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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클리닉] 아이가 산만하다고 수백만원 들여 굿을 하다니요

“그런 소리 했다간 뺨 맞아요.” 전국 초등학교 상담교사를 대상으로 ADHD에 대한 강연을 요청받았을 때다. 학교 선생님들이 ADHD의 최초 발견자가 될 수 있으니 이를 부모에게 알려야 할 ‘사명’이 있다고 강조하자 좌중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실제로 멱살을 잡히거나 “내 아이를 미친 놈 취급했다”며 교육청에 고발당한 선생님, 심지어 학생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하소연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잠시 강의를 중단하고 설문조사를 해 봤다. 1000여 명의 선생님 중 아이가 산만해도 그 부모에게 ADHD의 ‘A’자도 꺼내본 적이 없다는 비율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넌지시 학부모에게 말이라도 건네 본 선생님이 20% 정도였는데, 그중 대부분은 묵살이나 모욕을 당했고 극소수만이 나중에 ‘감사하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니 ‘본전도 못 찾을 일, 입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라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일선 학교에 만연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정석이 어머니는 2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한번 검사라도 받아보시죠”라는 말을 들었다. 겉으로는 “예,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지만 뒤돌아 나오며 든 생각은 “내가 촌지를 안 줘 애가 찍혔구나”였단다. 정석이의 원래 이름은 동석이다. 그런데 점차 학년이 올라갈 수록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말이 맞아떨어지자 혹시 이름에 움직일 동(動)이 들어가서 그런가 싶어 고요할 정(靜)으로 지난해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명수 어머니는 한 수 위다. “중학생이 돼서도 산만하고 성적도 바닥을 기니 어쩌겠어요?” 시어머니의 권유로 수백만원을 들여 굿까지 했단다. 신비주의와 미신이 판치던 중세 암흑기 얘기 같다.

ADHD 자녀를 둔 분들이 토로하는 소위 ‘병원에 가지 않는 피치 못할 사정’을 들어 보면 대개 다음과 같다. “정신과 가면 시집, 장가도 못 가고 군대도 못 간다고 해서” “주홍글씨처럼 죽을 때까지 아이가 정신병자로 기록에 남는다고 해서” “보험도 못 들고 취직할 때도 불이익이 따른다는데…” 등이다.

어처구니없다. 이런 헛소문만 믿고 전문기관을 멀리하면서 그럴싸하게 포장된 사이비기관과 도구를 사용하는 사이 시간적·경제적 낭비는 말할 것도 없고 치료 시기를 놓치고 마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올해 초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 500여 명의 집중력을 조사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4%는 ADHD였다. 그중 몇 명에게 혹시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지 물었다. 대부분은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단 한 명도 검사해 볼 생각이나 어떤 조치를 받아야겠다고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단다.

아무리 좋다는 ‘과외’ ‘학원’이라는 물을 부어도 차오르지 않는 학생이 많다. 이는 학생이라는 ‘컵’ 어디엔가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그 구멍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ADHD다.

굳이 선진국의 홀륭한 제도를 들먹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21세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최소한 ADHD를 마치 귀신이라도 씌인 병인 양 취급하며 쉬쉬하지 말고, 학교와 가정·전문가들이 나서 조기 발견, 조기 치료에 앞장설 수 있기를 바란다.

정찬호(43) 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의학박사
▶마음누리/정찬호 학습클리닉 원장
▶중앙대 의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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