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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야기] 고객이 키운 ‘꽃게장’ … 일류를 향해

㈜청지기 꽃게장 상차림은 이청만 전 사장(左)과 아들이자 현 사장인 한올씨의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아산에 있는 ‘청지기 아구참 꽃게 배방점’(직영)에서 이씨 부자가 꽃게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조영회 기자]
고객이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기업을 살려냈다.

‘㈜청지기’는 꽃게장 하나로 1999년 창업 이래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며 잘나던 기업이었다. 한번 맛을 본 고객들은 청지기 꽃게장을 다시 찾았다. 연간 매출이 30~40억원을 기록할 만큼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승승장구 했다. 그도 잠시 수년 전 예상치 못한 세금규제를 맞으면서 기업이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사세가 기울자 고객들의 기억 속에서도 점차 멀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결국 고객이 이 기업을 다시 살려 냈다.

◆꽃게장에 인생을 걸다=㈜청지기 창업주는 이청만(62)씨다. 그는 서울서 꽤 규모 있는 섬유제조업체를 운영하다 부도를 맞은 뒤 93년 연고 없는 아산으로 낙향, 생계를 위해 지금의 산수장여관 후문께 조그만 식당를 차렸다. 이름은 ‘청지기’. 양반집에서 시중드는 이의 마음으로 고객을 맞겠다는 뜻이다. 처음엔 남들 하는 음식을 내놓았다. 워낙 미식가 소리를 듣던 이씨라 식당은 그럭저럭 잘됐다. 그러나 뭔가 다른 메뉴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평소 즐겨 먹던 꽃게장을 만들기로 했다. 한번 빠지면 끝장을 보는 성격 탓에 이씨는 수천 마리의 꽃게를 소비하며 제대로 된 꽃게장 맛을 찾는데 전념했다. 영지, 당귀 등 한약재에 마늘, 양파, 고추, 생강 등 16가지 재료들로 실험을 거듭하기를 6개월. “그래 이 맛이다.” 가슴에 끓어오르는 희열을 느끼며(이씨 표현) 독창적인 레시피(조리법)를 탄생시켰다.

◆대량 생산에 나서다=손님이 줄을 이었다. 식당을 찾은 고객들은 누군가에 선물한다며 꽃게장을 따로 포장해 갔다. 이미 사업체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이씨로서는 일을 벌일 만 했다. 청지기 회사를 설립하고 모종동에 공장을 갖췄다. 식당 문을 연지 4년만이다. 천안·아산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반응이 좋았다. 홈쇼핑에도 진출하고 신세계나 롯데, 갤러리아 같은 유명 백화점과도 납품 계약을 맺었다. 회사 설립 3년 만에 지금의 좌부동으로 공장을 확장, 이전하고 자동화 생산시스템을 갖췄다. 매출은 급성장세를 탔다.

◆최대 위기를 맞다=경험부족이었을까. 청지기는 2004년 7월, 갑작스런 경영위기를 맞는다. 당시 재경부가 꽃게장 상품과 관련, 상품분류를 조정하는 내용을 고시한다. 그 동안 꽃게장의 경우 독립된 포장용기에 담아 판매하는 경우만 부가가치세 과세를 하고, 반찬가게나 슈퍼마켓 등에서 비 규격화된 용기에 담아 판매하는 경우는 면세였다. 재경부 고시는 이 같은 관행을 명문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큰 문제가 발생했다. 고시 이전 시기는 비규격화 용기 판매를 면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6억원의 부가세가 소급 적용됐다. 소기업으로서는 감당 못할 거액이었다. 이제 막 일어서려는 참인데…. 감당하기 어려운 청천벽력이었다. 이씨는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고객이 기업을 살리다=왠일인지 그 해 9월 추석을 앞두고 꽃게장 주문 전화가 빗발쳤다. “다 때려치우자”던 이씨 마음이 흔들렸다. 빚을 냈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믿고 찾아 준 고객들을 위해 추석 때까지만 문을 열자.”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다들 떠나고 남아있는 직원은 고작 3~4명이었다. 밤을 새워 1000명이 넘는 고객의 주문량을 맞췄다. ‘마지막 고객’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다시 날다=회생의 기력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무너졌던 기업을 다시 살린 건 고객이었다. 이씨는 2004년 가을 추석 명절을 보낸 뒤 다시 해보자는 용기를 냈다. 이후 계속된 고객의 성원이 힘이 된 것이다. 이씨는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영국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한 장남(이한올·31)에게 제조기술을 가르치기로 했다. 학업도 중도 포기하고 돌아 온 마당에 망해가는 사업까지 떠안으라니 반가울 리 없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 동안 틈만 나면 공장에서 허드렛일도 하고 백화점에서 판매도 해 본 아들은 아버지가 얼마나 꽃게장 사업에 열정을 쏟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부전자전일까. 아들은 다 쓰러져 가던 청지기를 일으켜 세웠다. 유명백화점과의 납품 계약도 다시 늘어나고 일본에 수출계약도 체결하게 됐다. 조만간 천안에 직영식당도 새로 문을 열 계획이다. 현재 아산에는 2곳의 꽃게장 전문식당이 있다. 또한 꽃게장 뿐 아니라 새로운 상품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이씨는 지금 아들에게 대표 자리를 내주고 뒤에서 기술을 전수해 주며 돕고 있다. ‘청지기 꽃게장은 이미 우리 부자(父子)만의 것이 아니다. 고객이 만들고 키운 회사다. 고객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신상품 개발에 혼신의 힘을 쏟고있다. 이씨는 “몸에 좋은 또다른 장류를 만들어 고객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문의:(080)250-4545, www.chungjiky.co.kr

장찬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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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