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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에어컨 회사가 수면 연구한다고?

LG전자 서울 가산R&D센터의 이주연 책임연구원(右)이 수면연구실에서 실험 대상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서울 가산동에 있는 LG전자 연구개발(R&D) 캠퍼스. 6층 높이의 건물 두 동 가운데 오른편 실험동 2층에는 아늑한 수면실같이 보이는 널찍한 방이 있다. 연구원들이 쉬엄쉬엄 일하라는 휴게실인가? 그게 아니다. 에어컨이 잠과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탐구하는 연구실이다. 82㎡(약 25평) 정도 넓이에 침대 5개가 놓여 있었다.

LG전자 수면연구소 가다



책임연구원인 이주연(38) 박사가 그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흰색 가운을 입은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20대 남자의 머리에 뇌파 센서를 부착하고 심전도 등 무려 26개의 센서를 온몸에 붙였다. 자는 동안의 인체 변화를 살피는 수면다원검사다. 뇌파는 어떤 곡선을 그리는지, 수면 깊이에 따라 호흡은 어떻게 바뀌는지, 팔다리의 불규칙한 떨림은 없는지, 피부 표면 온도는 어떻게 변하는지 등을 점검한다.



전자회사에서 웬 수면 연구일까. 이 박사는 “에어컨을 단순히 실내 온도를 낮춰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가전제품 정도로 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흡족한 수면은 심신의 상태와 직결되는 만큼 ‘에어 컨디셔너’를 넘어 ‘라이프 컨디셔너(Life conditioner)’로 다뤄야 한다”는 이야기다.



LG전자는 여러 해 전에 에어컨 구매 고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다소 의외의 결과를 접했다. 에어컨 내부 필터를 로봇이 주기적으로 청소해 주는 로봇청소 기능에 이어 숙면 기능을 두 번째 중요한 구입 요건으로 꼽은 것.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사회에선 수면장애를 극복하고 편안하게 잠들려는 욕구가 늘어난 것이다. LG 에어컨이 2000년 410만 대를 팔아 세계 1위에 오른 뒤 이 자리를 놓치지 않는 배경에는 수면 연구 같은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는 게 이 박사의 설명이다.



2000년 LG전자에 입사한 그는 2년 전부터 에어컨의 숙면 기능 연구에 본격적으로 몰두해 왔다. 2007년부터 종전과 달리 인체를 대상으로 수면 연구를 한 것. 일본 나라여대에서 환경·인체생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0여 명의 연구원과 머리를 맞댔다. 에어컨 덕분에 쉽게 잠들고 중간에 깨지 않으면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공기 조절 방식을 찾았다. 밤새 에어컨을 켜 놓아도 새벽에 추워 웅크린 채 잠에서 깨는 일이 없어야 했다.







잠이 빨리 들려면 기온을 약간 낮추는 게 효과적이었다. 고바야시 도시노리 박사의 저서 『아침형 인간을 위한 4시간 숙면법』에서 힌트를 얻기도 했다. ‘거실이나 밖에 있다가 잠자리에 들기 직전 침실로 들어가 찬 공기를 맡으면 편히 잠들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바깥 온도보다 섭씨 5도 정도 낮아야 쾌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수면 연구는 어쩔 수 없이 밤샘 작업이 많다. 그래서 이 박사 스스로 밤잠을 자주 설친다. 이렇게 해서 일궈낸 연구 성과가 이른바 ‘네 번의 꿈 숙면’이다. 원리는 이렇다. 하룻밤 취침에 네댓 번 반복되는 렘(REM) 수면에 초점을 맞춘다. 렘 수면은 꿈을 꾸고 눈동자가 움직일 정도로 뇌 활동이 활발한 상태다. 기억력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 피로를 줄여 ‘꿈 수면’이라고 한다. 이 박사 팀은 대체로 90분마다 일어나는 렘 수면 시간을 길게 끌어줄수록 수면 효율이 좋아진다는 결론을 얻어 냈다. 연간 300∼400명을 상대로 테스트해 얻은 결과다. 연구비용만 한 달에 수천만원에 달했다.



이 연구 결과는 올해 출시된 휘센 에어컨에 처음 적용됐다. 수면 초기에는 섭씨 25∼26도로 실내 온도를 내린 뒤 렘 수면이 일어나는 주기에 맞춰 온도가 1도 정도 올라가도록 설계돼 있다. 렘 수면이 아침이 될수록 길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온도 상승 시간 또한 함께 길어지도록 입력됐다. 이런 기능은 내년부터 수출용 제품에도 들어간다.



이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를 다음 달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인간공학회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가산R&D센터장인 전시문 상무는 “쾌적함에 관한 기술력을 인정받으려면 인체 검증이 중요하다. 우리처럼 인체 실험까지 하는 가전업체는 흔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에어컨 전문업체 다이킨을 비롯해 도시바·삼성전자 등도 숙면 기능 연구 결과를 에어컨에 꾸준히 반영해 왔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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