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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이야기를 입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건축은 전시장에 걸린 예술품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담고 있는 공간인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풍경이며, 생활 그 자체다. 지금 한국 건축은 어디쯤 왔을까.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21세기 한국 건축의 현주소를 가늠하고 미래를 엿보기 위해 요즘 건축계에 새 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젊은 건축가들과 그들의 주요 작품을 찾아간다.

건물에 산업제품의 이미지를 입힌 ‘연희동 프로젝트’ 갤러리. 전시 벽면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입구도 모퉁이 부분에 만들어졌다. [건축사진가 김재경 제공]
*추천해주신 분: 김성홍(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김일현(경희대 건축대학원)·서현(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박성태 ‘SPACE’ 편집장

올 3월 연희동 주택가에 하얀 상자 모양의 건물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길에서는 출입구조차 보이지 않고 플라스틱으로 보이는 모서리도 심상치 않다.

이 건물은 아트 매니지먼트사 ‘연희동 프로젝트’ 갤러리. 개관 기념 첫 전시는 일찌감치 막을 내렸지만 바깥에서는 전시가 계속되고 있다. 독특한 건물 자체가 지나는 이들에게 ‘감상’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해질 무렵 건물 뒤편의 하얀 벽은 자연의 무언극이 펼쳐지는 또다른 무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흔드는 나무 그림자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듯하다. 이 건물을 디자인한 건축가는 ‘시스템랩(www.nsystemlab.com)’의 홍택(42)·김찬중(40·경희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소장. 건물 하나 하나에 ‘스토리텔링’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디자인 테크놀로지’에 대한 신념을 반영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 한강시민공원에 설치할 것을 제안한 수직형 납골당 ‘라스트 하우스’. 원시생명체의 결합구조를 모방했다. 약 5만 기를 수용하는 110m 높이의 타워로 휴대폰을 이용한 원거리 헌화을 통해 새로운 추모 방식을 제안했다. [시스템랩 제공]
◆“고정문법 깨고 싶었다”=독특한 건물 외형만 보고 이들이 미학에 큰 비중을 두고 일할 거라 짐작한다면 오해다. 물론 그들은 “설계할 때부터 뒷집 나무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벽면에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까지 예상했다”고 했지만 자신들은 “환경의 특성에 반응하는 효율적 시스템을 찾는데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입을 모아 “냉장고 같다”고 말한 이런 디자인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김 소장은 “건축의 고정문법을 깨고 제품(product)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 전시와 유통 공간이 되길 원하는 갤러리인 만큼 공간도 제품 개념으로 풀어냈다는 얘기다. 산업용 특수 광택 도료를 쓰고 각이 없는 건물을 구상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시에 필요한 벽 면적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면서 환기와 채광을 해결하기 위해 모퉁이를 절개하고,그 부분을 자동차 범퍼 소재인 반투명 FRP로 덮었다. 디자인과 기능을 한번에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원래 형태의 ‘모델’로 생각한 것은 휴대폰이었어요(웃음). 하지만 ‘냉장고로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이것은 무엇’이라고 정답처럼 제시하는 것은 재미없잖아요. 보는 각도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게 훨씬 낫거든요.”

◆건물이 사람에 반응한다?=“예전에는 건물을 고정적인 구조물로만 여겼다면 이젠 건물도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시스템이요.” 이들이 설계한 ‘거제도 연수시설’(2007)도 기능과 디자인을 결합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이 건물은 한 기업인이 개인 용도(별장)와 소규모 팀의 연수시설로 쓰기 원한 건물. 급경사가 있는 곳이라 ‘옹벽’을 설치해야 했는데 이들은 옹벽에 더 많은 역할을 주기로 했다. 단순한 흙막이가 아니라 계단·화장실·창고·담장을 아우르는 종합 인프라로 만든 것. 또 건물 안팎의 벽에 센서에 반응하는 원판형 LED를 박아 사람이 걸어다닐 때 빛이 강아지처럼 주인을 따라다니게 했다. 건물 안에 혼자 있어도 집 전체가 마치 자신을 지켜주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단다.

‘반응’에 대한 애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이 설계를 맡은 압구정 나들목(서울시 한강사업본부 프로젝트)에는 천정에 인조 고드름(폴리카보네이트)을 달고 센서를 부착해 보행자에 반응케하기로 했다.

◆꿈의 프로젝트는 ‘힐링타워’=건축사무소 ‘시스템랩’을 이끄는 두 사람은 고려대 건축공학과 선후배 사이. 홍 소장은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수학했고, 김 소장은 미국 하버드 건축디자인 대학원 졸업 후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에서 공부했다. 이들이 ‘드림 프로젝트’로 첫 손에 꼽는 것은 서울 시내의 납골당 설계. 납골당을 고층 타워 타입으로 변형해 완성한 설계안 ‘라스트 하우스’는 2006년 제 10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에 전시돼 호평 받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아이디어는 디지털 플라워(digital flower). 고인의 이동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전자식 납골함에 불이 켜지는 것을 헌화의 개념으로 사용하도록 고안했다.

“새로운 건축 디자인이란 새로운 형태를 넘어서 경험적으로도 혁신적인 것이고, 결국엔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것을 말하죠. 납골당은 지금까지 ‘혐오시설’로 여겨져왔지만, 발상만 바꾸면 친근하고 매력적인 랜드마크, 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힐링타워(healing tower)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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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