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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순·최동원도 비켜가지 못한 ‘체벌의 기억’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최근 프로야구 LG트윈스에서 선배 선수가 후배를 구타했다. 스포츠계는 유난히 체벌 시비가 잦다. 폭력도 문제지만 사실을 숨기려 드는 침묵이 더 큰 문제 아닐까.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태초’에 폭력이 있었다. 1982년 태동한 한국프로야구계에서는 개막 첫 달 감독이 해임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주인공은 ‘빨간 장갑의 마술사’ 해태 김동엽씨였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스타일의 김동엽씨 밑에서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한 두 명의 코치가 4월 어느 날 새벽 야반도주를 했다. 팀이 발칵 뒤집혔고 구단은 진상 파악에 나섰다. 언론의 먹잇감이 돼버린 해태 구단은 그해 4월 28일 김 감독을 퇴진시켰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동엽씨는 그때, 코치들의 거부와 항변을 이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엘리트 스포츠 중의 엘리트 스포츠인 프로 무대, 그중에서도 한국 프로스포츠의 간판임을 자부하는 프로야구계에 수십 년 된 이 고질병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인가. 서울의 명문구단 LG 트윈스가 최근 ‘2군 폭력 사태’에 휘말렸다. 8월 8일 2군 훈련장인 구리구장에서 투수 서승화(30)가 야구 배트를 사용해 후배 야수 이병규(26)를 ‘체벌’했다. 상황을 지켜본 주변의 동료와 선후배들은 서승화가 이병규에게 “선배를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병규는 머리에 상처가 났고, 병원으로 달려가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다. LG구단은 쉬쉬하다가 소문이 퍼지자 뒤늦게 언론에 이를 알렸다. 서승화를 23일 롯데와의 경기에 선발투수로 내정했다가 급히 바꾸었다.

스포츠팀, 스포츠 조직의 체벌은 뿌리가 깊고 굵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행’이라는 이름의 ‘보호색’이 슬쩍 뿌려진다. 의혹이 제기되고, 사건이 공개되면 관련자들은 부인하다가 ‘적당한 수준’에서 징계가 내려진다. 그리고 ‘경기는 계속돼야 하니까’ 오늘도 리그는 진행된다. 동료를 감싸주며 두둔하는 의식도 필수다. 구단의 홍보팀과 몇몇 미디어가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며 사태를 종료시킨다. 서승화 사건에 대한 조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 구단이나 김재박 감독이 공개사과를 했다거나 어떤 조치를 했다는 뉴스는 없다.
 
최동원 “대학 옮기게 해 달라”
30년 전 봄으로 돌아가 보자. 79년 3월 24일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구장에서 벌어진 제13회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동국대와의 경기에서 2-4로 패한 연세대의 상급생 선수가 매를 들었다. 체벌을 받은 후배 선수는 한독병원에서 ‘둔부 타박상, 17일 치료 요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선수의 아버지는 당시 연세대 감독 이재환씨에게 항의한 다음 3일 뒤인 3월 27일 아들을 팀에서 불러냈다. 그리고 다른 학교(동아대)로 이적할 수 있도록 이적동의서를 써 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다. 몇 개월 뒤인 6월 4일. 대한야구협회의 중재로 선수와 선수의 아버지가 학교에 정식으로 사과를 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매를 든 선배는 프로 원년 22연승의 대기록을 세운 박철순(전 OB-두산), 맞은 후배는 한국야구 최고의 에이스 최동원(전 롯데-삼성)이었다.

이상은 원로 야구기자 홍순일(전 문화일보 부국장)씨가 저서인 『한국프로야구 인명사전』에 정리한 내용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체벌을 받고 학교를 떠나 이적을 요구했던 선수가 나중에는 학교에 사과를 한다.

