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명의가 추천한 명의] 권성준 한양대병원 암센터 소장→박일형 경북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

‘1구, 2족, 3약(一口, 二足, 三藥)’.

의사의 첫 번째 임무는 입을 통해 환자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설명하는 일. 두 번째 임무는 아무리 바빠도 발을 움직여 환자를 자주 찾아야 하며, 세 번째로 약을 비롯한 각종 치료 기술을 처방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북대 의대 정형외과 박일형(54) 교수는 병아리 의사 시절부터 명의 소리를 듣는 지금까지 매일 아침, 이 말을 되새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현대의학이 발달할수록 치료법에만 매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의사 생활이 길어질수록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가장 먼저 원하는 것은 의사로부터 ‘따뜻한 위로의 말’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입원 환자는 담당 의사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걸 좋아해요. 치료는 어차피 원칙대로 하는 거잖아요.”


집안의 권유로 1974년 경북대 의대에 진학한 박 교수는 본과 2학년 때 손의 구조를 통해 인체의 신비를 느끼면서 정형외과를 선택했다.

“로봇을 보세요. 손이 자연스럽게 굽혀지려면 손가락 마디 중 손바닥에서 가까운 쪽이 가장 작고 끝마디가 가장 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반대잖아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탄생시킨 손의 기능을 설명해 주는 정형외과야 말로 무궁무진한 학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졸업 후 정형외과 수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과에서 ‘교수 요원’으로 지목돼 90년, 경북대 의대 정형외과 조교수로 발령 받으면서 학자의 길을 걷었다.

“정형외과 의사들은 대부분 환자가 많은 고관절이나 무릎관절을 전공하고 싶어해요. 의국에서도 제가 고관절 수술과 연구를 담당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명을 좌우하는 ‘골육종’ 치료 전문가가 되겠다고 우겼어요.” 골육종 수술 전문가는 당시에도 드물었지만 지금도 10~15명에 불과하다.

종이학 1000마리 접어준 소녀 사망에 눈물

막상 암 치료 의사가 되다 보니 가슴 아픈 사연이 너무 많았다. 특히 90년대 초만 해도 수술 후 항암 치료법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해 환자 세 명 중 한 명은 사망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무릎에 생긴 암 수술을 받고 5년 이상 잘 지내다가 고 3때 암세포가 폐에 전이된 걸 알게 된 여학생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전이된 후에는 흉부외과에 입원해 폐를 절제하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투병 생활을 했어요. 당시 제가 담당한 환자는 아니었지만 5년 동안 진료하던 환자라 매일 병문안을 갔지요. 그런데 석 달쯤 지나 그 학생이 병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학을 1000마리 접어 제게 주면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거예요. 어찌나 슬프던지… 곧바로 ‘고맙다’란 인사를 한 뒤 연구실에 와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결국 그 환자는 며칠 후 평화로운 미소를 띠면서 사망했지요.”

지금은 그 환자의 어머니가 골다공증 환자가 돼 박 교수의 진료실을 찾는다.

골육종 앓은 환자에 뼈 이식수술 성공

의사로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도 많다. 특히 97년, 국내 최초로 골육종 수술을 받은 여덟 살 소녀에게 다른 사람의 뼈를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시킨 일은 자랑스럽다. 암 때문에 도려낸 허벅지 뼈 부위에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뇌사자의 허벅지 뼈와 관절을 영하 40도로 급속 냉각시킨 상태로 비행기로 공수해 와 이식한 것이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모 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박 교수에게 전화를 하며, 당시 무릎관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던 총수에게 생체 골관절 이식수술을 해달라는 부탁이 왔다. 하지만 박 교수는 거절했다.

“생체 골관절 이식수술은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엄숙한 일이기에 나이 어린 암환자처럼 수십 년을 살아가야 할 환자가 치료 대상”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아무리 재력가라도 노년층은 10년 이상 기능을 하는 인공관절 등 다른 치료법을 선택하는 게 윤리적으로 타당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12년이 지난 현재, 수술을 받았던 그 소녀는 잘 자라 명문대 법대에 다니고 있고, 기업 총수는 몇 년 전 사망했다.

박 교수의 학문적 업적은 2001년, 과학기술부 지원을 받아 세계 최초(정형외과학회 공증)로 뼈가 제거된 부위를 수술하지 않고 주사기를 통해 칼슘이 제거된 특수 처리된 뼛가루를 이식하는 기술을 개발한 일을 빼놓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이 기술은 당시 특허를 받지 못했다. 이듬해 같은 방법의 주사 치료제가 미국 기업에 의해 상용화돼 현재까지 널리 이용되고 있다.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이익은 다국적 기업이 가져간 셈이다.

끝으로 박 교수에게 “스스로를 명의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머쓱한 미소와 함께 “명의인지는 몰라도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 좋은 선생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건 맞다”고 대답했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신인섭 기자


권성준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한번 진료한 환자, 다른 병동 옮겨도 보살펴 주죠”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매주 나환자 진료를 하는 건 쉽지 않아요. 박일형 교수는 경북대 교수로 발령 받은 1990년부터 대구 ‘예수의원’이 없어질 때까지 12년 동안 무료로 나환자를 진료했어요. 박 교수는 ‘의사가 어려운 사람을 무료 진료할 때처럼 보람 있는 순간이 또 있을까?라며 ‘사실 내가 그분들을 도와줬던 게 아니라 따뜻한 눈길을 주는 그들로부터 내가 받는 혜택이 더 컸다’고 말해요”

박 교수를 명의로 추천한 한양대 의대 외과 권성준(사진) 교수의 설명이다.

‘한 번 진료한 환자는 평생 내 담당’이라는 박 교수의 신념도 존경스럽다고 한다. 대학병원은 과도 다양하고 세부 전공도 많아 한 환자가 이 과, 저 과를 다니면서 치료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박 교수는 일단 자신이 진료하고 수술한 환자는 다른 과에 전원이 돼도 해당 교수에게 일일이 부탁을 하고 다른 과 입원 병실을 찾아가기도 한다는 것.

“2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주로 어린이 암 환자를 치료했던 박 교수가 요즘엔 ‘15년 전에 수술했던 환자 결혼식에 갔다 왔다’ ‘10년 전에 치료했던 환자가 ○○대학에 입학했다’면서 기뻐할 때가 종종 있어요. 환자 치료에 열심인 것은 물론 치료를 끝낸 환자의 삶까지 신경 쓰는 박 교수야말로 인술을 베푸는 의사의 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