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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76> 등록문화재가 뭔가요

병원 진단서도 문화재가 될 수 있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중순 ‘제중원 의사 알렌의 진단서’를 등록문화재로 예고했습니다. 30일간의 공고 기간이 지나면 문화재로 정식 등록됩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인 제중원(濟衆院)에 근무하던 의사 H N 알렌(1858~1932)이 발급한 국내 최고(最古)의 진단서입니다. 사료적 가치가 쏠쏠한 거죠. 등록문화재는 근대문화유산을 가리킵니다. 최근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격변의 20세기 한국 사회를 찬찬히 살펴보자는 취지죠. 정신없이 살아온 우리의 어제를 들여다보는 거울입니다.

박정호 기자 [사진 문화재청 제공]

구한말부터 한국전쟁까지 ‘젊은 문화유산’

백범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로부터 건네받은 회중시계(등록문화재 제441호)
‘알렌의 진단서’와 함께 근대 의료 관련 유물 5건도 함께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됐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의학 교육기관인 의학교(醫學校) 설립 11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죠. 예컨대 ‘제중원 1차 연도 보고서’는 19세기 후반 한국인의 질병 양상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대한의원 개원 칙서’도 있습니다. 1908년 10월 24일 대한의원 개원일에 황제 순종이 내린 칙서(勅書·임금이 훈계하거나 알릴 내용을 적은 글)입니다. 백성에게 의료 혜택이 미치도록 하라는 황제의 뜻을 담았습니다. 가로·세로 11㎝ 크기의 ‘칙명지보(勅命之寶)’ 국새(國璽)도 찍혀 있죠. 대한의원이 대한제국의 공식 기관임을 선포하는 공식 문서입니다.

올 6월에는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피격 당시 입었던, 피 묻은 옷[血衣]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조끼·토시·적삼·저고리·바지·대님·양말 등 총 8종 10점입니다.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의복에 남은 피를 검사하면서 김구 선생의 혈액형이 AB형인 것을 밝혀낸 적도 있었죠.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주석으로 있을 때 쓰던 인장(印章), 윤봉길(1908~32) 의사가 중국 상하이로 ‘거사’를 떠나던 날 아침 맞바꿨던 회중시계 등도 문화재로 인정받았습니다. 평생 독립과 통일의 꿈을 꾸었던 선생의 면모를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역사적 인물의 유물·유적 등을 계속 조사해 문화재로 보존해 나갈 계획입니다.

등록문화재는 구한말 개항기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 만들어진 건축물·산업유산·예술품 등을 가리킵니다. 우리 귀에 익숙한 국보·보물·사적 등은 지정문화재라고 합니다. 등록문화재는 아직 ‘연차’를 채우지 못한 ‘젊은’ 문화재인 셈이죠. <표 참조> ‘앞으로, 앞으로’ 숨가쁘게 달려왔던 20세기 우리 사회의 명암을 짚어 보고, 산업화·도시화 바람 속에서 잊혀졌던 유물·인물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해 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실 국보나 보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해당 유물이 선보일 당시에는 일반 건축물로, 생활용기로, 장식품 등으로 사용됐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치가 재평가되고, 희소성이 덧붙여지면서 오늘날 ‘명품 중 명품’으로 인정받게 된 거죠. 근대문화유산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국보로, 보물로 격상될 수 있을 겁니다.

엘리베이터 설치한 첫 건물은 어딜까

현재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재는 총 442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문화재청 홈페이지(www.cha.go.kr)를 참고하세요. 등록문화재 제1호는 서울 남대문로 한국전력 사옥입니다. 1920년대 말 경성전기주식회사 사옥으로 서울 도심에 세워진 본격적인 사무실 건물이죠. 국내 최초의 내화·내진설계, 엘리베이터 설비로 화제가 됐습니다. 442호는 김구 선생의 유묵 ‘한미친선평등호조(韓美親善平等互助)’ ‘신기독(愼其獨·홀로 있을 때에도 자신을 삼가다)’ ‘사무사(思無邪·생각함에 그릇됨이 없다)’ 석 점입니다. 각각 백범 선생의 시대인식, 자기관리를 보여줍니다.

근대문화유산 등록제는 2000년 도입됐습니다. 각종 개발계획과 도시화 바람 속에서 철거·훼손될 위험에 있는 유물을 보존하고, 후세에 물려주자는 목적에서였습니다. 예컨대 과거 영화 팬들이 드나들었던 국제극장·국도극장·스카라극장 등은 지금 형체도 없이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근대문화유산은 이에 대한 자성입니다. 성장·발전도 중요하지만 간직해야 할 건 간직해야 한다는 깨달음이죠.

