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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없던 ‘정운찬 러브콜’… 총리 물망만 몇차례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아버지로까지 생각해 온 조순 전 부총리(左)의 팔순 잔치(2007년 3월,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 참석해 축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자네는 정승이 되게나.”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어머니에게서 늘 듣던 얘기였다. “우리 집안에 3대째 정승이 끊겼다. 가문의 영광을 자네가 되찾길 바란다”란 말도 이어졌다. 가난 탓에 학업을 중단하려다가도, 또 가출하려다가도 그를 돌려세운 건 어머니의 그런 당부였다. 그는 “족보를 보니 3대는 물론 4, 5대 조상에도 정승은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큰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자서전 『가슴으로 생각하라』).

3일 그가 어머니의 바람을 이뤘다. 끼니를 걱정하던 시골소년이 총리 후보자가 됐다. 그는 이런 자신의 삶에 대해 “온 세상이 베풀어준 혜택과 세상 사람들이 베풀어주는 온갖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다.

◆“4명의 아버지가 있다”=그는 1948년 2월(호적상으로는 1946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부친 정창성씨와 모친 이경희씨 사이의 다섯 남매 중 막내였다. 어머니가 그를 가진 건 44세였다. 워낙 노산이다 보니 겁이 난 어머니는 그를 지우려 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 드신 게 익모초라는데 나는 뱃속에서부터 내성을 길러서인지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잘 자랐다”고 기억했다.

그는 평소 “나에겐 4명의 아버지가 있다”고 말한다. 친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작고했다. 나머지 세 명은 그를 친아들로 입적한 숙부와 스코필드 박사, 서울대 은사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다. 독립운동가인 스코필드 박사를 만난 건 경기중·고 시절이다. 그에 대한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 후보자가 중2 때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하자 “정치권은 본래 깨끗한 곳이 못 되네. 운찬이는 그런 곳에 가지 말게”라고 말린 일이 있었다. 동시에 “국가가 어지러울 때는 몸을 던져서 그것을 구하는 게 애국의 길”이란 조언도 해줬다.

조 전 부총리는 진정 멘토였다. 정 후보자는 “진정으로 나는 조순을 만나 드디어 경제학을 발견했다”고 기억한다. 또 정 후보자가 한국은행에 입사하도록, 이어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78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도록 도왔다. 가수 김민기씨가 소개한 부인과 결혼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군 장성 출신인 장인 될 어른을 만나 “학위 마치고 오면 대학교수 정도는 무난한 인물이니 현재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설득했다는 것이다. 3일 백두산 여행 중 입각 소식을 들은 조 전 부총리는 "정군은 소신이 있고 합리적이다. 나랏일도 잘 할 것”이라며 기뻐했다.

◆직선제 개헌 서명운동 주도=86년 그는 서울대 교수직을 떠날 뻔했다. 두 명의 교수와 함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서명 운동을 주도한 때문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주동 교수를 해고하라”고 지시했으나 김종인 당시 민정당 의원이 만류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지금도 깊게 교류한다. 98년엔 한국은행 총재가 될 뻔한 일도 있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그를 지목했다. 그는 하지만 “산적한 현안을 해결할 만큼 성격이 냉정하지 않다”고 고사했다. 2002년 7월엔 서울대 총장 선거에 도전했고 당선됐다. 이후엔 지역균형 선발제를 도입했고 황우석 사태를 헤쳐나갔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서울대 입시안을 공격할 때 “대학 입시 문제를 정부 부처에 보고하는 나라가 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맞서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전국적 인물이 되어갔다. 그 무렵 서울대 주변에서 “DJ가 (총장에) 당선시켰고 노무현이 성공시켰다”는 얘기가 돌았다.

◆야구애호가=그는 이후 정치권의 집중적인 구애 대상이 됐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그를 후임 시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접촉한 일이 있다. 그가 “금융전문가 시장을 원하면 어윤대 고려대 총장도 있지 않느냐”고 사양하자 이 대통령이 “그러면 (출신이) 고려대-고려대 아니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2007년 4월 그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에도 그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줄지 않았다. 이 대통령도 대선 선대위원장-인수위원장 등을 제안했다고 한다. 총리 물망에도 수차례 오르내렸다.

그는 소문난 야구애호가다. 미국 유학 시절에도 매년 메이저리그 100경기 이상을 봤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꽉 막힌 집과 답답한 학교 사이에서 야구가 후련한 돌파구를 마련해 줬다”고 말한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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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