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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계의 ‘대모’ 하토야마 어머니 야스코

하토야마 야스코(鳩山安子·中)가 아들인 유키오(由紀夫·右)·구니오(邦夫) 형제와 함께 도쿄 분쿄(文京)구에 있는 하토야마 이치로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유키오 형제의 할아버지인 하토야마 이치로는 자민당 출신 첫 총리(1955~56년 재임)를 지냈다. [중앙포토]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62)는 일본 최고의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중의원 의장을 지낸 증조부, 총리를 지낸 조부, 외상을 지낸 부친 등의 후광이 항상 그를 따라다닌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 관찰이다. ‘인간 하토야마 유키오’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모력(母力)’이다. 그가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은 세계 최대 타이어업체인 ‘브리지스톤’을 창업한 이시바시(石橋)가문에서 하토야마 가문으로 시집와 일본 정계의 ‘대모(god mother)’로 떠오른 어머니 야스코(安子·87)다.

◆정치 입문, 창당까지 지시=도쿄 센슈(專修)대학 교수로 있던 유키오가 돌연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1985년. 38세 때였다. 부친 이이치로(威一郞)는 맹렬하게 반대했다. “정치가는 나쁜 인간들이 하는 것”이라며 달랬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야스코가 말했다. “내가 정치를 시키겠습니다.”

야스코는 즉각 도쿄 도심에 유키오가 쓸 사무실을 마련해 줬다. 도쿄대 졸업 직후 정치판에 뛰어든 동생 구니오(邦夫·61) 때도 마찬가지였다. 야스코는 정계 진출에 반대하는 남편 몰래 구니오의 손을 잡고 당시 자민당 간사장이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의 집을 찾았다. 야스코는 다나카와 직접 담판해 구니오를 다나카의 비서로 채용시켰다.

야스코는 자신의 남편을 “정치가로서는 ‘3류’”라고 자인했다. 그래서 더욱 자식 중 한 명은 총리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정치 지도는 엄격했다. 86년 지역구인 홋카이도(北海道)로 떠나는 유키오에게는 이렇게 다짐시켰다. “앞으로 이 집에 돌아올 때는 ‘다녀왔습니다’라고 해선 절대 안 된다. 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넌 홋카이도의 인간이다.”

선거전도 야스코의 몫이었다. “내가 20분 연설한 뒤 모친이 1분 인사말을 했는데, 누구나 인상에 남는 건 모친 이야기였다고 한다”(유키오의 96년 인터뷰). 이이치로의 비서였던 후지세 겐조(藤瀨憲三)는 “홋카이도의 넓은 지역구를 다 훑고 돌아다니면서 바닥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야스코의 모습에 모두가 깜빡 넘어갔다”고 털어놓았다.

이러니 유키오나 구니오가 어머니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96년 초 국회가 주택금융회사 부실 처리 문제로 장기간 공전하자 야스코는 유키오에게 전화를 걸어 한마디 던지고는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너도 구니오도 의원 배지 다 빼버려. 그리고 둘이서 신당을 세워.” 두 형제가 ‘민주당’을 창당한 것은 이로부터 불과 8개월 후였다.

◆하토야마 가문의 마르지 않는 ‘돈줄’=야스코는 브리지스톤의 창업자 이시바시 쇼지로(石橋正二郞)의 장녀다. 정치 명문가인 하토야마 가문과는 일본 최고 별장촌인 가루이자와(輕井澤)에서 옆집에 살았다. 한때는 아예 도쿄 아자부(麻布)에 있는 이시바시 저택에서 두 집안이 함께 살았다. 하토야마 가문을 금전적으로 지탱한 것은 이시바시 가문이었다. 유키오의 재산 86억 엔(약 1140억원) 중 65%는 브리지스톤 주식이다. 쇼지로는 외손자들에게 생전에 브리지스톤 주식을 대량 증여했다. 또 고급 저택촌인 덴엔초후(田園調布)의 자택(6억5000만 엔), 홋카이도의 집(6000만 엔), 현지 사무소(3600만 엔)도 모두 야스코가 사준 것이다. 동생인 구니오(총재산 89억 엔)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형제의 재산을 다 합해봐야 야스코의 재산(약 180억 엔)에는 미치지 못한다. 96년 하토야마 형제가 민주당 창당 비용 25억 엔 중 17억 엔을 내놓으며 당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야스코 덕분이었다. 야스코는 이시바시 가문의 재력과 하토야마 가문의 인재를 결합해 아들을 총리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현재 야스코는 도쿄 도심의 최고급 개호시설에서 정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원격 정치’ 중이다. 뭔가 전할 메시지가 있으면 유키오와 구니오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한다.

◆유키오의 애창곡은 ‘어머니’=유키오에 있어 야스코는 모든 일의 해결사였다. 유키오가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 중에 유부녀인 네 살 연상의 미유키(현 부인·66)와 사랑에 빠져 미국에서 결혼할 때 야스코는 미국을 찾았다. 그러곤 아무도 몰래 미유키의 전 남편을 찾아가 고개 숙여 용서를 빌었다.

96년 홋카이도의 술집 여성과 유키오의 불륜 스캔들이 일어났을 때였다. 며칠 후 부인 미유키는 “만약 그게 사실이었다면 (유키오가) 불쌍해서 눈물이 나올 일입니다. 처자와 멀리 떨어져 얼마나 쓸쓸했으면…”이란 ‘명대사’를 내놨다. 이 대사 하나로 스캔들은 ‘하토야마 부부 사랑 재확인’으로 둔갑했다. 물론 이는 야스코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유키오가 노래방에서 늘 열창하는 노래는 ‘어머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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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