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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읽기 BOOK] 임꺽정이 저항세력? 당당한 백수였을 뿐


임꺽정,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고미숙 지음, 사계절, 340쪽, 1만 2000원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에 대한 이 독특한 해설서는 문학평론과는 크게 구분된다. 대부분의 문학평론이란 왜 이 작품이 좋으며, 신비스런 의미로 가득한가를 놓고 거품을 문다면(유독 한국에서는 그렇다), 이 책은 그런 흔적이 없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고전평론’이다. 먼지 뒤집어 쓰고 있는 옛 고전을 재구성해 현대인들과 뜨겁게 만나게 해주는 중개 작업이다.

고전평론은 6년 전 히트작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첫선 보였던 솜씨인데, 이번에는 『임꺽정』이 대상이다. 고미숙이 읽어낸 『임꺽정』은 책 부제대로 “조선시대 주변부 인물들, 즉 마이너리그에 속하는 자들의 유쾌한 향연”이다. 『임꺽정』의 칠두령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을 아무리 살펴봐도 고정된 직업이나 밥벌이(정규직)와 상관없이 배짱 편한 사람들, 즉 ‘노는 남자들’이라는 것이다.

저자 말대로 그들은 내용 없는 정착민(집의 인간)이 아니라, 노마디즘을 일찌감치 구현했던 유목민(길의 인간), 요즘 말로 비정규직이자 백수에 해당한다. 기존 신분제 사회질서에 대한 분노와 저항은커녕 그걸 훌쩍 뛰어넘어 당당한 자유를 누리고 산다. “이들이 궁상맞게 사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사랑과 우정, 공부와 놀이 면에서 (21세기) 우리한테 조금도 꿀리지 않는다. 꿀리기는커녕 풍요롭다.” (19쪽)

이런 해석은 일단 매력적이다. 1980년대 민중문학에서 『임꺽정』을 지배 권력의 수탈에 대한 민중저항을 상징하는 리얼리즘 소설로 읽어온 것에 대한 의미있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저자는『임꺽정』의 등장인물들은 추방당한 자들이 아니라 스스로 탈주한 자들이고, 역동적 야생성을 통해 삶의 새로운 양식을 창조했다며 휘황찬란한 어휘를 동원해 ‘고무·찬양’을 한다.

때문에 『임꺽정』세계란 지금의 실업대란의 시대에 엄청난 노하우를 전해준다는 논리까지로 치닫지만 이점이 납득 안 된다. 과연 어떻게 『임꺽정』의 등장인물들이 조선시대 초·중기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해냈다는 것인지, 그 증거가 무엇이고 시대사에 어떻게 녹아있는지가 의문이다. 그리고 그들 삶의 양식이 21세기의 현안을 푸는 데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무모한 주장의 속내도 궁금하다. 고미숙이 자기만의 백일몽과 냉정한 현실 사이를 헷갈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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