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김영희 칼럼] ‘새로운 일본’을 기대한다

일본 민주당의 총선거 압승은 미국이 지난해 대선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 못지않은 혁명적인 사건이다. 30일의 총선 결과 자민당이 1993~94년의 호소카와 정권 11개월을 제외하고 1955년 이후 반세기 이상 일당 통치를 한 ‘1955년 체제’가 무너졌다.

자민당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으론 3년 사이에 세 번이나 총리를 바꾼 리더십 부재, 5.7%라는 전후 최악의 실업률, 장기 불황 속의 디플레 현상, 고이즈미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온 도농 간 빈부 격차, 아소 다로 총리의 잇따른 실언 같은 것들이 지적된다. 그러나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경제 불황도 많았고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총리도 있었다. 그래도 자민당은 정권을 유지해 왔다. 자민당 패배의 원인은 더 근본적인 데 있다.

일본 유권자들은 마침내 변화를 선택했다. 미국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등장시킨 변화다. 일본 유권자들은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 피로감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1955년 체제로는 일본이 21세기의 새로운 환경과 도전 앞에 품격 있는 국가로 경제력에 걸맞은 대접을 받고 살아갈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때마침 그들 앞에 하토야마 유키오가 대안 인물로 나타났다.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는 유권자들에게 뉴 재팬의 비전을 제시했다. 개념이 애매한 비전이지만 정체성을 상실하고 표류하는 자민당 정부에 좌절한 일본 유권자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그림이다.

일본 유권자들은 하토야마의 사회자유주의적인(Social liberal) 정책 공약에 표를 던졌을 것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어린이들에게 매달 270달러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없애고, 중소기업 법인세를 18%에서 11%로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하토야마는 자신의 개혁을 우애혁명이라고 부른다. 우애(Fraternity)는 그의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 이래 정치 명문 하토야마네의 전매특허다. ‘우애의 일본을 만들자’는 그에게 관료 주도의 정치와 결별하는 것, 시장경제와 사회적 공정·평등의 균형을 잡는 것이 우애혁명이다.

서로의 차이점을 용인하는 우애정신은 다종다양한 인간들이 어깨를 비비고 사는 시대의 국가 간 공생의 필수조건이다. 하토야마는 일본이 너무 오래 아시아를 떠나 있던 과거를 반성하고 아시아로 돌아오자고 한다. 그는 앞으로 50년 동안 일본의 국가 목표로 아시아판 유럽연합(EU) 창설의 선도적 역할을 설정했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 영주권을 가진 재일 한국 동포들에게 지방 참정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북한도 그의 우애외교의 대상에 든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핵실험을 한 북한에 우애외교는 당치도 않다고 비판하자, 하토야마는 가치관이 다른 북한의 체제도 존중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의 아시아 중시 외교의 구상은 메이지 유신의 선각자 후쿠자와 유키치가 1885년 주창한 탈아입구(脫亞入歐)와의 확실한 결별선언으로 들린다.

그가 구상하는 미·일 관계는 노무현의 한·미 관계를 연상시킨다. 하토야마는 미국과 대등한 외교라는 틀 안에서 주일 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SOFA) 개정과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일본 내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을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인도양에서 이라크 다국적군에 급유를 담당하는 해상자위대 활동도 2010년 초 끝내겠다는 입장이다. 하토야마의 이런 자세는 1950년대 그의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가 아소 다로 총리의 외조부 요시다 시게루의 대미(對美) 일변도 외교를 수정해 소련과 국교를 회복한 다변외교와 맥을 같이한다.

하토야마 유키오와 아소 다로의 이번 총선 대결도 1955년 그들의 조부들이 숙적으로 맞붙은 총선거의 재판이다. 그때 하토야마의 민주당은 185석을 얻어 112석을 얻은 요시다의 자유당을 눌렀다. 그리고 총리가 된 하토야마는 자유당과 민주당을 통합해 자유민주당을 만들었다. 그것이 1955년 체제다. 그것을 그의 손자 하토야마 유키오가 요시다의 외손자 아소 다로의 저항을 누르고 해체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뉴 재팬의 탄생을 기대한다. 일당 장기 집권의 혁명적인 종식과 담대한 비전으로 어지럽지만 생산적인 바람을 예고하는 하토야마 정권의 등장은 한국에도 반가운 기회요, 도전이다. 그러나 지켜보자. 하토야마 정부 성공의 대전제는 일본인들의 의식 변화가 진행형일 것, 닫혀 있는 농어촌 사회가 열릴 것, 정당정치가 후진성을 탈피할 것 등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