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갈라파고스’한국은행

S라는 이니셜로 시작하는 명문대 경제학과 출신이 득실거리는 곳. 구성원들의 행태나 사고 방식이 비슷비슷한 곳. 중요하긴 하지만, 다른 데에선 별로 써먹을 데가 없는 지식과 기능이 필요한 곳.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적인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정부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곳. 어느 나라에나 딱 하나만 있는 조직.

바로 중앙은행이다. 우리로 말하면 한국은행이다. 중앙은행은 어디에서나 다소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고도의 전문성, 넘보기 어려운 권위, 엄격한 도덕적 기준 때문일까. 영국의 윈스턴 처칠도 총리 시절 잉글랜드은행 총재를 상대하기가 가장 버거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중앙은행은 독특한 조직이다. 마땅히 비교하거나 준거로 삼을 만한 집단이 없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앙은행 사람은 외롭다. 동료 집단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 그 나라 중앙은행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말이 통한다.”

외롭거나 동료 집단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인가. 다른 부문과 격리돼 있다는 뜻이다. 경제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둘러쳐진 독특한 존재가 바로 중앙은행 아닌가 싶다.

중앙은행이 하는 일이 뭔가. 통화관리, 발권, 외화자금 관리, 금융결제…. 금융 시스템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일들이다. 어디에서도 대신 해줄 수 없다. 하지만 중앙은행 이외에선 쓸 데가 없다. 호환성이 없다. 한은에서 통화관리를 잘한다고 해서 민간은행이나 기업으로 옮겨 자금관리를 잘할 수 있겠는가.

한은은 돈 버는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직원들의 금전 감각도 민간 금융인들과 영 다르다. 유동성에 대한 감은 날카로워도, 어떤 상품을 만들어 얼마나 남길지에 대한 셈은 관심 밖이다.

또 한은맨들은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셔도 주로 자기들끼리 모인다. 이른바 ‘업자’들을 만날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고고해 보이긴 한다. 하지만 동질적인 내부 커뮤니케이션만 하다 보면 세상물정에 어두워진다. 속된 말로 ‘범생’이나 ‘쪼다’가 될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이게 심해지면 경제주체들의 요망에 둔감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이처럼 한은맨은 중앙은행이라는 고고하고 격리돼 있는 조직에서 수십 년간 독특한 진화경로를 걷는다. 마치 대륙에서 격리된 갈라파고스의 생물체처럼 독자적 생태계에 적응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명문대 출신이면서도 공무원이 되느냐, 한은맨이 되느냐에 따라 나중에 사람이 싹 달라진다. 한은맨들에겐 독특한 형질이 나타난다. 한마디로 전문성의 진화와 전략성의 퇴화라고나 할까. 정치적 감각과 이에 따른 결단력, 그리고 개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집단 성향이 대개 그렇다는 얘기다.

이는 오랜 격리의 결과다. 격리란 곧 소통의 부재를 뜻한다. 마침 한은의 금융감독권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게 한은의 갈라파고스적 생태계에 어떤 진화경로를 열어줄지 관심사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