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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 미스코리아 왕관, 선덕여왕 위상과 한글 아름다움 녹였죠"

“15억원 가치가 들어간 올해 미스코리아 왕관은 위민(爲民)정책을 벌인 선덕여왕의 위상과 한글의 아름다움이 녹아든 작품입니다. 이름도 ‘동양의 빛’이죠. 한국적 전통미를 세계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2009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진’이 머리 위에 얹은 ‘동양의 빛’을 제작한 뮈샤주얼리 김정주(46)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지난 2006년부터 총 4차례 미스코리아 왕관을 디자인한 주인공이다.

◇미스코리아 왕관=김 대표는 1년 전부터 ‘2009 왕관’을 어떻게 디자인할 지 고민해왔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동양, 그 중심에 한국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 모티브가 됐다. 여성의 존엄함을 상징할 수 있는 선덕여왕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29cm 길이로 길게 늘어지는 드리개에는 한글 자음을 양각으로 새겨넣었다. 22캐럿의 자수정이 중심석으로 사용됐다. 신라 금관에 붙었던 곡옥이 50개, 다이아몬드 1270개가 세팅됐다. ‘동양의 빛’은 이렇게 완성됐다.

김 대표는 왕관의 가치를 15억원 정도로 봤다. 원석 구입비와 작업을 도와준 김정주디자인연구소의 연구개발비, 세팅비 등이 포함된다.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갖춘 선덕여왕을 형상화했죠. 그의 꿈과 이상을 왕관에 녹였어요. 한글 자음으로 드리개를 구성해 전통미도 추가했죠. 한글이 이렇게 아름다운 문양이 될지 몰랐어요. 기대 이상의 수확이었습니다.”

김 대표의 ‘미스코리아 왕관’과의 관계는 지난 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스코리아대회 주최측은 당시 주얼리업체 20여곳과 접촉해 왕관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그중 뮈샤측에 제안서를 보냈다. “미스코리아 왕관을 만드는 건 주얼리 디자이너라면 모두의 로망이겠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왕관 제작의 전반적인 비용은 모두 업체에서 지기 때문에 부담이 조금은 되지만 한국 최고의 미인이 쓰는 왕관을 디자인한다는 건 항상 꿈꿔온 일이죠.”

그가 꼭 이루고 싶은 꿈 중 하나는 미스유니버스대회의 왕관을 직접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 미스월드 조직위원회(MWO)줄리아 몰리 MWO회장을 만난 김 대표는 “한국의 왕관이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다. 세계 대회의 왕관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곧 올 것이라고 했다”며 “이제 슬슬 구상을 준비해 내년에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위로부터 2006, 07,08년도 미스코리아 왕관
지난 3년간 미스코리아 왕관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뮈샤에 따르면 ‘2006 왕관’은 승리의 상징인 월계수를 모티브로 생동감 있는 곡선을 전개해 화려함과 우아함을 담아냈다. ‘2007 왕관’은 장미를 모티브로 해 보다 강렬한 ‘불멸의 사랑’을 표현했다. ‘2008 왕관’은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미스코리아 머리 위에 씌워지는 왕관의 소유는 누구일까. 뮈샤가 소유권을 갖는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3개의 왕관 진품은 뮈샤 본사와 은행 금고에 보관돼 있다. 외국 초청 행사나 호텔ㆍ백화점 등의 특별 이벤트, 자선행사 등에 대여하기도 한다. 미스코리아에게 수여되는 왕관은 이미테이션이다. ‘진’에 선정된 미스코리아는 피날레 때 진품을 잠시 머리 위에 쓴 뒤 대회가 끝나면 되돌려준다. 대신 뮈샤측은 이미테이션 왕관을 기념으로 준다. 하지만 이 왕관 역시 일부 보석은 진품이기 때문에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CEO 김정주=강원도 춘천의 한 농사꾼 집 딸로 태어난 김 대표는 어렸을 때 ‘미적으로 유난스러운 아이’였다고 한다. 예쁜 것만 보면 따라하고 모으고 그랬다. 강원대 자원생물환경학과에 진학한 그에게 주얼리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보여준 건 대학 스승이었다. 김 대표는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에 대학 졸업 후 1988년 호주행 비행기를 탔다. 국제공인보석감정사(GIA)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다. 당시 GIA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던 나라는 흔치 않았다.

“진로를 고민할 때 한 교수님께서 주얼리 디자인에 대한 부분을 말해주셨어요. 교직 이수를 했기 때문에 생물학 선생님이 될 수도 있었는데 단정한 차림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전문직이 되고 싶었죠. 중학생 때 한 역술인이 ‘옥구슬 안에서 살 팔자’라고 했었는데 주얼리 디자이너가 될 팔자였나봐요.”

남편과 함께 호주로 간 김 대표는 주얼리 아카데미를 다니기 위해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고 했다. 2년간 ‘뼈 빠지게’ 공부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94년부터 프리랜서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3년의 공백기는 두 아이를 키우느라 잠시 꿈을 접어둔 시기라고 했다.

그러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남편이 사기를 당했다. 김 대표는 단돈 3000만원을 갖고 종로의 한 귀퉁이에 2평짜리 귀금속 가게를 열었다. 그 곳은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망해서 나가는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돈이 고작 3000만원 뿐이었으니 다른 곳을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김 대표는 대신 고객을 끌기 위해 매일 새로운 디자인의 주얼리를 내놓았다. 제품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판매했다. 고객의 직업과 스타일, 생김새 등을 고려해 어떤 주얼리가 잘 맞을지 매칭을 해준 것이다. 2년 뒤 그의 가게는 종로 3곳, 압구정 1곳으로 늘어났다. 2002년 뮈샤를 세워 본격적으로 주얼리사업에 뛰어들었다. 3000만원으로 시작한 구멍 가게는 10여년 만에 자본금 150억원의 웨딩주얼리업체로 성장했다.

그의 디자인 영감은 주로 자연의 산물이 소재가 됐다. “문명이 발달해도 사람은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평화로운 마음이 되죠. 자연은 행복이거든요. 19세기 아르누보의 대표화가인 체코 출신의 알퐁스 뮈샤 아시죠. 주얼리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그는 꽃과 자연, 그리고 매혹적인 여인을 테마로 해 많은 사랑을 받았죠. 우리 회사의 이름도 그의 이름 따서 지었습니다.”

김 대표는 웨딩주얼리 브랜드 ‘뮈샤’와 대한민국 상위 1%를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 ‘아르노’, 내년 2월에 론칭할 예정인 대중화 주얼리 이렇게 세 가지 방향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또 오는 12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한ㆍ중ㆍ일 주얼리페어’도 성공적으로 치르고 싶다고 말했다.

“가게를 옮기고 확장하면서 고사를 지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난 나를 믿거든요. 열심히 살면 된다는 것이죠. 안좋은 기운을 이겨내야 성공도 할 수 있는거잖아요. 성공은 극복할 때 이뤄지니까요.”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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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