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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예술가의 품삯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다 간 예술가는 동서양을 통틀어 수없이 많다. 그 많은 사연 중에 읽을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작가 김유정이 타계 직전 남긴 편지다. 그는 친구 안회남에게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며 돈을 구해 달라고 애원한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구렁이를 십여 뭇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돈, 돈, 슬픈 일이다”라고 썼다. 폐결핵과 치질에 시달리던 김유정은 편지를 쓴 지 11일 만인 1937년 3월 29일 이른 아침에 세상을 떴다.

김유정이 살아있던 당시와 지금은 물론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절대 다수 예술가들이 다른 직업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것만은 변함이 없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예술가들의 월 평균소득은 50만원 이하가 54.5%다. 국민연금 가입률은 52%, 고용보험 33.3%, 산재보험 33.8%에 머물러 있다. 한마디로 말해 돈도 못 벌고 미래마저 불투명한 처지다.

사흘 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서울 대학로에서 만나 의미있는 합의안을 발표했다. 노동부가 ‘사회적 일자리’ 지원사업에 공연단체 소속 예술가 500여 명을 추가키로 한 것이다. 대상 분야는 연극·음악·무용·전통예술이다. 선정된 단체는 각기 10명분에 해당하는 임금을 노동부로부터 지원받게 된다. 한 사람당 4대 보험료를 포함해 월 90만8150원이 돌아간다. 사회적 일자리 사업이 공연단체의 예술가 고용을 집중 지원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90만8150원. 4대 보험료를 빼면 83만원가량이 손에 쥐여진다. 올해 최저 임금이 시간당 4000원이니 이 급여는 거의 최저 임금이다. 기업체 업무보조 인력 수준이다. 게다가 웬만한 공연단체는 대학·대학원 졸업에 탄탄한 경력을 갖춘 예술가들이 포진해 있다. 그런데도 공연단체들은 감지덕지, 나아가 감개무량해하는 기색이다. 무용단 ‘댄스시어터 온’의 홍승엽 대표는 “90만원이 고정적으로 나오고 4대 보험 혜택도 받는다는 건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색이 대표인 내가 단원들에게 기껏 해주는 게, 공연을 준비할 때 굶고 나오는 단원을 위해 연습장에 즉석쌀밥을 사다 놓는 정도”라고 했다. ‘댄스시어터 온’은 낮 12시 반부터 6시까지인 연습시간을 칼같이 지킨다. 단원들이 요가학원, 무용학원, 카페 서빙 등으로 생활비를 벌러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창단 22년째인 극단 ‘사다리’의 정현욱 대표는 “단원 30여 명 중 유급 단원은 5명뿐”이라며 “우리보다 못한 극단이 더 많다”고 말했다. 대다수가 공연 개런티로는 생활이 안 돼 택시운전이나 공사판 막일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예술가라 해서 다른 직업보다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한 실적이 두 눈에 똑똑히 드러나는 다른 직업과 달리 예술은 성과를 재기가 애매하고, 질까지 따지자면 논란이 끝도 없이 이어지기 일쑤다. 올해 초 미국 의회가 경기부양 예산을 심의할 때도 해묵은 논란이 재연됐다. 연방기관인 국립예술기금(NEA)에 5000만 달러를 지원하는 항목에 대해 반대파(주로 공화당) 의원들은 “좌파 엘리트 예술가들에게 사탕을 주자는 것이냐” “고상한 체하는 좌파 호사가들에게 부족한 세금을 쓸 수 없다”며 반발했다. 찬성파들은 “선댄스 영화제 하나로 매년 6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것을 보지 못하느냐”며 예술의 경제적 효과를 집중 거론했다.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대상에 ‘예술적’ 일자리가 포함된 것을 일단 환영한다. 이를 계기로 예술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돈으로 치면 얼마인지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면 좋겠다. 예술에 바친 땀의 가격은 도대체 몇 원인가. 만약 김유정이 최저 임금 덕에 살아남아 더 많이 남겼을 작품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토론거리는 아주 많을 것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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