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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작 ①] ‘사랑이 뭐길래’ “대발이 아버지, 며느린 무서워”


전무후무한 시청률 59.5%

1991년 겨울, 남자들이 TV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주말 드라마가 시작하면 여지없이 TV를 켜고 '사랑이 뭐길래'(극본 김수현, 연출 박철)에 빠져들었다.

회사와 가정에서 높아진 여성들의 목소리에 기죽어 지내던 남성들이 '대발이 아버지' 이순재의 호통을 보며 통쾌해 했다. 남자들은 시대착오적인 대발이 아버지의 권위주의에 대리만족을 느꼈다. 여자 시청자들은 "어머, 뭐 저런 가장이 다 있어" 하면서도 서서히 전개되는 여인들의 반란을 유쾌하게 즐겼다.

'사랑이 뭐길래'는 대한민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청률이 조사, 집계되기 시작할 무렵 방송됐다. 1991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총 55회에 걸쳐 방영됐고, 초반 한 달 남짓을 제외하고 시청률이 집계된 1호 드라마였다. '사랑이 뭐길래'의 평균 시청률은 59.5%. 역대 평균 시청률 1위다. 방송 관계자들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불멸의 기록"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랑이 뭐길래'의 주인공은 최민수와 하희라였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여자가 콩깍지가 씌여 한 남자에게 구애해 결혼하게 되는 과정은 초반 시청자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이전까지 주로 거친 남성미를 보여준 최민수는 대발이를 통해 친근한 호감형 이미지를 만들었다. 하희라도 이 드라마를 통해 하이틴 스타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었다.

박철 PD는 "김수현 작가의 혜안이 돋보였다. 누구도 거친 야생마 같은 최민수가 대발이를 그렇게 훌륭하게 연기할지 예상을 못했다. 나 역시 반대했고 다른 연기자를 추천했다. 결과적으로 김수현 작가의 선택이 옳았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주·조연이 생동감 넘치는 개성을 과시하며 극의 흥미를 배가시켰다. 이순재는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가장을 연기하며 당시 정치상황에 대한 은근한 풍자를 보여주기도 했다. 김세윤은 자상한 아버지상을 보여주며 모든 여성들이 꿈꾸는 남편의 미래상으로 여겨졌다.


특히 이순재가 아침마다 가족들을 깨우며 근엄하게 들려준 대사인 "게으른 집에는 가난이 군병처럼 몰려온다"는 급격한 경제 성장의 피로감을 느끼는 신세대를 향한 따끔한 질타였다.

김혜자의 연기는 이때도 돋보였다. '전원일기'를 통해 '국민 어머니'로 불리던 김혜자는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새로운 어머니상을 선보였다.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한 삶에 찌든 어머니였다.

김혜자가 극 중 간간이 읇조린 노래인 김국환의 '타타타'의 가사 중 "기나긴 인생살이 옷 한벌은 남겼잖소"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찡하게 대변했다. '타타타'는 이 드라마로 공전의 히트곡이 됐다.

'사랑이 뭐길래'가 종영한지 16년 만인 작년 김혜자는 '엄마가 뿔났다'를 통해 '엄마 휴가제'를 주장하며 또한번 사회적인 이슈 메이커가 됐다. '사랑이 뭐길래'가 있었기에 김혜자가 휴가를 위해 가출하는 모습이 더 설득력을 얻지 않았을까.


“유쾌한 전개 궁금해 배우도 대본 기다려”

박철 PD는 1970~90년대 연출작을 모두 히트시키며 최고 주가를 올린 MBC 간판급 연출자다.

'새엄마'(73), '청춘의 덫'(78), '사랑과 진실'(84), '엄마의 바다'(93) 등 사회적 이슈가 된 작품들이 모두 그의 섬세한 손을 거쳤다. 그중 '사랑이 뭐길래'는 경쾌하고 발랄한 홈 드라마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구분된다.

박철 PD는 "자극적인 갈등을 배제하고 캐릭터의 조화를 살려 재미를 추구하려 했다. 적당히 사회 비판과 풍자도 곁들였지만 거부감을 주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권위와 탈권위, 보수와 진보의 충돌을 유쾌하게 변주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모든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조화를 이뤄내는 김수현 작가의 능력이 탁월했다"며 작가에게 공을 돌리기도 했다.

박철 PD는 대발이 가족에 대해 "비정상적인 가족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박창규의 가족이 모범적이었다. 이 사장의 가정은 비정상적이었지만 오히려 애착이 갔다. 소소한 갈등을 화목의 요소로 그리려고 애썼다. 조금씩 바뀌어가는 이 사장의 모습에서 사회의 변화에 대한 바람을 담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을 마치고 나면 다음회 대본이 어떻게 나올 지 궁금해서 못 견딜 정도였다.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연기자들이 다음회 대본을 애타게 기다렸을 정도니 작품의 성공은 예견됐던 일이었다"며 웃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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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기자 [kulkuri7@joongang.co.kr]
사진=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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