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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대한민국 아줌마 네트워크

아줌마는 힘이 세다. 특히 대한민국 아줌마는 더 그렇다. 버스나 전철의 자리 쟁탈전에서 거둔 백전백승은 전설이 된 지 오래다. 각종 돈 안 되고 인기 없는 스포츠에서 금메달로 국위 선양하는 단골도 아줌마다. 살림하고, 애 교육하고, 돈까지 버는 일인삼역은 일 축에도 못 든다. 혼자일 때도 강하지만 뭉치면 더 세진다. 이른바 아줌마 네트워크 파워다.

아줌마 네트워크는 정치·교육·사회는 물론 경제까지 들었다 놨다 한다. 집값·땅값을 주물럭거리는 것도 예삿일이다. 경제 정책 다루는 이들이 숫자만 신경 쓰고 아줌마 네트워크를 무시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아줌마 네트워크는 시간이 갈수록 튼튼해지고 넓어진다. 젊어서는 호호탕탕 큰소리치다가 은퇴 후면 급속히 힘이 빠지는 아저씨 네트워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학부모로, 동네 주민으로, 각종 문화행사로 이어진 생활밀착형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아줌마의 약속은 늘어가는데 아저씨는 혼자 집 보고, 혼자 밥 먹는 때가 많아지는 것도 그래서다.

본격 아줌마 네트워크의 효시는 잠실부녀회다. 1975년 잠실아파트 1~4 단지가 준공됐다. 작은 평형이 많아 입주자 부인들 나이도 대부분 26~35세로 비슷했다. ‘비슷하면 뭉친다’더니 부인들끼리 모여 각종 어머니회를 만들었다. 이게 78년엔 대한민국 최초·최대의 아파트 부녀회로 탈바꿈했다.

덩치가 커지자 영향력도 커졌다. 78년 7월 말 부녀회의 한 주부가 택시합승을 문제삼았다. “네 사람이 합승을 하는데 왜 모두 주행거리에 해당하는 요금을 내야 하느냐, 부당요금 징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 택시들은 합승이 본업일 정도였다. 승객 한 사람만 태우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이 발언이 옮아 붙더니 눈덩이처럼 커졌다. ‘잠실부녀회에서 합승 택시를 고발했다’로 발전했다. 화가 난 택시들이 실력행사에 나섰다. 잠실행 승객에 대해 승차를 거부했다. 잠실부녀회도 택시 안 타기 운동으로 맞서면서 사회 문제로 비화했다. 사건이 종료된 건 그해 10월 초. 잠실부녀회 대표가 택시조합 간부를 찾아가 사과했다. 정의감에 불탔던 부녀회의 무조건 항복이었다. 지하철 2호선이 완공 전인 데다 대중교통도 변변치 않아 출퇴근길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패배는 한 번으로 족했다. 이후 아줌마 네트워크는 더 치밀해지고 단단해졌다. 가끔 자기 이익을 위해 정부 정책이나 사회정의를 깔아뭉개기도 했다. 3~4년 전 극성을 부렸던 아파트 부녀회의 집값 담합이 그런 예다. 싸게 집을 파는 부동산중개업소와는 거래를 끊고 일정한 가격 아래로는 집을 내놓지 못하게 막았다.

당시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엔 ‘단결하면 오르리라’는 부녀회 명의의 플래카드가 나붙기도 했다. 그러잖아도 가파르게 오르던 집값은 아줌마 네트워크의 힘이 보태져 가속도가 붙었다. 자고 나면 몇 백만원씩 올라 집값과의 전쟁을 벌이는 당국자의 가슴을 울렸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부녀회 담합을 처벌하려 했지만, 마땅히 적용할 법이 없어 손을 들고 말았다. 오죽하면 당시 한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증시 격언에 재무부를 거스르지 말라는 얘기가 있지만 옛말 된 지 오래”라며 “우리나라에선 아줌마를 거스르지 말라는 새 격언을 만들어야 할 판”이라고 했을까.

요즘 또다시 집값·전셋값이 꿈틀거리고 있다. 경제 회복을 위해 쏟아부은 돈이 증시로, 부동산으로 몰리면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정 규모에 비해 돈을 가장 많이 푼 나라다. 시장의 쏠림 현상도 심해 뭉칫돈이 방향을 잃고 한 쪽으로 몰릴 때도 많다.

이럴 때 자칫 아줌마 네트워크가 잘못 작동해선 곤란하다. 행여 집값 올리고 땅값 부추기는 뒷담화가 지금 오가고 있다면 깨끗이 잊어주시라. 요즘 강남 사모님들이 삼삼오오 돈 싸 들고 강남 재건축 아파트며 그린벨트 땅 사들이기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리기에 하는 소리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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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