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뢴트겐·퀴리·아인슈타인 … 수상자 리스트가 곧 '권위'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896년 ‘다이너마이트 왕’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던 독신의 백만장자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한 후 그의 유언장이 공개됐다.“나는 유언 집행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진행시켜 줄 것을 지시한다. 그들은 상술한 재산의 나머지를 현금으로 바꾸어 이를 안전한 보험에 투자해야 한다. 이로부터 발생한 이자는 해마다 바로 전 해 동안 인류를 이롭게 하는 데 가장 실질적으로 기여한 사람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데 쓰여야 한다.… 수상자를 선정할 때 후보자의 국적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칸디나비아 출신 여부에 관계없이 그 상을 받아야 한다.”

노벨상은 이렇게 해서 생겼다. 노벨이 유언장에 언급한 상의 순서는 물리,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평화상의 순이었다. 이 때문에 수상자들은 시상식장에 이 순서대로 입장하고 앉는다.

경제학상은 1968년 스웨덴 국립은행이 창립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했다.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 기념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 줄여서 ‘노벨 기념 경제학상’으로 부른다. 이 때문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앞면이 아니라 뒷면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메달을 받게 된다. 수학상을 제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노벨이 당시 자신의 연인을 빼앗아간 수학자 미타그레플러를 미워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노벨상 격의 상으로는 ‘필즈상’이 꼽힌다.

1901년 첫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X선을 발견한 독일의 빌헬름 뢴트겐이었다. 1903년 수상자는 방사능을 연구한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부부.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 인정받던 뢴트겐에게 첫번째 상이 돌아감으로써 노벨상은 스스로 권위를 세웠다. 다 허물어져가는 판잣집에 살면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누추한 퀴리 부부의 스토리는 노벨상이 진정한 과학자에게 돌아가는 상이라는 이미지를 확산시켰다.

노벨상의 권위는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더욱 빛난다. 상대성 이론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21년 수상), 중성자를 발견한 제임스 채드윅(35년), 느린 중성자 핵반응을 발견한 엔리코 페르미(38년), 양자전기역학의 기초원리를 연구한 리처드 파인먼(65년) 등 최고 과학자들의 이름을 수상자 명단에서 발견할 수 있다.

권위와 공정성, 국적을 가리지 않는 개방성으로 대변되는 노벨상이지만 항상 정확하게 ‘전 해 동안 인류를 이롭게 하는 데 가장 실질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26년 덴마크의 병리학자 요하네스 피비게르는 기생충이 암의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 생리의학상을 받았지만 이는 실험에 쓰였던 특정한 쥐에서만 발견되는 희귀한 현상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26년 양자역학의 기초가 되는 파동함수의 통계적 해석을 창안한 독일인 물리학자 막스 보른은 당시 거물 과학자들의 반대로 28년이나 지난 54년에야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아이슈타인이 21년 노벨상을 받은 것도 상대성 이론이 아닌 광전효과를 설명하는 광양자 이론 덕분이었다. 그는 상대성 이론으로 1910년부터 수십 차례 추천을 받은 상태였지만 당시 노벨위원회는 천체물리학을 물리학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벨상이 마침내 천체물리학에 대한 편견을 버렸을 때인 83년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는 거의 50년 전 연구로 상을 받았다. 정신의학의 거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그의 연구가 너무 선정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정치적 배경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38년 프로이트는 친구인 작가 아놀드 츠바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처럼 공식적인 위치에 있는 그룹이 (유대인 망명자인) 나에게 상을 줌으로써 나치 독일에 도발적인 도전장을 내미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사후에는 상을 주지 않는다는 노벨상의 규칙은 한국 과학계에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돕다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숨지는 핵물리학자로 묘사된 고 이휘소 박사는 세계 과학의 큰 별이었다. 77년 42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 박사는 현대물리학을 대표하는 이론 중 하나인 ‘약한 상호이론’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7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파키스탄 출신 압두스 살람은 수상 소감에서 “이휘소는 현대물리학을 10여 년 앞당긴 천재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9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헤라르뒤스 엇호프트도 시상식장에서 “양자역학에 대해 엄청나게 공부한 이휘소 박사를 만났던 것은 하늘이 내게 내려준 행운이었다”며 그를 기렸다.


박혜민 기자 acirf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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