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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와 줄기가 중요, 원칙엔 타협 없다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냐오차오(사진 위쪽)와 수이리팡의 모습. 두 건물이 들어선 올림픽 단지는 과거 왕조의 황궁인 자금성의 정북 방향 12㎞에 지어져 전통적인 축선의 개념을 그대로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418년 조선 제4대 왕위에 오른 세종은 즉위에 관한 교서(敎書)를 반포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사자성어가 있다. ‘강거목장(綱擧目張)’이란 말이다. 어려운 성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잘 알려진 『본초강목(本草綱目)』이라는 책의 제목을 떠올리면 그 뜻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강목(綱目)은 ‘차례’의 뜻에 가깝다. 강은 굵고 중요한 것, 목은 세부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성어는 ‘그물의 벼리(綱)를 들어올리면 그물코(目)가 자연스레 펼쳐진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세종이 교서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국가의 근본과 기강을 제대로 잡아 세부적인 질서까지 모두 정리를 잘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큰 것과 작은 것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담은 내용이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은 나아가 자리의 높고 낮음을 따지는 위계(位階), 더 나아가 통치와 복속의 관념에까지 이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사물을 특정한 개념에 맞춰 분류하고 차별화하는 과정이다. 일의 우선순위를 따져 중요하고 귀한 것을 먼저 놓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뒤로 미루는 방법이다. 중국은 사물과 현상를 두고 높고 낮음, 중요함과 그렇지 않은 것 등을 엄격히 구분하는 사고가 발달한 곳이다. 특히 정치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곳에서는 이런 관념이 크게 두드러진다.

이는 대개 축선의 형태로 나타난다. 명(明)과 청(淸)의 왕조가 머물렀던 베이징(北京)의 자금성(紫禁城)은 물론이고, 과거 당(唐)나라 때의 수도인 장안(長安)의 황궁 등은 모두 이 축선을 바탕으로 지어진 건축이다. 중국 전통 주택인 사합원(四合院)의 경우도 우선 남북을 잇는 축선에다 동서로 이어지는 가로 축선이 정교하게 맞물려 지어진다. 그 바탕에는 축선을 포함한 방위(方位)적인 사고가 담겨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중국의 고대 황궁 내지는 수도의 성채 구조다. 오늘날의 자금성처럼 고대의 중국 황궁 또한 모두 남북과 동서의 축선이 맞물리는 방형(方形)으로 지어졌다. 황궁뿐 아니라 그를 중심부에 담는 수도의 황성(皇城) 자체가 대부분 사각형의 형태다. 예전의 베이징도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 말 중국 지도부에 의해 모두 철거됐지만 현재 베이징 2환 도로(순환선)는 원래의 성곽이 있던 자리다. 그 모습은 동서남북의 축선이 90도로 교차하는 완벽한 방형이었다. 대표적인 고대 황성인 과거 장안(현재 西安), 북송(北宋) 왕조가 들어섰던 카이펑(開封)의 옛 모습 또한 사각형이다.

이는 유럽을 비롯해 중동 지역의 고대 도시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물론 그곳에도 사각형 형태의 도시 또한 왕성하게 지어지기는 했지만 일관되게 그 모습이 축선을 바탕으로 한 사각형의 형태로 이어진 경우는 중국이 유일무이하다. 최근에 이런 ‘전통성’을 가장 잘 드러낸 경우가 2008년 치러진 베이징 올림픽이다. 중국 지도부는 새 둥지 모양의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을 비롯한 주경기장을 자금성의 정북(正北) 방향 12㎞ 지점에 만들었다.

왜 하필이면 자금성의 정북 방향에 주경기장 등을 세웠을까. 해답은 ‘축선’에 있다. 베이징 자금성은 북방에 있는 옌산(燕山) 산맥의 지형 흐름을 감안한 남북의 축선상에 놓여 있다. 이른바 황제의 기운이 흐른다는 ‘용맥(龍脈)’의 개념이다. 명대에 지어진 이 자금성의 주요 건축물 또한 남북을 잇는 이 용맥 위에 놓여 있으며 황궁 바깥, 즉 예전 베이징의 주요 도시 구조도 이를 축으로 남과 북, 동과 서로 펼쳐진 모습이다.

중국 집권 공산당은 올림픽을 치르면서 이 축선의 개념을 다시 살려냈다. 세계에 중국의 부상을 알렸던 화려한 개막식과 함께 이 같은 의도적인 건축 개념은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세계 각국에 알렸다. 세계의 강국으로 부상하는 현재의 중국이 화려했던 과거 제국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공산당이 그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의미다.

나중에 다시 뜯어보겠지만, 방형의 형태로서 축선의 개념이 너무나 분명한 자금성은 그 이면 또한 ‘네모꼴’의 숨막힐 듯한 구조로 채워져 있다. 모두 축선을 향해 치밀하게 구획된 꽉 짜인 구조다. 위계와 질서의 관념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모습이다.
이 축선은 달리 말하자면 원칙, 나아가 뿌리·줄기라는 뜻의 근간(根幹)이다. 중국은 이런 원칙에 강하다. 과거 중국도 그랬지만 현대의 중국을 이끌고 있는 공산당 또한 자신이 세운 원칙에 있어서는 어느 나라보다 강하게 집착한다. 불법이 난무하고, 가짜 제품이 판친다고 중국을 낮잡아보면 안 된다. 그는 표면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원칙에 관해 중국은 철저하다. 중국이 외국과의 수교를 전제로 내거는 ‘1개 중국(대만과 홍콩은 중국의 부속이며 세계에서 중국은 공산당 집권의 중국만이 있다는 내용)’이라는 원칙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초강경이다. 이를 어기면 중국은 단교를 불사하면서 초강경으로 대응한다. 그뿐이 아니다. 대외관계에 관해 중국이 내거는 또 다른 원칙적인 정책은 ‘주변 환경의 안정’이다.

이 원칙에 입각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을 진행하면서 핵실험으로 도발한 북한을 관리한다. 한국과 미국이 강경한 대북 제재를 요구해도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북한을 다그치면 오히려 자신의 주변인 한반도가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자금성과 사합원의 ‘축선’은 중국 정부의 정책적 ‘원칙’과 상통하는 개념이다. 근간을 잘 관리하면 나머지는 잘 정리된다는 생각, 즉 ‘강목(綱目)’과 축선에 관한 사고 취향은 중국인을 이해하는 다른 키워드다.

중앙일보 국제부·정치부·사회부 기자를 거쳐 2002년부터 5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중국통이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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