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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탈아론’ 주창한 후쿠자와 유키치 침략전쟁 정당화한 일 우익의 원조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천부인권을 외친 일본의 대표적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 1854년부터 네덜란드와 영국의 근대학문인 난학(蘭學)과 영학(英學)을 독학으로 깨친 그였지만, 1862년 유럽 탐방 시 그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책 속 세상과 너무도 달랐다. 특히 서구 근대의 산물인 민주주의의 기본 제도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딴 세상 이야기였다.

“선거법이란 것이 어떤 법률이고, 의회라는 것은 어떠한 관청이냐고 물으면, 저쪽 사람은 웃기만 한다. 무엇을 묻는지 잘 알고 있다는 태도이다. 보수당과 자유당이라는 당파 같은 것이 있어 서로 지지 않고 밀리지 않으려고 맹렬하게 싸운다고 한다. 태평무사한 천하에서 정치적인 다툼을 하다니.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저 사람과 이 사람이 적이라면서도 함께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신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862년 파리의 국립 자연사박물관에 들렀을 때 찍은 전통 사무라이 복장에 칼을 찬 그의 사진(도쿄대학 사료편찬소 소장)이 말해주듯이, 메이지 유신(1868)보다 33년 앞서 태어나 정확히 33년 뒤에 숨을 거둔 그의 머릿속은 서구 ‘근대’와 일본 ‘전통’이 서로 충돌하는 전쟁터였다.

그러나 그때 서양은 문명이고 동양은 야만이라는 비서양에 대한 서양의 차별논리인 오리엔탈리즘은 그의 뇌리 속 깊숙이 파고들어 각인되었다.

이제 그의 눈에 조선은 연대하고 협력할 상대가 아니라 일본이 ‘문명화’시켜야 할 침략의 대상으로 비춰졌다. 1885년 3월 16일자 지지신보(時事新報)에 실린 ‘탈아론’은 이를 웅변한다. “오늘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우리나라는 이웃나라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일으킬 여유가 없다. 오히려 그 대오에서 벗어나 서양의 문명국과 진퇴를 같이하여, 저 중국·조선과 접촉하는 방법도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특별히 봐줄 것이 아니라 바로 서양인이 이들과 접촉하는 방식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악우(惡友)와 친하게 되면 악명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는 진심으로 아시아 동방의 나쁜 친구를 사절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 여러 나라를 멸시하고 침략을 긍정했던 그는 침략의 과거사를 자랑스러운 역사로 애써 분칠하려는 우익세력과 일본 열도에서 불기 시작한 혐한류(嫌韓流)를 낳은 아버지다. 1만엔권 지폐의 초상인물로 후쿠자와가 살아 숨쉬는 오늘. 한 세기 전 쓰라린 실패의 역사에 도돌이표를 찍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만 한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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