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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기획하고 팬들이 폭발시킨 이 시대의 신화, 동방신기

성공한 아이돌 그룹의 표본
동방신기는 SM이 H.O.T와 신화에 이어 세 번째로 선보인 남성 아이돌댄스 그룹. 국내 아이돌 문화의 선두 주자인 SM의 탁월한 아이돌 기획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고 할 수 있다. 선배들이 비주얼 중심의 댄스그룹이라는 인식을 벗지 못한 것과 달리 동방신기는 데뷔 초부터 노래가 되는 아이돌을 내세웠다. 탁월한 보컬 시아준수를 중심으로 아카펠라를 들고 나왔다. 비주얼과 댄스 실력은 기본이었다.“하루만 니 방의 침대가 되고 싶어”라는 낯간지러운 가사로 시작하는 데뷔곡 ‘HUG(포옹)’(2004년)는 10대 소녀들이 꿈꾸는 달콤한 남자친구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이었다(데뷔 초 가사마다 ‘걸(girl)’을 속삭였던 이들은 지난해 섹시한 남성미를 과시한 ‘주문(MIROTIC)’을 통해 성인 그룹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멤버 하나하나가 이야기,놀이의 소재
각 멤버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는 SM의 캐릭터 제조 능력은 동방신기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됐다. 순정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외모로 ‘비주얼 쇼크’라 불린 미소년 영웅재중, 남성다운 리더 유노윤호, 부드러운 외모에 솔직한 감정 표현으로 무대 위에서 우는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스위트 가이 믹키유천, 아이 같은 말투와 행동의 귀염둥이 시아준수 등이다. 이런 캐릭터를 방송이나 공연, 멤버들의 사소한 행동거지에까지 녹아들게 해 그들 자신에 대한 일종의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타 그룹과의 차별점이다.

가령 팬들 사이에 잘 알려진 ‘샤몰이’는 시아준수를 다른 멤버들이 의도적으로 왕따시키는 장난인데, 시아준수의 귀여움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팀 전체에 일상적인 친밀감을 부여했다. 말하자면 동방신기는 오락 프로 ‘무한도전’의 멤버처럼 차별화된 캐릭터와 역할을 분담했으며, 그에 따라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그룹 안에서 일찍이 구현한 것이다.이들의 이미지는 성장하면서 더욱 강화됐다. 남성적 외모의 유노윤호는 듬직한 맏형의 이미지가 배가됐고, 여전히 아이 같은 시아준수의 행동에 다정하게 반응하는 믹키유천에게는 ‘달콤한 연인’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팀의 막내로 처음엔 캐릭터가 약했던 최강창민은 오히려 가장 쿨하고 냉소적인 인물로 ‘실세촹’ ‘쉬크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런 이미지와 캐릭터는 팬들이 동방신기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의 원형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됐다. 동방신기를 소재로 한 ‘놀이거리’들을 무한 제공한다는 뜻이다. 아이돌 멤버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설정의 팬픽(Fan-Fiction)은 다른 그룹들에도 있는 것이지만 동방신기만큼 양적·질적으로 풍부하지 않았다. ‘동방신기 상황 문답’이라는 놀이도 있다. 공통 상황을 놓고 멤버별 반응을 팬들이 상상해 내는 문답형 놀이다. 이런 유희거리의 제공은 팬들로 하여금 멤버들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하며, 또 놀이를 공유하는 팬들 사이에 강한 연대감을 구축한다. 공식 팬클럽인 ‘카시오페아’는 물론이고 수십, 수백 개의 팬 카페, 팬 사이트가 놀이터가 됐다.

기네스북 오른 세계 최대 팬덤
카시오페아의 회원은 80만 명, 포털 사이트 다음의 팬카페 ‘유애루비’의 회원 수도 80만 명이다. SM은 2006년 이후 카시오페아회원 모집을 중단했다. 현재는 동방신기의 팬을 총칭해 카시오페아, 줄여서 ‘카아’ 또는 ‘캉’이라고 한다. 다섯 개의 별에서 연원한 카시오페아는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 회원 수 팬클럽으로 등재됐다. 10~20대가 충성하는 전형적인 아이돌 팬덤으로 시작한 동방신기 팬덤은 점차 30~40대 중장년층, 해외 팬으로 확대됐다. 연령별로 팬클럽 분화도 일어났다. ‘시아소울’은 시아준수를 특히 좋아하는 30대 이상 팬 사이트, ‘동네방네’는 해외 팬들의 참여가 활발한 팬 페이지다.

팬덤의 성격도 변화했다. 스타에게 열광할 뿐 아니라 스타를 보호하고 서포트하는 팬덤, 또는 스스로 스타를 대변자로 여기는 팬덤의 출현이다. 어린 스타가 커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보호하려는 보호자·양육자 팬덤의 출발은 최초의 국민 아이돌로 불렸던 god부터지만 서포터스 성격이 전면화·조직화된 것은 동방신기에 와서다. 스스로를 스타의 대변자로 여기는 팬덤은, 스타의 이름을 내건 각종 사회봉사 활동이나 자선모금으로 이어졌다. ‘환상의 짝궁’ ‘AVC’ 등은 전국 지부 단위로 운영되는 카시오페아 봉사단체. 이들은 각종 봉사 활동을 통해 스타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는 한편 스스로 사회 활동의 주체로 변신하기도 한다. 알려진 대로 지난해 광우병 정국에서 가장 먼저 거리로 달려나간 이들도 동방신기 팬클럽이었다.

