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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몽골 소년 ‘농구는 우리들의 솔롱고스’

이성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에서 온 소년들이 한국에서 농구 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동국대 농구팀의 이성(19)과 이용(18)은 몽골 출신이다. 이들의 외모는 함께 뛰는 동료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농구 선수들과는 다른 사연을 갖고, 또 다른 꿈을 안은 채 땀을 흘리고 있다.

3일 동국대 체육관에서 이용을 만났다. 대부분의 운동 선수가 훈련 도중 잠시 인터뷰를 하면 “훈련에서 빠지게 이야기 좀 오래 하면 안 되느냐”고 애교 섞인 ‘민원’을 넣기 일쑤인데, 이용은 다소 어눌한 한국말로 또박또박 대답을 하면서도 연신 코트만 바라봤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이제 훈련하러 가도 되느냐’는 눈빛이었다. 서대성 동국대 감독은 “이용과 이성 모두 농구에 대한 열정이 있고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게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날 이성은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간 몽골에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197·198cm 좋은 신체 조건
이용은 ‘연습생’ 신분이다. 아직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서다. 2007년 한국에 온 그는 2010년까지 만 3년 이상을 거주해야만 한국 리그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한국 국적을 따려면 만 5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현재 대진고 2학년 신분인 이용은 2011년 동국대에 입학하면 그때부터 대학리그에서 뛸 수 있다. 아직 경기에 나설 수 없지만 그는 동국대에서 함께 훈련하고, 또 경기를 지켜보면서 연일 땀을 흘리고 있다.

이용은 키가 1m97㎝나 되지만 빠르고 유연하다. 아직 연습생이라 유니폼 상ㆍ하의의 번호도 다르다. 그러나 2년 후면 프로팀 스카우트의 시선을 사로잡을 재목이다.
서 감독은 이용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용이가 정식으로 한국 무대에서 뛰려면 아직 2년이 더 필요하다. 그동안 여유 있게 여러 가지를 더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문화에도 빨리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은 키가 1m97㎝라 센터로도 뛸 수 있는 신장이지만 스피드가 있고 드리블과 슛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 감독은 “장신 가드나 슈터로 키운다면 더 큰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은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 김승현(오리온스)의 화려한 플레이를 제일 좋아한다”면서 “한국에서 농구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버는 게 꿈”이라고 웃었다. 아직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지 못한 몽골에서는 한국 프로농구 선수가 받는 연봉(1군 최저연봉 3500만원)이 큰돈이다.

성공 위해 이름도 ‘이룰 成’으로
부모가 모두 몽골 사람인 이용과 달리 이성은 어머니가 중국동포라 귀화 과정이 좀 더 수월했다. 이성은 2006년 한국에 와서 2007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강원사대부고를 거쳐 올해 동국대에 진학했다.

이성은 고교 시절부터 미리 주목받았다. 키 1m98㎝의 포스트 플레이어로, 미들슛과 리바운드가 좋다. 그는 지난해 강원사대부고에서 뛸 때 약체로 평가됐던 팀을 전국체전 8강에 올려놓으며 농구인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성은 프로에서 자리를 잡은 후 몽골에 있는 어머니와 남동생을 한국으로 불러 함께 사는 게 꿈이다. 그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기차로 14시간이나 떨어진 샨샨드시 출신이다.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계속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고 한다. 농구를 곧잘 하던 이성은 몽골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박성근 전 성균관대 감독의 눈에 들어 한국땅을 밟게 됐다. 2007년 한국으로 건너 올 때 “꼭 성공해서 다시 만나자”며 어머니와 함께 펑펑 울었다고 한다. 꼭 성공하겠다는 뜻으로 이름도 ‘성(成)’이라고 지었다.

휴대폰 압수가 심한 벌
몽골에서는 농구가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자국 프로리그는 없지만 열악한 환경에서도 누구나 농구를 직접 즐긴다. 한적한 평원에서 양을 치던 소년들이 나무 줄기에 철사로 림을 만들고, 짚 같은 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공으로 골을 넣는 게임을 즐기는 게 다반사다. 이런 풍경들은 이성과 이용이 한국으로 오는 데 다리를 놓았던 박성근 감독이 전한 이야기다. 서대성 감독은 “유목민의 후예라서 그런가. 정말 자유분방하더라”고 웃으면서 “몽골에서 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고된 훈련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런 생활에 적응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 감독은 이들에게 갖가지 벌을 주면서 규율에 적응하도록 만드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이성과 이용이 가장 무서워하는 벌은 ‘휴대전화 압수’다.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지만 몽골 출신의 친구와 함께 있다는 게 큰 의지가 되고 있다. 이들은 꾸중을 듣거나 경기가 잘 안 풀리는 날이면 숙소 옥상에 올라가 “잘해 보자”고 서로를 위로하곤 한다. 몽골의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는 PC방에서 e-메일을 보내며 향수를 달랜다고 했다.
 
삼겹살이 좋고, 손담비는 더 좋고
꿈을 이야기할 때는 진지해도 좋아하는 음식과 연예인 이야기를 할 때면 천진난만하게 활짝 웃는 게 영락 없는 10대 소년이다. 이용은 좋아하는 음식을 묻자 “카레와 삼겹살이다. 내가 좀 많이 먹는다”면서 밝게 웃었다. 동국대 관계자는 “내륙 지방인 몽골 출신이라서 그런지 육류를 무지 좋아한다. 반면 생선회는 입에도 못 댄다”고 전했다.

이용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묻자 “손담비”라고 대답하면서 수줍게 웃었다. 몽골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높은데, 이용은 그중에서도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제일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이용은 요즘 하이틴답게 장난기가 가득하다. 그의 누나는 올해 스물여덟로, 몽골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일한다. 이용이 한국에 올 때 뒷바라지를 해준 은인이 있다. 홍대부고와 동국대에서 농구를 하다 출가한 성국 스님이다. 성국 스님 때문에 불교 재단인 동국대와 인연이 닿았다. 성국 스님은 “하루는 ‘나도 싱글이다. 누나를 소개해 달라’고 농담을 했더니 숨도 안 돌리고 ‘누나는 나이 차가 커서 안 되고, 어머니는 소개해 줄 수 있다’고 하더라”며 껄껄 웃었다.

몽골에서는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른다. ‘무지개의 나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성과 이용은 오늘도 ‘무지개의 나라’에서 프로 선수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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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