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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우물에는 침 뱉지 마라

진중권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내 머리에 각인된 것은 11년 전 그가 펴낸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두 권짜리 책을 통해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에 말했다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패러디한 제목도 제목이거니와 ‘1963년 세포분열로 태어난 빨간 바이러스 진중권은…’으로 시작하는 저자 소개도 매우 독특하고 재치가 넘쳤다. 아니나 다를까. 진씨는 이후 온·오프라인 미디어를 종횡무진 누비는 논객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동기(同氣)들은 유명한 음악가·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니 집안 전체가 재능을 타고난 듯해 내심 감탄한 적도 있다.

그런 진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유탄을 맞았다. 5년 전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에 대해 친(親)노무현 인터넷 사이트와 인터뷰 하면서 “자살세를 걷었으면 좋겠다. 시체 치우는 것 짜증나지 않느냐”고 한 말이 뒤늦게 화제에 올랐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자살에 대해 “쪽 팔려서 자살했다는 얘긴데 쪽 팔린 일을 왜 하냐…검찰은 청산가리 준비해 놓고 원하는 넘은 셀프서비스 하라고 해라”는 글을 올린 것도 문제가 됐다.

비난이 빗발치자 진씨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며칠 후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변명의 여지가 없지요’라는 사과문을 올렸다고 한다. ‘그분들의 죽음을 부당한 정치적 탄압의 결과인 양 묘사하는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의 태도가 역겨워 독설을 퍼붓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것 같다’는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서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을 들먹이는 것이 어째 고전적인 ‘중화(neutralizatoin) 기술’ 이론을 떠올리게 만든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누군가가 악담을 해 놓고 똑같이 ‘그분의 죽음을 부당한 정치적 탄압의 결과인 양 묘사하는 민주당과 좌파 언론의 태도가 역겨워 독설을 퍼붓다 보니…’라고 변명한다면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침 뱉은 우물 다시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 이 속담을 생각나게 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계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든 100% 잘하거나 못하는 것은 아닐 텐데, 과거든 미래든 잘못했거나 할 소지를 안고 있는 법인데, 그 엄연한 진리를 수시로 잊는 듯하다. 민주당 내에는 “노 전 대통령은 남상국 사장 자살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라”고 다그치다 태도를 바꾼 송영길 최고위원 등 말 뒤집기 사례가 수두룩하다. 언론사끼리도 서로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방식이 점점 그악스러워져 걱정이 앞선다. ‘저 말을 나중에 어떻게 주워담으려 하나’는 걱정 말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며칠 전 ‘법치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감옥에 보내지 말자는 일부 보수 논객들의 호소는 눈물겹다’며 노 전 대통령에게 ‘사즉생(死卽生)’을 권하는 칼럼을 실었던 신문이 서거 후에 추모, 영웅 만들기로 태도가 바뀌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신문들의 ‘변절’을 공격했다. 발끈한 한 신문은 사설에서 상대 신문 필자의 이름을 열거해 가며 반박하고 나섰다.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그만큼 내남 없이 악에 받치고 눈에 핏발이 섰다는 뜻일까.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이 오늘 오후 제주에서 ‘언론 내부 반목의 벽 허물기’를 주제로 토론회를 여는 것을 보면, 나만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민주사회는 폭력이 아닌 말로 움직이는 사회다. 살다 보면 궂은 말을 하거나 듣는 일을 피할 도리가 없다. 분노에 차서 남의 집 대문, 심지어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언젠가 목이 마르면 자신도 먹어야 하는 우물에만은 침을 뱉지 말자. 1970년대에 양희은이 부른 노래,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으로 시작하는 ‘작은 연못’의 가사를 기억하는가. 붕어 두 마리가 서로 싸우다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그 살이 썩어 들어가고, 결국 ‘연못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됐지 않았는가.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도 그리 큰 연못은 아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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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