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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하토야마’ 조부가 만든 자민당 무너뜨리다

올 2월 도쿄 중의원 근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62) 민주당 대표의 개인 사무실. 집무실로 들어서자 당시 간사장이던 그는 10㎡(3평) 남짓한 아담한 공간에서 담담하게 기자를 맞아주었다. 4인용 소파의 절반에는 일본의 미래와 동아시아 외교 정책을 주제로 한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을 얼마나 치열하게 궁리하고 있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일본 여론은 정권 교체 가능성에 반신반의했다. 기자는 그에게 왜 정권 교체를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우애(友愛)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며 “시대에 낙오한 자민당을 헐고 새로운 정책과 새 인물들이 중심이 돼 꽉 막힌 일본을 환골탈태시켜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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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런 신념은 조부 이치로(一郞) 전 총리의 정치 철학에서 비롯된다. 하토야마는 “우애는 조부 이치로가 프랑스 혁명의 슬로건인 박애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 용어”라고 말했다. 그는 ‘우애 사회’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고, 국가 간에는 평화롭게 도와가며 살아가는 것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주당 대표 취임 연설에서도 “나라의 역할을 외교·방위, 재정·금융, 자원·에너지·환경 등으로 한정하고 국민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권한·재원·인재는 지방에 이양해 지역 실정에 따라 결정하게 하는 시스템으로 변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토야마는 정치 철학뿐 아니라 집념과 승부욕에서도 조부 이치로의 영향을 받았다. 자유당 총재였던 이치로는 1946년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 취임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으나, 그의 반미 발언이 연합군사령부(GHQ)에 들통나면서 정계에서 추방됐다. 어쩔 수 없이 당을 2인자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에게 맡겼다.

이치로가 5년 후 사면을 받아 정계로 돌아오자 요시다는 ‘원맨 총리’로 불리며 정계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돌아오면 자리를 돌려주겠다”고 했던 약속은 휴지조각이 된 지 오래였다. 요시다는 이번 총선의 패장인 아소 다로(麻生太郞)의 외조부다. 하토야마-아소의 집안 대결은 60여 년 전 이치로-요시다의 권력투쟁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치로는 와신상담 끝에 55년 자유당·민주당의 보수대연합을 통해 ‘자유민주당’을 출범시키면서 자민당 정권의 첫 총리가 됐다.

하토야마는 조부가 만든 뒤 54년간 일본을 통치해온 자민당을 30일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렸다. 3대에 걸쳐 이뤄진 하토야마 대 요시다 가문의 대결도 승리로 장식했다. 조부가 만든 당을 대상으로 정권교체를 이뤄 총리 취임을 눈앞에 둔 하토야마의 성공은 너무 극적으로 보이지만 그의 정치 역정은 험난했다.

그는 ‘일본의 케네디가’로 불리는 정치명문가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그저 ‘고생도, 세상 물정도 모르는 도련님’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화려한 집안 내력은 중의원 의장을 지낸 증조부에서 시작돼 총리를 지낸 조부 이치로에 이어 외상을 역임한 아버지 이이치로(威一郞)로 내려온다. 하지만 부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약관의 나이에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세습 정치인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하토야마 집안의 ‘전통’처럼 돼버린 도쿄대를 졸업한 그는 “학자의 길을 걷겠다”며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에 돌아와서도 센슈(專修)대 조교수(경영학)를 하면서 정치와 거리를 뒀다. 그러다 86년 동생 구니오보다 뒤늦은 39세의 나이에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자민당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93년 자민당이 일시적으로 분열될 때 이상주의를 내걸고 탈당한 그는 96년 민주당을 결성한 뒤 13년간 야당 생활을 했다. 야당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 2003년 당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의 자유당과 합당할 때는 혁신적인 당내 인사조치를 취하려다 당내 반발에 부닥쳐 대표직을 내놓았다. 이후 그는 몸을 낮춰 민주당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다 때가 오자 정권교체를 달성했다. 조부에 이어 총리가 되면서 일본 정치사에서 ‘포스트 자민당 시대’의 주역이 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거인인 오자와를 넘어 자신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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