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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MB 북한정책 원칙 고수하길

얼마 전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에 참석한 북한 조문단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해서 청와대를 찾은 일은 상징적이었다. 그들은 장례를 주관한 단체의 불법적 요청에 응해 우리 정부와 협의하지 않은 채 찾아왔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가져온 특사라는 것을 밝히면서 이 대통령을 만나기를 희망했다. 북한은 조문단이 절차에 어긋나게 행동해도 우리 정부가 그들을 반기리라고 계산한 듯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미묘한 사안을 적절히 처리했고 북한에 아무것도 넘겨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아래에서의 상황과 대조적이다. 당시엔 모든 일에서 북한의 뜻이 그대로 실현되었다. 이번 일은 실은 ‘햇볕 정책’이라 불린 유화 정책의 중단에 따른 금단 현상이 마침내 사그라졌음을 상징한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뒤 남북한 관계는 상당히 오래 막히리라고 예상되었다. 남한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북한은 으레 공격적 태도를 통해서 우월한 지위를 누리려고 시도했다. 북한에 무척 호의적이었던 좌파 정권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행태는 북한 정권만이 아니라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보인다. 비록 치졸하고 뻔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효과적인 전술이다. 잘 알려진 경우는 휴전 회담에서 중공군이 쓴 것이다. 애초에 휴전 회담은 공산군 측의 제의대로 개성에서 열렸다. 당시 개성은 중공군이 점령한 상태였는데, 중공군은 그런 조건을 이용해 심리적 우위를 이루려 시도했다. 심지어 무력으로 국제연합군 대표들을 위협했다. 뒤늦게 공산주의자들의 책략을 깨달은 국제연합군은 강력하게 항의하고 아예 회담 장소를 중립적인 판문점으로 옮겨버렸다.

북한은 이명박 정권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파 정권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터이지만, 근본적 이유는 이 대통령이 내건 대북한 정책이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그리고 포기할 경우에만,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는 그의 정책은 합리적이지만, 두 좌파 정권이 추구한 유화 정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북한의 불만과 저항은 필연적이었다.

유화 정책의 수정은 늘 어렵다. 그것에서 이득을 본 상대국은 당연히 거세게 반발한다. 게다가 우리 사회엔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큰 세력을 이룬다.

사정이 그렇게 어려웠어도, 이 대통령은 견뎌냈다. 때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정책을 버리지 않았다. 운도 따랐다. 북한은 버락 오바마 정권의 우호적 접근을 물리치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그래서 미국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남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흔들렸다면, 그런 운이 따를 수 없었을 터이다. 이 일에서 그는 시민들의 찬사와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제 15년에 걸친 유화 정책이 끝나고 외교 무대는 새로운 정책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 (‘햇볕 정책’은 원래 김영삼 정권에서 시작되었다. 김 대통령은 “민족적 양심을 앞세우면, 풀지 못할 것이 없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다. 우리의 도움을 북한이 모욕으로 갚았을 때 김 대통령은 비로소 ‘햇볕 정책’을 버렸다.) 갑자기 좋아진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가.

유화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것이 학습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사실이다. 당근이라 불리는 강화(reinforcement)든, 채찍이라 불리는 벌(punishment)이든 행동의 뒤에 나와야 효과를 본다.

유화 정책은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 상대가 행태를 바꾸리라는 기대 속에 미리 당근을 준다. 그러나 상대방의 관점에선 당근은 자신의 공격적 태도 뒤에 나온 것이다. 자연히, 그것은 공격적 태도의 강화로 작용한다.

유화 정책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점점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도록 하는 까닭이 거기 있다. 실제로 휴전 뒤 가장 위험했던 남북한의 충돌인 두 차례 연평해전은 김대중 정권이 유화 정책을 실행한 뒤 나왔다. 반면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엔 북한의 심각한 도발이 없었다.

이 대통령이 따라야 할 원칙은 명료하다- ‘북한이 좋은 일을 하기 전에는 당근을 내밀지 않는다.’ 만일 그가 이 원칙을 꿋꿋이 따른다면, 그의 대북한 정책이 성공할 뿐 아니라 꿋꿋한 지도자에게만 따르는 운도 그를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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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