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주식(52) “닭갈비(鷄肋)신세”

'계륵(鷄肋)'이라는 말, 다들 아실겝니다. 말 그대로 '닭갈비'입니다. 흔히 읽는 삼국지 속 조조의 고사(故事)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삼국지연의(三国演义. 第七十二回)'에 소개된 '계륵'의 일화는 이렇습니다. 당시 조조와 제갈량은 한중(漢中·시안西安의 왼쪽)땅을 놓고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늘어지면서 조조는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시름이 깊었지요. 저녁 식사로 닭도리 탕이 들어왔고, 그 중 닭갈비도 있었습니다. 맛은 있는데, 고기는 적은 게 닭갈비입니다. 뜯어먹자니 입만 버리지요. 그는 문득 한중 땅이 꼭 그 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침 하후돈(夏侯惇)이 장막을 밀치고 들어옵니다.

"장군, 오늘 밤 암구호는 무엇으로 할깝쇼?"

마침 닭갈비를 뜯고 있던 조조 왈:
"그래 계륵으로 해라, 계륵"

계륵이라는 말은 그래서 '버리기에는 아깝고, 갖고 있기에는 실속이 없는 물건'을 뜻하는 말이 됐습니다. 한중 땅처럼 말입니다.

오늘 중국증시를 얘기하며 '닭갈비'를 얘기하는 것은 B주 시장이 꼭 '계륵'과 같은 처지가 됐기 때문입니다. 이 시장은 지금 버리기에는 아깝고, 갖고 있기에는 실속이 없는 상황이 됐다는 얘기지요.

국내에서도 많은 분들이 B주에 직접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 얘기를 하면서 B주를 빠뜨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키움 한화 등 주요 증권사에 가셔서 '중국 B주 개좌 개설해주세요'하면 만들어 줍니다. 인터넷 홈트레이딩도 가능합니다.

***************

1992년 2월 21일. 상하이 증시에 새 역사가 시작됩니다. B주가 탄생한 겁니다. 주인공은 전자전문 업체인 '상하이전콩(上電眞空)이었습니다. 종목 명 '上電B股'. 달러로만 거래됐고, 외국인(기관 포함)만 살 수 있었습니다. 개장가는 0.71달러(현재 기준 환산). 하루 종일 등락을 거듭하다 0.885달러에 첫 거래를 마쳤습니다. 59만 달러가 거래됐더군요. 그렇게 B주 거래가 시작된 겁니다(이 주식은 지금도 거래되고 있습니다. 아래 추세선입니다)



상하이전콩은 이미 1990년 12월 19일 상하이증시 설립과 함께 상장된 라오빠구(老八股)중 하나입니다. B주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주식 시장에 'A주'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다만 1992년 2월 상하이전콩을 시작으로 B주가 등장함으로써 일반 주식은 편의상 A주라고 했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특종(特種)주식'은 B주로 했던 겁니다. 참고로 이 회사는 상하이의 대표적인 가전 전자업체로 이후 '上海廣電(SVA)'으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국이 B주를 만든 이유는 외화에 있었습니다. 중국은 당시 '달러'가 몹시도 궁했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국 기업 지분을 외국자본에 팔아 넘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시 화교자본을 중심으로 중국기업에 투자하겠다는 돈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겨냥해 '외국인만 살 수 있는 특종 주식'인 B주를 만든 것이지요.

외국인들에게 '너희들은 여기서만 놀아라'라고 칸막이를 쳐 준 것이지요.

출발이 좋았습니다. A주식을 발행했던 많은 기업들이 B주식을 추가로 발행했지요. 한 때 'B주 기업=선진기업'이라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중국 기업이 자본시장에서 외국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니까요. B주 가격이 A주시장을 선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B주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우선 H주식의 등장입니다. 1997년 칭다오맥주를 시작으로 많은 기업들이 홍콩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B주에 의존하지 않고도 외화를 끌어들일 수 있는 길이 생긴 겁니다. 우량기업들은 B주 시장을 외면했습니다. 뉴욕, 런던, 싱가포르 등 해외증시가 훨씬 매력적이었습니다. 실제로 1997년 한 해 107억 원을 조달했던 B주 시장은 그 이후 기업공개 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2001년이후 신규상장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설립 때 100포인트로 시작한 B주 지수는 2001년 2월 83포인트까지 떨어졌습니다. 시장이 붕괴된다고 아우성이었지요. 중국 금융당국은 할 수없이 B주에 대한 내국인 투자를 허용합니다. 중국인들도 이제 위안화를 달러(선전의 경우 홍콩달러)로 바꿔 B주를 살 수 있게 된 겁니다. 이 정책 덕택에 주가가 크게 올랐습니다. 이 때를 틈타 당시 B시장에 들어와 있던 외국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지요. 그들은 'B주시장에 별 매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거든요.

