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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깊이읽기] ‘청바지 입은 좌파’ 지젝이 본 ‘자본주의 너머’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그린비, 711쪽 3만5000원

1949년 옛 유고 태생의 마르크시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 시대의 돋보이는 지식인 중 한 명이다. 국내에 『트로츠키』『전체주의가 어땠다구?』『매트릭스는 없다』등 30권 가까운 저술과 해설서가 소개된 그는 헤겔·칸트 같은 전통적 철학자와 분위기가 다르다. 쏟아내는 말의 홍수로 봐서는 논객으로 분류해도 되며,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등 할리우드영화 이야기를 섞는 유연함은 ‘청바지를 입은 철학자’라고 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는 좌파다.

이 책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이 보기에 끔찍한 악몽의 (좌파) 호러 쇼”로 보여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태연히 던진다. 현실사회주의 몰락 20년인 지금 그는 둘 중 하나다. 시대착오적 몽상가이거나, 뭔가 철학적 배경을 가진 희귀종이거나…. 여러모로 보건대 뒤쪽이 맞다.

슬라보예 지젝은 레닌의 실천적 면모에 주목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럽좌파들이 애국주의 노선을 채택, 노동자 국제연대를 통한 좌파혁명 비전이 무너졌지만 3년뒤 레닌은 혁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사진은 레닌이 주도한 볼셰비키 혁명을 묘사한 그림.
헤겔·마르크스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비판철학), 포스트모더니즘 까지 철학적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에 그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변혁에 경도됐던 80년대 한국사회의 냄새가 난다고 해도 ‘구호꾼 386’과는 다르다. 700여쪽 분량의 논문모음집인 이 책은 ‘지젝 읽기 종합세트’인데, 종래 단행본에서 했던 주장이 좀 더 쉬운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글은 책 제목대로 ‘인간해방의 기획’이라는 대의(cause)에 대한 강력 옹호로 모아진다.

그는 탈 이데올로기를 주창하는 다니엘 벨이나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대척점에 선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체제이자 기본 조건이라는 전제부터 반대하기 때문이다. 도구적 이성 비판에 그치는 프랑크프루트학파나 칼 포퍼, 레비나스 등과도 다르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일단 수용했으며, 지젝의 표현대로 ‘전복적 날카로움’을 잃어버렸다. 반면 그는 ‘자본주의 너머’에 대한 구상을 총체적인 대의 복원이라고 본다.

헤겔이 구현했던 의미·진리의 총체성을 21세기에 감히 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철학 사무라이’가 분명한 지젝은 당연히 ‘부드러운 디카페인 혁명’을 반대한다.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없는 혁명을 주창하는 가짜혁명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성(靈性)회복이나 생활혁명을 외치는 것은 좀상스러운 ‘뉴에이지 운동’에도 코웃음을 친다. 대신 ‘세상이 망하더라도 진리를 구하라’라고 했던 프랑스혁명의 조타수, 로베스피에르를 찬양한다.

그런 지젝을 어찌 봐야 할까? 서구 지성사의 적자(嫡子)인 정통 철학자인 것은 분명하다. 19세기 신념이 때론 불편하기도 하지만, 동유럽 출신으로 동서의 구분을 뛰어넘은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사족. 지구촌 60억 인구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삶의 지평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래서 ‘왕 돈키호테 지젝’을 읽는 일은 일단 즐겁다. 그러나 TV예능프로의 단골 자막대로 굳이 그를 따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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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