인터넷 기반의 취향 공동체
팬클럽의 강한 응집성은 공동의 대상을 좋아하는 ‘취향의 공동체’이자 ‘애정 공동체’인 데서 기인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이자 경쟁적 환경에 노출된 10대 소녀들에게서, 경쟁 없이 애정을 공유하는 관계는 실제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것이다. 팬끼리 유일하게 경쟁하는 항목은 스타에 대한 충성도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일부 팬 사이트에서는 ‘등업’ 단계에서 동방신기에 대한 각종 오타쿠적 정보를 문제로 낸다. ‘아카펠라가 동방신기에 미친 영향’ 같은 서술형 문제도 있다.

팬들끼리만 공유하는 각종 의례와 언어도 집단 내 결속력을 강화한다. 카시오페아는 동방신기 공연 전 팬들의 투표로 응원(추임새를 넣는 것) 방식을 결정한다. 팬들끼리만 통하는 은어도 부지기수다. 가령 ‘일코’라면 동방신기 팬임을 숨기고 일반인처럼 코스프레(분장)하는 성인 팬들을 뜻한다.물론 팬덤의 가장 큰 기능은 거대한 시장으로서의 기능이다. 불법 음원 대신 같은 앨범을 세 가지 버전으로 내는 SM의 상술에도 주저 없이 지갑을 열어 왔다. 동시에 동방신기는 과도한 팬덤의 희생자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와서 처음으로 스타의 일상을 거의 24시간 밀착 마크하는 ‘사생팬(사생활을 쫓는 팬)’들이 등장했다.

성적 환상 극대화한 ‘팬픽’
아이돌 팬덤의 특징적인 팬픽 역시 동방신기가 역대 최강이다. 일부 팬 사이에는 '어두운 팬문화'라 불리는 팬픽은 아이돌 스타들끼리 동성애 커플로 설정해 팬들이 생산하는 로맨스 소설을 뜻한다. ‘오빠’들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팬들의 소유욕이 차라리 멤버 간 동성애 설정으로 전환된 것이다. 일본의 ‘야오이물’ 혹은 ‘동인녀’ 문화의 변용이다. SM은 데뷔 초기 이들 멤버를 두 커플로 엮어 동성애적 환상을 자극했다. 물론 실제 동성애를 선망하는 것은 아니고 이성애 커플로 바꾸어도 전혀 문제없는 로맨틱한 환상과 노골적 성애로 10~20대 여성들의 억눌린 성적 욕망의 출구로 기능한다. 프로 작가 못잖은 스타 작가들이 상당수다. 대부분 작가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에게 무료 공개되지만 소장본 형식의 거래도 활발하다.

30~40대 이상 여성 팬들의 폭발적 증가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급증하는, 아이돌을 사랑하는 이모팬·삼촌팬 현상의 일환이다. 이들은 보호자 팬덤을 자처하는 동시에 자신보다 훨씬 어린 아이돌을 일상과 성적 활력의 대상으로 삼는다. 성인들이 ‘꽃보다 남자’ ‘가십걸’ 등 하이틴 로맨스에 열광하는 것처럼 제 나이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의 사랑에 매료되거나 성적으로 매혹되는 경향이다.

이상화한 ‘나’
실제 현실에서 이성 교제가 제한되는 10대 소녀에게 아이돌의 첫 기능은 ‘대리 연인’이다. 동시에 아이돌은 이상화된 자신의 연장으로, 팬들은 그들의 성취를 통해 자신의 성장을 대리 만족한다. 특히 높은 현실 경쟁 속에서 별다른 성취의 경험이 없는 10대 소녀들에게 동방신기의 성공담은 자신의 그것처럼 감격스럽게 받아들여졌다(소녀 팬들이 타 아이돌 그룹과의 경쟁에 목매는 이유다). 대중적 인기에도 동방신기가 음악성을 제대로 인식받지 못한다는, 팬들의 피해의식은 이들에 대한 애정을 증폭시켰다. 만약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이들의 거취에 문제가 생길 경우 팬들이 받을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글로벌 문화 브랜드의 손실은 말할 것도 없다.

흔들리지 않는 가창력까지 갖춰
동방신기 신드롬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 그들의 음악이다.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으나 일본 활동을 통해 뛰어난 음악적 성장을 보였다. 특히 SMP(SM 특유의 과격한 춤곡) 장르를 통해 훈련된 파워풀한 댄스와 무대 장악력, 격한 댄스 후에도 음이 흔들리지 않는 가창력은 탁월한 외모와 맞물려 해외에서 제2한류를 재점화하기에 충분했다. 댄스에서 팝발라드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멤버의 스타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특히 라이브 현장에서 육체적 공명이 큰 음악을 하는 게 이들이 범아시아 팬들 사이에 이름 그대로 ‘동방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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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