그들이 맞았습니다. 비틀거리는 B주 시장에 타격을 준 일이 2003년 또 생겼습니다. 그 해 7월 등장한 QFII(공인외국기관투자가)가 그랬습니다. 외국인들은 굳이 B주를 사지 않고도 QFII를 통해 중국증시에 직접투자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B주를 살 이유가 더 줄어든 것이지요. QDII(공인내국기관투자가)도 그랬습니다. 중국인들은 QDII를 통해 해외시장 주식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같은 달러로 주식을 산다면, 해외 좋은 기업이 있는데 굳이 B주를 살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래저래 B주는 그 존재가치를 잃고 있습니다. 유동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기업들도 B주 시장에 관심을 쓸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B주지수는 2005년 7월 50포인트까지 폭락하기도 했습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중국증시의 대 상승기에는 덩당라 상승하더니 2007년 한 때 400포인트를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오를 때 화끈했던 주 떨어질 때도 미련없이 밀립니다. 2008년 말 86포인트까지 다시 밀렸습니다. 지금은 180포인트에 걸쳐 있군요.

대기대락(大起大落), 이런 시장에 누가 투자하겠습니까. 이건 주식시장이 아니라 도박판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게 B주 시장의 현실입니다.



중국 당국도 고민입니다. 그래서 나온 게 '통합'입니다. A시장과 B시장의 칸막이를 털어버리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현재 상하이와 선전에는 109개 B주 기업이 상장하고 있습니다. 이중 86개가 A주와 B주를 동시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주식임에도 가격이 다릅니다. 통합한다면 누군가 피해를 봐야 하고, 누군가 그 피해를 보상해줘야 합니다.

현재 상하이와 선전 증시의 B주 총 시가총액을 위안화로 환산하면 약 1347억 위안에 이릅니다. 통합을 위해서는 달러(상하이)와 홍콩달러(선전)를 위안화로 바꿔줘야 한다는 얘깁니다.

샹푸린이 주식개혁을 하듯 정부가 나서 과감하게 하면 못할 리 없겠지만, 당국은 뜻이 없어 보입니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통합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가총액이 1347억 위안(약 24조5000억 원)에 달하는 시장을 버리기도 아깝습니다. '살려두자니 별 의미가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그러기에 계륵과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투기를 즐겨보려는 투자가들에게 B주는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B주지수가 작년 말 86.44포인트에서 지금 180포인트로 무려 100%올랐다는 점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곳에 손 대면 데는 법입니다. 1992년 100포인트에서 시작한 지수가 왜 아직까지 180포인트에 머물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같은 100포인트로 시작한 상하이종합지수는 지금 2800까지 와있는데 말입니다. 투기꾼이 판치는 B주의 아사리 판에 뛰어드는 것은 화약을 짊어지고 불 속으로 뛰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삼국지 조조 얘기입니다.

'계륵'이라는 암구호가 전해졌습니다. 부하 중에 양수(楊修)라는 자가 이 암호를 전해 듣더니 주섬주섬 물건을 챙깁니다. 주위 군사들이 왜냐고 물었겠지요.

"대장군은 분명 한중 땅에서 철군할 것이다. '계륵'이라고 하지 않더냐"

그의 얘기가 맞았습니다. 계륵은 맛이야 있다지만 먹어봐야 별로 남는 게 없습니다. 먹기 불편할 뿐입니다. 조조는 결국 계륵을 버렸습니다. 한중에서 철수한 것이지요.

중국 B주 역시 같은 운명일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