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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녹차 도시락, 맛있는 열차의 추억

일본은 철도 강국이다. 강국이란 철도와 열차라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문화라는 소프트웨어도 잘 닦여 있다는 의미다. 대형 서점에서는 철도와 열차 관련 서적들을 따로 모아 단독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TV에서는 ‘철도여행’ 같은 프로그램들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철도 문화를 이용하고 즐기는 사람들 역시 적극적이어서 역에 구비된 스탬프를 찍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역과 열차만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도 상당수에 이른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철도망과 다양한 노선, 개성 강한 열차들이 사람들의 호기심과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일본인은 물론이고 일본 여행 좀 해본 사람이라면 가장 매력적인 이동수단으로 주저 없이 열차를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열차에서 맛본 에키벤의 추억을 말한다.

역마다 고장마다 특색 있는 기차 도시락
에키벤이란 역의 에키(えき)와 도시락의 벤토를 합성한 신조어로, 기차 도시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직 역이나 기차 내부에서 파는 도시락에 이 에키벤이란 명칭이 붙으며, 그 이름에 걸맞게 기차여행 도중 먹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노선마다 도시락 내용물이 다르고 지방마다 특산품으로 만든 도시락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어 골라 먹는 재미 수준을 넘어 행복한 비명마저 나오게 한다.

그 인기도 대단해 기차여행보다는 기차 도시락을 위해 여행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대도시의 백화점들은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기차도시락 대회’를 열어 대리만족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처럼 일본인의 삶 깊숙이 파고든 기차 도시락이 첫선을 보인 시기는 1877~87년이라고 한다. 다만 최초의 기차 도시락 판매 역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해 도치기현 우쓰노미야(宇都宮)역이나 오야마(小山)역, 도쿄(東京)의 우에노(上野)역, 군마(群馬)현의 다카사키(高崎)역으로 나뉘고 있다.

당시에는 장시간 이동 중의 식사 수단으로서 주로 주먹밥과 절임 등 간소한 차림이었으나 철도 노선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그 종류와 내용물이 다양해졌다. 참고로 기차 도시락은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밥과 여러 종류의 반찬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형태의 마쿠노우치(幕の內)도시락, 한 가지 식재료를 중심으로 맛을 낸 특수 도시락, 초밥 등이다.

이후 신칸센 개통으로 여행 붐이 도래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 여세를 몰아 현재까지 철도문화의 중심축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처음 철도여행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지역 특산품으로 만든 도시락을 추천하고 싶다. 노선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도시락으로 맛은 물론이고 포장도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입은 물론 눈도 즐거우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시즈오카 증기기관차에서 맛본 ‘사토차메시(里茶飯)’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녹차의 고장답게 최고 브랜드인 ‘가와네차(川根茶)’를 사용해 증기 가마에서 지어낸 밥은 고슬고슬하면서도 윤기와 탄력이 느껴졌다. 녹차 특유의 은은한 향기는 도시락의 품위를 더해주는 듯했다.

반찬은 찻잎 간장 무침과 찻잎 튀김이 눈에 띄었다. 남방젓새우와 죽순조림 참마초절임 가마보코(かまぼこ)오뎅, 참치구이, 고추냉이 절임, 미나리 간장무침 등으로 채워져 여느 음식점 못지않은 수준이다.간도 적당해서 녹차의 싱그러움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허전함을 보충해 주는 정도의 절묘한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차가운 밥에 반찬 몇 가지로 이루어진 궁색한 조합의 도시락을 생각하면 큰코다치는 수준이다.
칙칙폭폭, 덜컹덜컹,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목가적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기차 도시락에는 어느새 추억과 낭만이라는 반찬이 더해진다.

반찬도 여느 음식점 못지않아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기차는 이동수단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차여행 하면 떠오르는 먹을거리는 삶은 달걀에 사이다와 대전역 우동 아니면 주먹밥이 전부다. 고속열차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마저도 추억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국토의 크기나 노선의 다양성을 놓고 보면 비교 자체가 무리지만, 식객 취재차 열차를 탈 때면 늘 맨송맨송하고 지루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도시락의 경우 종류나 내용물이 빈약해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전국을 세 시간 안에 연결하는 속력이니 기차 도시락 개발은 포기한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호두과자나 경주빵이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보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본 미에(三重)현의 ‘마쓰사카우(松阪牛) 소고기 도시락’이 1만500엔이라는 고가에 판매되고 있는 것처럼 특별한 재료를 이용해 한정판으로 내놓는 것도 방법이다. 특정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지역 특산품을 선정해 도시락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상상해보라. 부산행 열차 안에서 대전의 묵도시락을 먹고 서울행 열차에서 언양불고기도시락을 맛보는 풍경을…. 목포행 열차에 앉아 봄철이면 굴비정식 도시락을 먹고 겨울이면 매생이 도시락을 기다리는 설렘을…. 동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대게살볶음밥의 환상적인 맛에 흠뻑 취하는 즐거움은 또한 어떠한가.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 클레어(Clair)와 한진관광의 후원으로 2년간 일본을 방문해 다양한 요리와 온천 문화, 자연을 경험하고 그 체험을 독자와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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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