박정혁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휘문고-고려대 출신의 슬러거. 고교-대학 시절 각종 국제대회에서 대표팀의 주전선수로 이름을 날린 선수다. 그는 90년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서 공주고를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며 괴물 타자의 등장을 알린다. 상대 투수는 지금도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였다. 박정혁은 다음 날 광주진흥고와의 경기에서도 홈런을 쳐 4연타석 홈런 기록을 세운다. 그런데 박정혁은 고려대를 졸업한 뒤 가까스로 LG 2군에 입단한다. 갑자기 야구기량이 쇠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정혁의 쇠퇴를 게으름과 자만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박정혁은 91년 겨울 괌에서 열린 서태평양 연안 초청 야구대회에 참가한 직후 고등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에 고려대 야구부에 합류해 합숙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무렵 심한 체벌을 받았다고 한다. 체벌이 심했는지 허리와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 LG 2군에서도 별 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그는 은퇴 후 TR엔터테인먼트라는 에이전시 회사를 세우는 등 새 인생을 시작했으나 2000년 12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꿈 많은 열아홉 살 소년, 아직 대학이, 대학야구가 어떤 것인지도 몰랐을 고교졸업 예정선수 박정혁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 선배에게 체벌을 당했는지 알 수 없다. 체벌을 가한 선배는 은퇴한 뒤 초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코치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일반회사 직원이 됐다.
 
박철순 “프로 은퇴하겠다”
94년 9월 4일. 프로야구 OB(현재 두산)가 해태와의 군산 경기에서 패한 뒤 분란을 빚었다. 당시 감독은 윤동균씨. 윤 감독은 불같이 화를 내며 “오늘은 매를 들어야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고참 선수를 포함한 17명의 선수가 체벌에 응하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당시 최고참 선수는 박철순이었다. 그는 자신의 은퇴와 윤 감독의 퇴진 중 하나를 택하라고 구단에 요구했다. 윤 감독은 결국 사표를 냈다. 2002년 8월 중순. 프로야구 KIA에선 김성한 감독이 포수 김지영을 심하게 혼내 문제가 됐다. 훈련 도중 김지영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자 답답해진 김 감독이 ‘정신차려라’고 말하면서 배트로 김지영의 헬멧을 세 번 두드렸다. 그런데 김지영의 머리에 상처가 났고, 이 일이 알려지자 팬들의 비난이 거셌다. 당시 선수단에서는 소위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김 감독을 비난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성명서는 ‘사랑의 매’임을 강조했고 화합과 팀 플레이도 언급했다. 헬멧이 약해 생긴 일이라는 설명도 나왔다. 김지영은 그해 시즌이 끝난 다음 은퇴했고, 김성한 감독은 2004시즌 중도 하차했다.

OB의 사례는 한국스포츠에서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KIA의 사례는 “스포츠는 전투이며 함께 뛰다 보면 그런 정도의 트러블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는 현장 스포츠인들의 의식 단면을 보여준다.
 
후배 앞길 막은 폭력
학교 운동팀에 신입생으로 합류한 고교 1년생, 대학 1년생은 선배들에게 팀 화합과 정신 집중이라는, 그들로서는 매우 중요한 이유 때문에 적잖이 체벌을 당한다. 1년 뒤 이들은 체벌을 하는 입장이 된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한국의 운동선수들은 ‘글러 먹은 정신상태’가 뺨이나 머리통·엉덩이·무릎 같은 곳에 붙어 있다. 당연히 체벌을 가하는 선배나 지도자들은 글러 먹은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 그곳에 ‘사랑의 매’를 가한다. 체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심하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프로야구 서울 연고 구단의 한 트레이너는 “얼마 전에도 우리 팀에 불상사가 있었다. 야수 선배가 후배 투수를 손찌검해 팀 내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역시 이번에도, 쉬쉬하고 넘어갔다”고 답답해했다. 이 침묵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체벌도 문제지만 체벌로 인한 문제를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가장 상투적인 처방이 침묵이라는 데에. 사실 폭력은 침묵을 강요하는 데 사용되는 법이지만 침묵은 잠시일 뿐 먼저 상처가, 그 다음엔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스포츠에서 체벌로 완성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김성원 기자 rough197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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