근대문화유산은 영역이 상당히 넓습니다. 도입 초기에는 주로 건축물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요즘에는 “이것도 문화재야” 할 만큼 ‘다크호스’가 속속 합류하는 모양새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현대 대중문화의 총체인 영화도 2007년 문화재로 승격됐습니다. ‘미몽’(일명 ‘죽음의 자장가’·1936년), ‘자유만세’(1946년), ‘검사와 여선생’(1948년), ‘마음의 고향’(1949년), ‘피아골’(1955년), ‘자유부인’(1956년), ‘시집가는 날’(일명 ‘맹진사댁 경사’·1956년) 등입니다. 다들 제작된 지 50년이 넘은 작품이죠. 소위 ‘딴따라’로 폄하됐던 대중문화의 제자리 찾기입니다. 한국영화의 효시 격인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1926년)의 원본 필름이 발견되면 어떨까요. 아마도 ‘국보급’ 유물로 승격되지 아닐까요.

옛 삼륜차·전화기·간이역 … 어제를 돌아보는 거울

한국전쟁의 목격자인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등록문화재 제78호)
등록문화재는 정치·경제·종교·교육 등 20세기 한국인의 생활상을 포괄합니다. 요즘 역사학계의 큰 흐름인 미시사(微視史), 즉 거대담론보다 소소한 일상을 주목하는 연구 경향과 유사한 맥락입니다. 예컨대 우체통도 문화재입니다. 광복 전후 체신행정을 보여주는 우체통 두 개(충남 천안시 소재)가 올 4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됐습니다. 전화기도 마찬가지죠. 1920~50년대 사용됐던 벽걸이형 자석식 전화기·공전식 전화기도 어엿한 문화재입니다. 현대인의 필수품인 휴대전화도 몇 십 년 후에는 ‘골동품’ 대접을 받지 않을까요.

자동차도 한번 살펴보죠. 순종(1874~1926) 황제가 탔던 캐딜락 리무진, 이승만 대통령의 의전용 캐딜락 62 세단, 박정희 대통령의 업무용 시보레 비스케인 세단 등 정치·사회적 의미가 각별한 승용차는 물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소방차(상주의용소방대 소방차), 최초의 국산경차(신진 퍼블리카), 최초의 국산 트럭(기아 경3륜 트럭) 등도 문화유산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차를 통해 본 20세기 한국의 생활사·산업사인 셈이죠. 1953년 공군이 국내 최초로 자체 설계·제작한 항공기 ‘부활’, 1940년대 중반부터 전국 철도의 주요 간선 226만㎞를 달린 증기기관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면 전차 등이 근대문화재로 오른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1920년대 벽걸이형 자석식 전화기(등록문화재 제429호)
아련한 향수를 일으키는 유물도 있습니다. 돌과 흙을 운치 있게 쌓아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구현한 옛 담장(경남 고성군 학동마을, 경북 성주군 한개마을, 전남 강진군 병영마을 등)과 떠나는 이, 만나는 이의 사연을 소록소록 간직한 간이역(경기도 고양시 일산역, 충북 영동 심천역, 강원도 삼척시 도경리역 등)은 속도와 경쟁에 지친 우리들을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1930년 함석지붕 목조건물로 만들어져 3대째 전통주를 빚어온 술도가(충북 진천군 덕산양조장)는 어떻고요. 염전(전남 신안군 증도 태평염전, 전남 신안군 비금도 대동염전)과 등대(전남 고흥군 옛 소록도갱생원 등대, 전북 군산시 어청도 등대 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보존만큼 중요한 게 활용이다

근대문화유산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국보·보물 같은 지정문화재가 우리의 생활과 먼 곳에 있는 것이라면 등록문화재는 가까운 이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등록문화재 건축물 다수는 지금도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멀리서 감상하는 문화재가 아닌 항상 함께하는 문화유산인 거죠. 이 때문에 보존만큼 중요한 게 활용입니다.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은 이제 너무나 유명한 보기가 됐습니다. 오래된 기차역을 멋진 미술관으로 재활용했죠. 식민지·산업화 시대의 애환을 목격한 서울역도 현대 문화공간으로 변신할 태세입니다.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선진 각국은 오래전부터 건축물의 보존·재활용 방안을 법으로 정해 놓았죠. 근대건축 보존·활용 문제에 관한 국제단체인 ‘도코모모(DOCOMOMO)’도 1990년 결성됐습니다. 국내에서도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한국은행 본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옛 서울구치소), 서울시립미술관(옛 대법원 청사), 서울시립미술관 남부지원(옛 벨기에 영사관), 정독도서관(옛 경기고교) 등 관련 사례가 많습니다.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비교적 현상(現狀) 변경이 자유롭습니다. 국가에서 수리비 등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오래됐다고 허물거나 파괴하는 대신 새로이 바꾸어 쓰는, 소위 전통에 현대를 얹는 정신, 그래서 후손들에게 ‘낡은 과거’가 아닌 ‘예스러운 현재’를 물려주는 게 바로 근대문화유산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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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