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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존칭의 격

커피 전문점에 가서 주문을 했다.

“삼천원이십니다.”

점원은 상냥하게 말하고는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라고 묻는다. 매뉴얼에 따라 점원은 내게 적당히 눈을 마주치면서 웃으며 얘기했다. 그러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다같이 “반갑습니다 ○○○입니다!”라고 복창을 한다. 들어오는 사람이 보일 길 없던 나는 깜짝 놀랐다.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다. 존댓말이 잘못 사용됐기 때문이다. “삼천원이십니다”라는 말은 커피 한 잔에게 존칭을 한 것이다. 물론 “삼천원을 내시면 됩니다”를 줄인 말이겠지만 결국 손님보다 팔리는 물건의 격이 높게 들린다. 가게에서 내게 이렇게 훌륭한 물건을 살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아 그들의 깔끔한 서비스와 상관없이 기분이 상했다.

존칭과 관련한 일은 또 있었다. 최근 어떤 회사의 자문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준비한 대행사의 실수로 위촉장의 내 이름이 잘못 찍혔다. 며칠 후 담당자가 실수를 사과하겠다며 고친 위촉장을 들고 찾아왔다. 나는 모임에서 언짢은 모습을 숨기지 않고 보인 것이 미안했던 터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그가 말미에 “아랫사람들이 만드는 과정에 실수가 있었나 봐요. 그래서 특별히 제가 직접 왔잖아요”라면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나름대로 최대한 성의를 보였다는 표현인 듯했지만 내 안에서는 좋아지던 분위기가 냉랭해져 버렸다.

특별이 아닌 일반이었다면 퀵서비스로 고친 위촉장을 보내겠다는 말인지, 직접 여기까지 왔으니 영광으로 알라는 얘기인지. 사실 표현상의 실수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수 있다. 그러나 형식적 존대 안에 의외의 마음이 숨어 있겠다는 그림자가 느껴졌다. 너무 꼬인 것 아니냐고, 왜 이리 까다로우냐고?

그동안의 경험 덕분이다. 정신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 온 것이다. 하지만 막상 닥치고 나면 동시에 아픈 상처를 보지 않기 위해 방어를 한다. 그 경계의 긴장을 뚫고 무의식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고군분투가 치료 과정이다. 간혹 작은 말실수에서 보이지 않던 문이 열리기도 한다. 덕분에 직업적으로 예민한 귀를 갖게 되었다. 사실 그래서 사는 게 좀 피곤하다

혹자들은 요즘을 막말의 시대라고 한다. 너무 아무 말이나 막하고 깎아내린다. 또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이 성공을 하는 것 같다. TV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막말의 향연이다. 막말도 문제지만 반대로 존댓말도 잘못 쓰면 안 쓴 것만 못한 것 같다는 것이 요사이의 생각이다. 존칭을 쓴다면 형식적으로 매뉴얼에서 하라는 대로 쓰지 말고, 정말 누구를 어떻게 얼마나 존대를 할 것인지 심사숙고한 후에 썼으면 좋겠다. 아무리 좋은 약도 용량과 용법이 맞지 않으면 독이 된다. 그렇듯 의사소통에서 존칭은 그 격과 용도를 맞춰서 쓰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존칭사용법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일리가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존칭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오해의 향연이 벌어진다.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애교 있는 반말이 나은 것 같을 때도 있다. 무조건 존대를 한다고 다가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매뉴얼대로 하는 것인지, 무심코 던지는 존칭 안에 숨겨져 있는 진심이 무엇인지 듣는 사람은 조금만 레이더의 감도를 높이면 바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말과 인간관계를 함께 살리는 길이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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