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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드라마, 믿어도 되나?


사극 열풍이 한창이다. 매력적이고 익숙한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는 사극은 재미있다. 하지만 사극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픽션(Fiction:허구)이다. 드라마 내용 그대로를 진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꾸준히 역사공부를 하며 외국인에게 우리나라 역사와 유물을 설명하는 어린이 문화유산 해설사 3명은 “사극을 보고 나면 관련역사책을 읽어보고 역사적 진실과 드라마 속 허구를 구분해서 정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과 함께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드라마 ‘선덕여왕’ 속의 진실과 거짓에 대해 알아봤다.

1 천명공주와 덕만은 쌍둥이가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스토리는 『화랑세기』 필사본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화랑세기』는 신라 성덕왕 때 김대문이 쓴 화랑에 대한 전기로 1989년에 필사본만 발견됐다. ‘필사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역사적 자료는 진위(眞僞)에 대한 학자들 간의 공방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 때문에 드라마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화랑세기에도 천명과 덕만은 쌍둥이가 아님을 확실히 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천명이 첫째, 덕만이 둘째다. 천명은 진평왕과 후궁 사이에서 태어났고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성골신분인 덕만이 둘째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신라사회는 ‘골품제도’라 불리는 신분제도가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다.

2 덕만과 미실은 동시대 사람이 아니다!
미실은 신라 23대 왕인 법흥왕 때부터 24대 진흥왕, 25대 진지왕, 26대 진평왕까지를 모셨던 궁주(독립된 궁을 소유했던 후궁)였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미실은 정부였던 설원랑이 자신을 위해 죽은 뒤 곧 따라 죽는데 그 때가 607~610년으로 선덕여왕과 동시대에 마주칠 수 없다. 『화랑세기』를 근거로 하더라도 미실의 시대 후반과 선덕여왕의 시대 초반이 겹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두 사람이 패권을 다투지는 않았을 것이다. 덕만이 여왕이 됐을 때는 미실은 80세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3 미실은 악녀가 아니다!
미실은 700권의 수기를 쓴 여성철학자이자 남성 중심 사회에 뛰어들어 자기 뜻을 펼친 정치가이며 책략가로 해석의 여지가 아주 풍부한 인물이다. 그녀는 색공(왕에게 몸을 바치는 여인)으로 왕의 아이를 낳고자 입궁한 여인이지만 진흥왕의 넘치는 사랑으로 옥새를 관리하는 왕실 최고의 실세가 된다. 신라시대에는 선대왕이 죽으면 다음 왕이 후궁을 이어받도록 되어 있고 ‘성골’들끼리만 결혼을 하다 보니 근친혼이 아주 많았다. 미실은 신라시대의 풍습상 자연스럽게 권력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4 덕만과 유신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다!
김유신은 천명공주의 아들인 김춘추에게 두 여동생을 시집 보낸다. 이것이 역사적 진실인데 드라마 속에서 김유신은 천명·덕만공주와 삼각관계를 형성했다. 김유신은 서기 595년에 태어났고 김춘수는 서기 603년에 태어났다. 선덕여왕의 출생연도는 불확실하다. 천명공주가 김춘수를 18살 정도에 낳았다고 가정하면 천명공주는 586년도에 태어났다는 말인데 이때는 진평왕 8년에 해당하는 해로 진평왕의 당시 나이는 20세였다. 진평왕은 재위 54년인 632년 1월에 죽었다.즉 진평왕의 뒤를 이어 덕만이 선덕여왕으로 즉위했을 때는 그녀의 나이가 50세에 가까웠다.

김유신은 선덕여왕보다 후대 사람으로 자신보다 약 10살이 많은 여자에게 연정을 품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김유신은 덕만공주의 힘을 빌려 자신의 둘째 여동생 문희와 김춘수를 결혼시켰다. 그는 덕만을 이성이 아닌 자신을 지지해줄 실권자로서 곁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
< 사진= 김진원 기자 jwbest7@joongang.co.kr > >



Tip 잠깐 역사상식 신라
-삼국 중 가장 발전이 늦었던 신라는 내물왕 때 왕의 권력을 강화하고 법흥왕 때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시작했다.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나라체제를 정비했다. 이어 진흥왕 때는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전성기를 맞았는데 고구려와 백제의 연결을 차단하고 중국과 직접교류 할 수 있는 교통로를 확보하고 한강유역의 경제력을 장악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 신라를 대표하는 제도
☆골품제도: 폐쇄적인 신분제도로 개인의 신분뿐만 아니라 친족의 등급까지 표시해 사회 활동을 제한했다.
☆화백회의: 회의 제도로 의견을 결정할 때는 모든 사람이 찬성해야 결정하는 만장일치제를 택했다.
☆화랑제도: 청소년들에게 협동과 단결의 정신을 기르고 강인한 체력을 연마하게 해 삼국 통일을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09 전국 학생 문화유산해설 영어 콘테스트 개최 안내
- 일시 : 예선 - 9. 15 ~ 10. 15 / 본선 - 11. 14 (토)
- 장소 : 여수 여성문화회관 (본선)
- 대상 : 초·중·고생, 내외국인대학생
- 내용 :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영어로 설명 (5분 이내)
- 문의 : 02) 3210-3265~6 홈페이지: www.icworld.or.kr
- 주최 : 문화재청 주관: 국제교류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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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