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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외국 도시들 <하> 리더십으로 바꾼다 - 일본 요코하마

부두 창고로 쓰이다 공연장 등의 종합문화시설로 변신한 요코하마의 아카렌가(붉은 벽돌) 창고 전경. 주위에는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아카렌가 창고에는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요코하마시 제공]

1859년 일본에서 가장 먼저 개항한 요코하마. 가스등과 돈가스·아이스크림 등 외국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요코하마에는 언제나 일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올해로 개항 150주년을 맞아 요즘 기념행사와 축제로 사람들이 넘친다. 일본 최대의 차이나타운도 유명하지만 항만의 건물과 창고 등 역사적 건물들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거리는 단골 화보 촬영지이자 데이트코스로 꼽힌다.

요코하마시의 도시 미관은 시 정책의 산물이다. 2002년 취임한 나카타 히로시(中田宏) 시장은 요코하마의 역사적 건물들을 문화 창작·발표의 장으로 활용하는 ‘창조도시’ 구상을 발표했다. 요코하마의 특성을 살리면서 도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요코하마의 풍경, 즉 도시 디자인과 건물을 활용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창조도시를 추진하게 된 계기는 모토마치(本町)에 있는 옛 다이이치(第一)은행과 옛 후지(孵뵨)은행 건물의 처리 문제였다. 1929년 세워진 두 건물은 90년대 은행 간 통폐합으로 쓸모 없게 됐다. “요코하마시의 재산은 바다와 항구와 역사적 건물이다. 우리 마을의 중요한 것이 사라질 위기였다”고 마쓰무라 다케토시(松村岳利) 창조도시 추진담당과장은 말했다. 시는 2003년 이 건물에서 문화예술사업을 할 단체를 공모했고 여기서 선발된 단체 ‘방크아트 1929’는 2004년부터 5년간 시의 지원을 받으며 옛 다이이치 은행과 옛 일본우편선박 창고에서 카페와 서점, 미술 전시를 운영했다. 나카타 시장은 이 사업을 계기로 ‘문화예술도시 창조사업본부’를 설치했다.

2005년엔 옛 후지은행에 도쿄예술대 대학원 영상연구과가 입주한 데 이어 50개 단체, 20명 이상의 예술가가 옛 창고 건물에 터를 잡았다. 이듬해엔 옛 창고를 아틀리에로 개조한 ‘창조공간 반코쿠바시(万國橋)SOKO’, 시가 운영하던 결혼식장을 연극과 댄스 연습실로 단장한 ‘규나자가(急な坂)스튜디오’가 문을 열었다. 2007년엔 옛 도요코(東横)선 사쿠라기마치(櫻木町) 역사가 갤러리 ‘창조공간 9001’이 됐다.

창조도시 사업은 행정부가 전체 계획의 골격을 만들되 모든 사업 추진과 구체적인 내용은 예술가·시민단체 등에 일임하는 시스템이다. 시 전체를 디자인해야 하는 사업이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매춘과 불법 요식업소가 오랜 세월 자리 잡았던 고가네(黄金)마을이 대표적인 예다. 지역 상가 대표와 주민들로 구성된 ‘환경정화협의회’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2005년 1월 불법 추방운동을 시작했다. 불법 유흥업소였던 건물을 ‘뱅크아트 사쿠라소(櫻莊)’로 새 단장해 예술가들의 활동 거점으로 개장했다. 자연히 주위엔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주말엔 관광객들로 붐비는 요코하마의 명소가 됐다.

“배부른 예술 지원에 시 예산이 축난다”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창조도시 사업은 경제 효과를 보고 있다. 시는 2004~2006년 3년간 최소 120억 엔(약 1500억원)의 경제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본다. 마쓰무라 과장은 “가나자와(金澤)·니가타(新潟)·삿포로(札幌)·센다이(仙臺) 등 창조도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각 지역에 요코하마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고 전했다.

요코하마=박소영 기자

요코하마의 ‘창조도시’ 개조 작업

■ 아카렌가(붉은 벽돌) 창고 1호관·2호관

공연장과 카페·레스토랑이 입주한 종합문화 복합시설로 재개관(2002년 4월)

■ 옛 일본우편선박 창고

스튜디오와 예술작품 전시 및 발표 공간이 들어선 뱅크아트 스튜디오 NYK(2005년 1월)

■ 옛 후지은행

도쿄예술대 대학원 영상연구과 입주(2005년 4월)

■ 옛 노동기준국·관동재무국

예술 창작 공간과 발표 공간, 레스토랑·카페 입주(2005년 8월)

■ 옛 반코쿠바시(万國橋) 창고

창조공간 반코쿠바시 SOKO(2006년 4월)

■옛 다이이치(第一)은행 요코하마 지점

예술가들의 창작·발표 장소인 요코하마 크리에이티브시티 센터(2009년 5월)


나카타 요코하마 시장 “문화·예술 자라도록 환경 만드는 게 행정”

“요코하마가 갖고 있는 특징을 살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 그것이 창조도시입니다. 그 장기적인 플랜을 판단하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지도자의 몫이지요.”

나카타 히로시(44·사진) 요코하마 시장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창조도시(creative city)’ 건설을 추진한 인물이다.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인구 감소·고령화 등 세계 모든 도시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소하고 요코하마를 활력 있는 도시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그 결과 도쿄의 위성도시, 옛 항구도시로만 기억되던 요코하마는 지금 일본 최고의 문화·관광 도시로 발돋움했다. 나카타 시장을 지난달 23일 만났다.

-창조도시를 추진하게 된 계기는는 무엇인가.

“요코하마를 활력 있게 만들 수 있는 사업, 요코하마다움을 살리는 사업이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문화와 역사·항구다. 요코하마가 갖고 있는 이 재산을 정비하고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창조도시의 시발점이다.”

-추진 과정은 순조로웠나.

“처음엔 창조도시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문화·예술이란 게 그렇다. 행정은 문화·예술이 자랄 수 있는 필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뱅커1929 은행건물과 요코하마은행 본점, 옛 후지은행 등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후지은행 바샤미치(馬車道) 지점은 도쿄예술대 대학원 영상연구과로 쓰고 있다. 시민들에겐 창조도시란 요코하마다운 건물을 재활용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장의 리더십은 어떤 영향을 미치나.

“뱅커1929, 옛 후지은행 바샤미치 건물 등의 보존이 결정은 됐는데, 마땅히 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정책의 이념, 계획을 시민들에게 이해시키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환경 조성은 결국 리더십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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