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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 (29) 김영승 → 엄원태 『물방울 무덤』

나는 한 때 시를 장대 높이뛰기 선수의 그 장대에 비유한 적이 있다. 시인은 그 장대 하나를 들고 혼신의 노력을 다 경주해서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어느 지점에서 정확히 바로 그 지상에 그 장대를 박고는 아스라이 장애물을 넘어간다. 쾌락도 좌절도 절망도 슬픔도 분노도 추억도 그리움도 선정도 유혹도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다. 그 장애물을 넘는 순간 장대 높이뛰기 선수는 장대를 놓아야 한다. 그 장대와 함께는 넘어갈 수 없으며 넘어간다 해도 목뼈가 부러지거나 하반신 마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삶의 순간 순간 그 시를 버려야 하는 것이다.

또한 나는 부처님의 여러 별명 중 『금강경』에 나오는 선서(善逝), 즉 ‘잘 가는 사람’이라는 뜻의 그 선서를 좋아하여 고개를 끄떡인 적이 있다. 왈, 고통에도 행복에도 악몽에도 영광에도 너무 오래 머물지 말고 그냥 가라. 그래서 20년 심야산책 중 거리는 나의 노래방인데 ‘잘 가세요 잘 가세요’ 하는 노래나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하는 노래를 나는 무슨 주문처럼 진언(眞言)처럼 아주 명랑히 중얼거리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걷는다.

엄원태는 그렇게 잘 넘어가고 잘 가는 시인이다. 10년 전쯤 엄원태는 지금까지도 일체 생면부지인 나를 놓고 “힌디의 그 고행(苦行)의 성자(聖者) 구루(Guru)와 같은 시인이다” 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역시 나는 고개를 끄떡였었다. 나의 그러한 고개 끄떡임은 경배다.

“언제까지고 글썽일 수밖에 없구나, 너는, 하면서/물방울에 가까이 다가가보면/저 안에 이미 알알이/수많은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물방울 무덤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비추며 거꾸로 매달려서도 잘 간다.

그는 20년 만성신부전증 환자로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하며 오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나는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오줌을 너무 자주 눈다. 오줌을 눌 때마다 한 때는 나의 대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도 했는데 이제는 가끔 오줌줄기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그는 육체가 곧 영혼인, 아니 영혼화된 육체의, 초록별 같은 시인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우리의 육체가 더욱 건강해지고 결국은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같은 감성적 영성을 띠게 되어 그저 평화롭다.

◆『물방울 무덤』(창비, 2007)=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중인 엄원태(54) 시인이 12년만에 내놓은 세번째 시집. 이 시집에 2007년 김달진문학상이 돌아갔다.

◆김영승(사진)=1958년 인천 출생. 86년 계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반성』 『車에 실려가는 車』 『취객의 꿈』 『심판처럼 두려운 사랑』 『아름다운 폐인』 『몸 하나의 사랑』 『권태』 『무소유보다도 찬란한 극빈』 『화창』 등 . 현대시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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