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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전 스치듯 본 車 색깔,번호, 기억 되살려 뺑소니 잡기도

10일 전 스치듯 본 車 색깔,번호, 기억 되살려 뺑소니 잡기도
서울 경찰청 3층엔 ‘법최면ㆍ몽타주실’이 있다. 서너 평 남짓한 방에는 누울 수 있는 의자 하나와 보통 의자, 컴퓨터 모니터가 있었다. 옆방은 거짓말 탐지기실로 탐지장비 한 세트가 있었다. 탐지기는 3000만~4000만원 정도라고 수사관들이 귀띔해줬다.
이 방에선 최면수사관이 피해자나 목격자에게 최면을 걸어 그들의 흐릿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다른 수사관은 컴퓨터를 이용해 최면상태에서 나온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며 몽타주를 작성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펜으로 ‘스케치’를 해서 몽타주를 그리곤 했지만, 이제는 최면을 통한 기억마저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최면은 이제 어엿한 ‘과학수사’의 한 부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법최면·몽타주실’은 과학수사대 소속이다.

2007년 11월 1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부근. 흰색 승용차가 오토바이를 치고는 그대로 달아나는 사고가 있었다. 피해자와 목격자가 기억해낸 뺑소니 차량 운전자의 인상착의는 ‘키가 크고, 중간 체격에, 안경을 안 썼으며, 30대쯤’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이 정보대로라면 용의자가 수십만, 수백만 명이 됐을지 모른다.

그래서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현장감식 3팀장인 김상현 경위가 나섰다. 김 경위는 서울지역 최면수사 요원 3명 가운데 하나로 최면수사만 70여 건을 수행한 최면 경력 10년의 베테랑이다. 나머지 두 명은 광역수사대와 일선 서에 한 명씩 배치돼 있다.
김 경위가 피해자와 목격자를 상대로 최면을 걸어 기억을 되살렸다. 그 결과 ‘SM5 구형’ ‘파란색 보호판’ ‘0’ ‘5’ '2’란 이미지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피해자와 목격자의 무의식 속에 있던 기억은 정확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뺑소니 차량을 조회해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김 경위가 최면수사를 한 것은 사건 발생 10일이 지난 뒤였다. 보통 바로 전날 있었던 일들도 기억해내기 쉽지 않지만 최면수사를 통해 아득한 기억을 복원해 낸 것이다.

최면은 어떤 식으로 걸까.
수사관이 최면을 걸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피최면자(피해자든 목격자든)를 정서적으로 안정시키는 일이다.
“최면실에 들어오면 경찰관이라 생각하지 않도록 하게 하지요. 오빠나 형처럼 신뢰감을 주고, 최면의 장단점을 알려줘, 편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 다음 정신을 집중시키는 겁니다. 그러다 최면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가령 눈을 감게 한 뒤 손을 올리고 큰 사전을 손바닥 위에 놓고 있다고 생각하라고 하면 정말 사전을 들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실제론 손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로 ‘사전 하나 더 놓습니다’고 하면 정말 무거운 것처럼 ‘끙끙’ 하거든요.”

그렇다고 최면수사가 만능은 아니다.
최면에 걸리더라도 피최면자는 의식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진술을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다. 최면수사 결과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이유다. 증거능력이 없다는 점에서는 거짓말 탐지기와 비슷하다. 모든 사람이 최면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안 걸려야지’ 하면 안 걸리는 겁니다. 대략 절반 정도가 최면에 걸리는 것 같습니다.”(김 경위)

이런 한계에도 최면수사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최면이 경찰 수사에 접목되기 시작한 것은 99년부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신수사기법’으로 최면을 인정했기 때문이다.그해 15명의 경찰관이 최면수사 교육을 받고, 최면수사요원이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최면수사관은 전국적으로 30명이 넘는다.서울경찰청에서만 지난해 15개, 올해 8개 사건에 최면수사를 활용했다. 대형 사건에서도 최면기법이 적용되곤 한다.

고 장자연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초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으로 지목돼 출국금지까지 됐던 인터넷 언론사 대표는 목격자가 최면수사 도중 다른 사람을 지목해 혐의를 벗었다. 반면 금융인 한 명은 목격자가 최면수사에서 그의 얼굴에 있는 특징까지 지목해 입건되고 말았다. 최면수사를 통해 범인을 바로 지목하기보다는 목격자나 피해자들이 조각조각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다 부족한 ‘팩트’가 완성돼 범인 검거에 기여하곤 한다.

최면수사는 수사 초기단계보다 ‘최종 수단’으로 채택된다.
최면수사는 크게 보면 ‘심리수사’의 하나다. 김상현 경위가 자주 만나 회의를 하는 사람들이 청 내의 ‘프로파일러’들이다. 업무상 직접 관련은 없지만 ‘마음’을 다룬다는 공통분모가 있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최면은 주로 강간사건에 자주 활용된다. “피해자들이 범인 얼굴을 기억하기 싫어하니까 실제 수사에서도 범인 인상착의를 진술하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의서를 받아 최면수사를 하곤 하는데, 한 번은 피해자의 기억이 되살아나 막 울부짖는 바람에 저도 깜짝 놀라고 곁에서 대기하는 형사들까지 놀란 적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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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