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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60%가 혁명후 세대, 그들은 자유를 꿈꾼다

12일 이란 대선에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승리한 이후 야당 후보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의 지지자들이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일주일째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최대 인파가 거리로 뛰쳐나왔다. 민병대의 발포로 최소 7명이 숨졌다. 19일엔 신정(神政) 체제의 중심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시위 중단을 요구하면서 강경 진압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시위는 계속됐다. 국제 사회의 비난도 거세다. 미국 의회는 19일 이란 비난 결의안을 채택했다. 민주화 시위의 원동력은 뭘까. 개혁·개방을 원하는 젊은 세대의 열망이 표출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연락할 곳이 많은데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어요.” 이란 테헤란 시내 발리야스 거리에 있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빈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서있는 여대생 나다는 연신 시계를 들여다봤다. 지난 2월 이슬람혁명 30주년 기념식을 보기 위해 테헤란에 간 필자는 이 카페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면서 나다와 얘기를 나눴다. “퇴근 시간 이전이나 밤늦게 와야 인터넷에 맘껏 글을 올릴 수가 있어요.” 나다는 이란에 불고 있는 인터넷 열풍에 동참하고 있는 젊은이 중 한 명이었다. “6월 대선을 앞두고 젊은이들의 인터넷 소통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나다는 설명했다. 그는 테헤란대학의 페르시아 전통문화 동아리에서 활동한다고 했다. “동아리는 선거철이면 정치개혁 모임으로 바뀐다”고 귀띔했다.
인터넷은 젊은이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제네바의 국제통신연맹(ITU) 통계에 따르면 이란 전체 인구 7100만 명 중 2300만 명의 웹 서퍼가 있다. 블로그도 수만 개가 넘는다. 과거에는 정치 색깔을 띤 게 적었지만 요즘 정치전문 블로그의 숫자가 수백 개로 늘었다고 범아랍 매체인 알자지라 방송이 17일 보도했다.
혁명 이후 태어나 선거권을 가진 20대에게 인터넷은 일상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기성세대 정치인들도 바뀌고 있다. 보수 강경파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인터넷을 멀리하지 않는다.
그는 2006년 8월부터 자신의 블로그를 갖고 있다. 2007년 12월부터는 영어판 포스트도 운용하고 있다. 무사비 후보는 인터넷을 통해 지지 세력을 구축했다. 그의 지지층은 인터넷을 통해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 정부가 신문·방송에 이어 인터넷까지 통제하자 단문 메시지 송수신 서비스인 트위터(twitter)를 소통 수단으로 삼아 시위 계획을 퍼뜨렸다. 이란 정부는 다시 트위터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인 페이스북 사이트를 차단했다. 인터넷상에서 게릴라전이 벌어지는 국면이다.

라프산자니 정권 때 개방 경험
인터넷은 신세대 문화의 한 단면일 뿐이다. 혁명을 모르고 자란 ‘혁명 이후 세대’의 움직임은 강경보수 정부와 종교지도부를 항상 긴장하게 만든다. 우선 수적으로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7500만 인구의 60%를 차지한다. 79년 혁명 직후 종교지도부의 출산 장려 정책 때문이다. 당시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서방의 인구가 줄어들고 우리의 인구가 증가하면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독려했다. 80년대 중반 이란의 출산율은 가임 여성 1인당 3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정치·경제개혁은 이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혁명 이전 세대와 달리 이들은 팔레비 정권의 부패를 경험하지 못했다. 혁명 이후의 상황에 대한 불만만 기억할 뿐이다. 실제 실업률이 30%에 달하고, 지난해 인플레율도 25%에 달했다. 실질소득도 혁명 전보다 줄어들었다. 이들에게 혁명의 긍정적 결과는 무의미하다. 삶이 어렵다는 현실이 항상 대정부 불신과 비판으로 이어진다.
보수 원로 정치인 사이에선 최근 ‘혁명 이후 세대가 혁명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19일 테헤란대학에서 가진 합동예배 설교에서 “이번 대선은 종교적 민주주의가 유효한 제3의 길임을 보여줬다”며 이슬람 체제의 적법성을 흔드는 움직임에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대다수 젊은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좀체 변화하지 않는 신정 체제에 희망을 잃고 있다. 서방 문화와 사고를 접한 이들은 위성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 젊은 세대는 한때 부분적인 개방도 경험했다. 온건한 라프산자니 정권과 개혁파 하타미 정부 하에서 제한적이지만 자유를 느껴본 경험이 있다. 이를 거꾸로 돌리려는 아마디네자드 정부에 대한 불만이 거셀 수밖에 없다. 이집트의 알아흐람 전략연구소의 무하마드 술탄 부소장은 “이란에 새로운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며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혁명 이후 세대는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5년까지 젊은이들이 경험한 ‘자유’ 분위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마디네자드 정권은 여성 복장을 단속하고, 서구식 헤어스타일을 금지하고, 남녀 분리를 위해 여성 전용 택시를 도입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는 자유화로 나아가고 있다. 여성 패션이 대표적이다. 히잡(머리 두건)은 총천연색으로 바뀌었다. 혁명정부의 지시에 따라 머리카락·어깨·가슴을 모두 가리는 차도르를 입는 젊은 여성은 보수파 집안 출신뿐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앞머리를 충분히 내놓은 히잡을 두를 뿐 아니라 드러낸 머리카락에 염색을 더해 살짝 멋도 부리곤 한다. 시내 카페에선 여성들이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담배를 피운다. 연인끼리 거리에서 손 잡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외국인 남성을 만나도 호의적이다. 영어 회화 연습을 위해 먼저 접근해 말을 걸고 사진도 찍어준다. 2005년 5월 이란 여성들은 이슬람권에서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다. 말을 타고 하는 여성 폴로경기 팀도 생겼다.

차 몰고 ‘스피드 데이팅’도
이란은 이스라엘·레바논·터키를 제외하고 중동에서 가장 민주적인 정치사회시스템을 갖고 있다. 술탄 부소장은 “완벽하지는 않아도 선거제도 등 정치 과정이 상당히 민주적이다. 그러나 신정 체제 때문에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방 수준에 못 미치나 여성 참정권과 교육권·노동권 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미국이 강력히 지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왕정국가에서는 선거 자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젊은이 문화가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사례도 많다. 테헤란 도심의 특정 장소에서는 청춘 남녀들이 차를 몰고 와 ‘스피드 데이팅’을 한다. 첫날에는 상대를 물색하고, 둘째 날에는 맘에 드는 사람을 찍으며, 셋째 날에는 명함을 내미는 방식이다. 젊은 여성 간에 성형수술도 유행한다. 특히 코가 높은 여성들이 코를 낮추는 수술도 성행한다. ‘프랑스 와인부터 러시아 보드카까지 전화 한 통이면 배달해 드립니다’라는 광고가 인터넷과 전단을 통해 뿌려진다.
개혁·개방 요구에 맞서는 젊은 보수파의 존재도 만만치 않다. 대표 집단은 단연 청년 성직자 혹은 그 후보들이다. 이들은 마슈하드와 쿰에 밀집한 시아파 성직자 교육기관을 졸업하거나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고위 성직자 계층에 편입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다. 수백만에 달하는 젊은이들은 종교기관에서 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개혁파들의 시위가 있는 곳에 등장해 맞불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이다. 이들에게 이슬람혁명은 이념이자 종교다. 지난 2월 이란 방문 시 만난 한 종교대학 학생은 “(테헤란 외곽의) 알보르즈 산의 만년설처럼 혁명정신은 절대로 녹아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헤란 거리에서 만난 이란의 젊은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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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