 게 뭔가.
“흔히 힙합의 핵심 요소로 랩과 디제잉, 비보이를 말한다. 랩이란 말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디제이는 음악 샘플링을, 비보이는 댄스다. 거기에 그라피티 같은 거리 문화까지가 힙합 문화의 핵심이다. 1980년대 흑인 빈민가에서 디제이들이 기존의 음악들 중 비트만 모아 틀고 춤을 추며 여기에 자신의 일상생활들을 소재로 랩을 하며 힙합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 랩 속에는 기존의 매끈한 대중음악들이 담아내지 못했던, 과감하면서도 세밀한 ‘나만의 이야기’들이 담겼다. 이유 없이 자기를 노려보는 경찰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적인 문제들까지.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한 표현방법이며, 그 주제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메시지 전달 도구가 힙합이다.”(타이거 JK)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기존의 대중음악이라면, 뮤지션들이 자신이 내뱉고 싶은 이야기들을 거리낌없이 들려주는 것이 힙합의 핵심이다. 멜로디나 보컬이 없어도 리듬과 메시지만으로도 음악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형식 역시 힙합의 혁신적인 점이다.(다이나믹 듀오)

“힙합은 오늘날 미국의 가장 주류적인 대중문화와 라이프 스타일 그 자체다. 발라드풍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은 없지만 힙합풍의 의상, 헤어, 말투는 있다. 음악적으로는 힙합은 잘하든 못하든 자기 음악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문 작곡가가 노래와 작사를 다 해주고 가수는 노래만 부르는 그런 건 힙합에서는 진짜로 쳐주지 않는다.”(에픽하이)


-힙합은 미국 흑인의 하위 문화의 어두운 이질감, 샘플링에 대한 편견, 한국말로 하는 랩에 대한 어색함 등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오랫동안 받아야 했다. 그런 시대를 거쳐 현재 대중문화 전면의 주류로 부상하게 됐다.
“힙합이 가지고 있는 진화의 가능성 때문이다. 디스코에서부터 펑크, 발라드, 최근의 일렉트로닉까지 힙합은 모든 장르를 포용하면서 음악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기 때문에 생존력을 가질 수 있었다. 토크를 중심에 둔 노래 속에는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넘쳐났고 그 속의 신선함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국내에서도 10여 년 동안 수많은 시도와 방법론이 생겨나면서 한국말의 가사도 플로(flow)를 잘 탈 수 있게 됐다.”(타이거 JK)

“갱스터랩 같은 거친 메시지를 담은 자극적인 힙합들이 음악적으로 가치 있는 것보다 미디어의 주목을 더 받으면서 편견이 생겨난 것 같다. 그러나 힙합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거침보다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신나게 만들어 주는 것에 있다. 미국에서 힙합이 수입된 후 테크닉적인 것을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적인 힙합이 꾸준히 연구되면서 전달력이 놀랍도록 향상됐다. 힙합을 하면서 깨달은 건 한글이 랩으로 듣기 좋은 우수한 언어라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걸 인정한다. 중국말, 일본말로 만들어진 힙합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다이나믹 듀오)

“샘플링 때문에 힙합이 오리지낼리티를 의심받아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대중문화는 기존의 것들을 리믹스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탄생시켜 왔다. 힙합의 샘플링은 하나의 예술 영역이다. 옛날부터 있었던 소리를 재편성하는, 말하자면 ‘음악 고고학’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에픽하이)

-당신이 들려주고 보여 주고 싶은 힙합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새 앨범을 내면서 나는 ‘귀로 듣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나의 작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모여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금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 같은 시시한 주제에서부터 내 삶의 은인의 죽음과 아들의 탄생, 나의 병이 가져다준 고통, 희로애락, 생로병사… 그렇게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이 나의 힙합이다.”(타이거 JK)

“힙합음악이 얼마나 신나는 것인가 하는 걸 보여 주고 싶다. 같이 들으며 춤추면 속옷까지 젖을 만큼 흥겹게 만들어 주는 것이 다이나믹 듀오의 힙합이다.”(다이나믹 듀오)

“직설적이고 신선한 가사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여러 가지 주제로 만들어진 사랑 노래에서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힙합이 무엇보다 재미있고 즐거운 음악이라는 것, 나이와 상관없이 흥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에픽하이)

-힙합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 혹은 제대로 힙합을 들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국내외 음악을 추천해 달라.
“어렸을 때 NWA라는 뮤지션의 노래를 듣고 그 시적이면서도 솔직한 가사에 충격을 받았다. 미국 뮤지션들로는 A Tribe Called Quest, De La Soul, 라킴, Nas, Slick Rick 등을 열심히 들었다. 한국 뮤지션은 한두 팀만 꼽기 정말 어렵지만 완벽한 재능의 다이나믹 듀오, 중년층에는 리쌍, 그리고 언더그라운드의 가리온과 소울컴퍼니 등을 추천하고 싶다.”(타이거 JK)

“초심자라면 에어로 스미스 등 귀에 익은 옛 명곡들을 샘플링해 넣은 곡들로 부담 없이 접근해 볼 수 있다. 정통 힙합 앨범은 아니지만 R&B에서 힙합까지 흑인음악을 총망라한 로린 힐의 명반 ‘Miseducation of Lauryn Hill’도 힙합 리듬에 귀를 틔우는 데 좋다.”(다이나믹 듀오)

“Nas의 앨범 ‘Illmatic’은 랩으로 쓴 시문학이다. 한국 앨범이나 노래로는 우리 에픽하이 정규 앨범들, 다이나믹 듀오 전신 CB MASS 2집, 드렁큰 타이거 3집, 리쌍 2집, DJ DOC 5집, 싸이의 연예인 등을 꼽고 싶다.”(에픽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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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