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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의 hot&pop] 한식 세계화의 비법 ‘재즈삼바’에 숨어 있어요

1962년 발매된 jazzsamba의 앨범 크레딧
아내는 외출했고, 저는 배가 고프군요. 허기를 음악으로 달래볼 요량으로 택한 곡이 재즈 삼바 (jazzsamba)였습니다.

색소포니스트 스탠 게츠(stan getz)와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charlie byrd)가 1962년 만들어 미국시장에서 보사 노바(bossa nova) 열풍을 일으킨 앨범이죠.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스탠 게츠는 이 앨범에 수록된 ‘desafinado’라는 곡으로 베스트 재즈연주상을 수상합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한때 잘나갔던 앨범 얘기처럼 들리죠. 그런데 조금 다른 얘기가 있답니다. 분명히 음악은 보사노바인데 앨범 타이틀은 재즈삼바로 돼 있습니다. 또 desafinado를 쓴 젊은이는 브라질 사람이고, 이 곡을 브라질에서 가져와 소개한 사람은 찰리 버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상을 받지 못했죠. 이 정도 사안이라면 아마 우리 같았다면 각종 고소·고발로 얼룩졌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계기로 브라질의 음악인 ‘보사노바’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돌풍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럼 이제, 처음부터 이 앨범이 나오게 된 과정을 초간단 버전으로 되짚어 볼까요?

1950년대 중반, 브라질 중상류층은 무언가 새롭고 세련된 것에 대한 욕구를 보입니다. 70년대 이대 입구에서 판탈롱 바지 입고 한 손엔 외국 잡지 들고 집에서 팝송 듣던, 사촌누나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이때 브라질 음악의 뿌리인 삼바를 미국지향적으로 세련되게 개조한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보사노바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도 이때 등장합니다.

원래 브라질 음악인 삼바는 여럿이 함께 많은 타악기를 동시에 두드려야 하는 것인데 조빔은 깔끔하게 드럼 하나만으로 바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스네어 드럼의 테두리만 치는 림샷(rim_shot)으로 주로 연주해 시끄럽지 않게 하고, 거기에 기타를 메인으로 화성을 자주 바꾸고, 보컬을 중점적으로 하되 그것도 소프트하게 바꾼 것이 바로 보사노바(새로운 경향이란 뜻)입니다.

브라질에 공연 겸 놀러갔던 찰리버드라는 기타리스트가 이러한 음악을 듣게 됩니다. 그러곤 미국에 돌아가서 이 곡들을 연주하다가 스탠 게츠를 만나 만든 앨범이 바로 앞서 소개해 드린 재즈삼바입니다. 보사노바의 미국식 해석이 재즈삼바인 것이죠. 말하자면 보사노바는 미국인들에 의해 미국인들을 위한 음악으로 재해석된 뒤에야 세계적 음악으로 거듭난 것이죠.

문화의 세계화란 바로 보사노바와 같은 사이클로 굴러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적어도 강대국이 (또는 미국이) 패권을 쥐고 있는 현재 지구의 상황이 음악과 음식과 기타 등등 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 같군요. 배가 고픈 탓일까요. 문득 재즈삼바를 듣다 말고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한식 세계화’에 대한 담론으로 논리가 비약합니다.

한식을 웰빙식품으로 홍보해야 한다거나 장과 같은 발효식품의 우수성부터 홍보해야 한다는 등 정말 많은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식은 전통 그대로가 아닌 글로벌 스탠더드화(한마디로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다는 뜻이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어지는군요. 바로 외국인 셰프와 외국인 엔터테이너들이 뛰어주어야만 한식은 세계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재즈삼바처럼 한국에 들러 한식의 가능성을 예감한 한 외국인이 본토로 날아가 영향력 있는 유명 요리사에게 한식의 가능성을 설파합니다. 이 요리사는 자신의 레시피에 한식의 요소를 첨가해 변형된 이름을 달아줍니다. 보사노바가 재즈삼바가 된 것처럼요. 실제로 보사노바는 어느 나라 음악인지 잘 모르겠지만 재즈삼바 하면 브라질 음악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지 않나요? 외국 셰프가 만든 한식에도 이렇게 분명한 정체성이 보이는 이름이 붙으면 좋겠죠. 이게 서서히 알려지면서 변형된 한식은 한식당이 아닌 서양 레스토랑 메뉴의 하나로 자리를 잡습니다. 차츰 명사들의 단골메뉴가 되고, ‘섹스 앤 더 시티’류의 트렌디한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들이 이를 먹는 장면이 자주 보입니다. 뒤를 이어 수퍼마켓에서 사서 바로 즐길 수 있는 변형된 한식 가공식품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한식이 세계화된 모습이겠죠.

그런데 피자가 세계화돼 돈을 버는 게 이탈리아가 아니듯 한식이 세계화돼 돈을 버는 게 한국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맛을 보유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되겠죠. 우리가 세계의 ‘문화시민’이 되는 그날까지, 음악도 음식도 분발합시다.

남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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