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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동갑내기 고종과 메이지의 운명

일본에서 정치 대지진(大地震)이 발생했다. 1955년 자민당 체제가 시작된 이후 54년 만에 본격적인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98년 김대중(DJ)의 집권으로 건국 50년 만에 여야 간에 제대로 정권이 바뀐 것과 같다(60년 4·19 혁명 후 야당집권이 있었지만 9개월에 불과했다). DJ 집권으로 한국이 얼마나 큰 변화를 겪었는가. 일본의 선거혁명은 앞으로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한·일 경쟁의 역사에서도 제3장이 펼쳐지는 것 같다.

경쟁의 제1장은 1852년부터 한국이 해방된 1945년까지였다. 19세기 후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격변기에 조선과 일본의 지도자는 고종과 메이지 천황이었다. 역사의 얄궂은 장난인가. 두 사람은 똑같이 1852년에 태어났다. 돌이켜보면 역사의 신은 두 사람을 같은 출발선에 세우고 경주를 시킨 것이다. 두 사람이 태어났을 때 조선과 일본의 국력은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죽었을 때(메이지 1912년, 고종 1919년) 두 나라의 운명은 천국과 지옥이었다.

두 나라는 지정학적 위치도, 내부 권력구조도 달랐다. 그러나 결국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른 것은 힘이었다. 일본은 재빨리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힘을 키웠고 조선은 그렇질 못했다. 가장 상징적인 힘은 포함(砲艦)이었다. 1840년 아편전쟁에서 중국(청나라)의 수십만 대군이 영국의 포함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청의 굴욕을 보면서 일본은 서양의 포함(무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절감했다. 1853년 미국의 함대가 일본의 개항을 요구했다. 일본인은 미국의 증기선을 ‘흑선(黑船)’이라 부르며 공포에 떨었고 순순히 요구에 응했다. 일본은 불평등조약으로 힘에 굴복했지만 속으론 칼을 갈았다.

일본은 영국에서 포함을 사들였다. 그러곤 1875년 그 배로 한국의 영종도를 포격했다. 수년 전 대원군은 강화도 포병으로 프랑스·미국 함대와 싸운 적이 있다. 교전 끝에 함대들이 물러가자 조선은 서양의 무력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 전함 몇 척만 만져보고 서양이란 코끼리를 잘못 읽어낸 것이다. 대원군에 이어 아들 고종도 포대만 강화했지 서양배를 본떠 배를 만들 생각은 하질 못했다. 그러나 일본의 메이지는 배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그는 도크를 짓고 큰 배를 만들었다. 일본은 이 포함들로 청나라와 러시아를 무찌르고 조선을 차지했다.

경쟁의 제2장은 45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다. 48년 나라를 세운 한국은 잃어버린 일제 36년을 만회하기 위해 가공할 만한 압축공정을 벌였다. 한국인은 고속도로를 닦고 철과 자동차를 만들었다.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휴대전화와 LCD·LED TV를 생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를 만들었다. 한국은 지금 여러 종목에서 세계 1위다. 조선은 조선(造船)하지 못했지만 한국은 세계 1위 조선국이다. 전자는 소니를 앞섰으며 자동차는 도요타를 추격하고 있다. 골프를 비롯해 여러 스포츠에서도 한국은 일본이 하지 못한 세계 1위를 해내고 있다. 경제규모야 작지만 재정적자·실업률·위기탈출에서도 한국은 일본보다 낫다. 한국은 선조들의 패배를 하나씩 복원해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제3장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다. 민주당 정권이 ‘신(新)일본’을 보여주지 못하면 아예 제3장이란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토야마와 국민이 힘을 합쳐 자민당 세월의 구각(舊殼)을 벗겨내면 일본의 경쟁속도는 매우 달라질 것이다. 메이지 유신(1868년)과 태평양 전쟁, 그리고 1960~80년대 고도성장에 이어 또 다른 일본의 역사가 등장할지 모른다. 정치혁명은 경제혁명보다 심리적으로 더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하토야마의 민주당과 경주를 벌이는 한국의 정치세력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면 한·일 경쟁의 제3장이 걱정된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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