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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未名湖의 有名人

오래 만에 베이징(北京)대학 캠파스를 찾아갔다. 여전히 학생들로 붐비고 아빠 손을 잡고 찾아 온 미래의 베이다(北大)생도 보인다.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답게 캠퍼스의 위용도 대단하다. 웨이밍(未名)호반을 거닐었다. 황제의 원림 못지않은 수림과 거대한 호수는 도저히 대학의 캠퍼스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윽하고 방대하다. 웨이밍호에 가면 외국인 무덤이 있다.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의 무덤이다. 중국의 근대사를 아는 분은 금방 그의 세계적 특종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을 기억해 낼 것이다.

1972년 스위스에서 죽은 스노우의 유언에 따라 그의 무덤은 태평양 건너 東西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그가 사랑했고 젊은 시절 가르쳤던 이곳 베이다의 웨이밍 호반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가 고향을 나와 세상과 처음 만난 뉴욕의 허드슨 강변이다.

스노우는 미국 중서부 작은 도시 출신이다 그는 세상을 알고 싶어 고향을 떠나 뉴욕으로 나왔다. 그리고 세계일주여행을 계획하였다. 세계 제1차대전을 끝내고 곳곳에는 핑크 빛 미래로 전후 복구가 한참일 때였다. 주식이 몇갑절 뛰는 것은 예사였다.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전재산으로 주식을 사들였다. 다행히 그가 산 주식은 수갑절 올랐다. 투자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가진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계획대로 세계일주여행에 나섰다. 그때가 1928년 가을이었다. 불과 몇 달 후 뉴욕 주식이 크게 폭락하는 세계 대공황이 찾아왔다. 그가 계속 오르는 주식이 아까워 처분을 못하고 몇 달 더 기다렸다면 그는 세계여행을 못했을 것이고 오늘날 베이다의 아름다운 캠퍼스에 그의 무덤이 있을리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일본을 거쳐 중국 上海에 도착하였다. 당시 세계 최대 도시의 하나로 동서양이 만나는 상하이는 꿈 많은 20대의 스노우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의 도시 상하이에는 미국의 명문 거족 부자들이 모두 몰려와 있었다. 당시 하바드대학 졸업생이 뉴욕보다 상하이에 더 많이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는 더 이상의 세계여행은 의미가 없다고 결론내리고 고향선배가 경영하는 상하이의 영자신문사 기자로 주저 앉는다. 수년후 스노우는 어느 파티에서 미국 영사관 직원이던 헬렌 포스타라는 미모의 여성을 만난다. 둘은 결혼을 한 후 중국을 더 알기 위해 베이징(당시는 北平)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스노우는 北大(당시는 燕京대학)에 저날리즘을 가르치게 된다. 그해가 1933년이다. 중국전역에서는 만주사변을 일으켜 괴뢰 만주국을 세운 일본에 저항하는 抗日정서가 학생들 사이에 팽배한 때였다.

이러한 학생운동을 지원하는 스노우교수내외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1936년 6월 스노우부부는 항일 학생서클의 소개로 延安으로 비밀리 안내되고 그곳에서 놀랍게도 毛澤東및 周恩來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將介石 국민당의 토벌군에 의해 전사했다는 일반 뉴스와 달리 長征을 끝내고 延安에 安着해 있었다. 스노우는 그곳에서 3개월간 毛. 周등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듬해 그 내용을 발표한 것이 “중국의 붉은 별”이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대특종으로 스노우를 일약 세계적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님 웨일즈라는 필명으로 저날리스트 활동을 하던 스노우부인은 延安에서 스노우와 별도로 金山이라는 한반도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를 만난다.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도 읽었다는 유명한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는 金山의 이야기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차이나 인사이트'가 외부 필진을 보강했습니다. 중국과 관련된 칼럼을 차이나 인사이트에 싣고 싶으신 분들은 이메일(jci@joongang.co.kr)이나 중국포털 Go! China의 '백가쟁명 코너(클릭)를 통해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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