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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서 온 비통한 청 … 봉은사 문 나섰다”

명진 스님(59·서울 봉은사 주지)이 산문 밖으로 나왔다. 지난달 29일 경복궁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 불교계를 대표해 의식을 치렀다. 봉은사와 명진 스님을 아는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2006년 12월 5일부터 시작한 1000일 기도 중이었다. 1000일을 다 채울 때까진 봉은사 일주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다는 서원도 세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날은 907일째 되는 날이었다. 왜 그랬을까. 5일 서울 삼성동 봉은사를 찾아 명진 스님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명진 스님은 “수행자에게 1000일 기도가 따로 있겠나. 매일매일이 1000일의 하루인 거다. 다만 한 중생의 고통이라도 덜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1000일 기도 중이다. 어째서 산문을 나갔나.

“지난달 26일 저녁에 봉하마을에서 연락이 왔다. ‘영결식에서 스님이 의식을 좀 해주십사’ 하는 청이었다. 그때는 거절했다. ‘제가 기도 중이고, 1000일 기도는 봉은사 신도들과의 약속이다.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도 ‘그렇게 전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찌 됐나.

“그날 밤에 다시 연락이 왔다. ‘(권양숙) 여사께서 꼭 스님이 해주셨으면 한다’고 하더라. 난감했다. 일단 ‘기도 중에 나가는 게 쉽진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통화 하기로 했다.”

권양숙 여사는 1980년대부터 봉은사를 다녔다. 20년 넘게 봉은사 신도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에는 새벽에 직접 봉은사를 찾아왔다. 며느리와 함께 108배를 했다. 그때 권 여사는 “대통령 부인이 절에 오면 티가 나서, 다른 종교에 어떻게 비칠까 싶어서 그동안 못 왔습니다”라며 청와대에 들어간 후 5년간 내지 못했던 신도회비(120만 원)를 한꺼번에 냈다. 명진 스님은 “봉하마을에서 비통한 청을 받고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깜깜한 밤, 그는 혼자서 봉은사를 거닐었다. 이래도 난감하고, 저래도 난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긴 밤이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어째서 참석키로 결정했나.

“부처님을 생각했다. 부처님이라면 어찌하셨을까. 그랬더니 답이 나오더라. 유가족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나. 정말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아니겠는가. 내가 힘이 있다면 그 짐을 덜어줘야지 않겠나. 가령 부처님이 1만일 기도를 하다가 9999일째 이런 상황을 맞았다고 하자. 어찌하셨을까. 나는 부처님께서 산문 밖으로 나가셨으리라 본다.”

-그뿐인가. 허물은 남지 않나.

“허물이 남는다. 1000일 기도 중에 93일을 남겨 놓고 산문을 나선 허물은 내가 안고 가는 거다. 봉은사 신도들에겐 미안하다. 그 허물은 두고두고 내가 미안해 할 대목이다. 그건 내 몫이다. ”

-승려로서 ‘1000일 기도’는 일종의 ‘훈장’이기도 하다. 아쉽진 않나.

“그런 건 없다. 막상 결정을 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영결식날 산문을 나설 때도 마음은 담담하더라. 1000일 기도는 다시 한다 해도 상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아닌가”라고 했다.

“고인의 심정을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얘기지 싶다.”

-사람들은 “유서의 메시지가 굉장히 불교적”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다. 그러니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거다. 모멸감에다 자존심까지 뭉개진 거다. 본인 스스로 ‘면목이 없다’고 했다. 그 속에서 엄청난 무상함을 느꼈으리라 본다. ‘산다는 게 뭘까’ 하는 회한 말이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란 대목은 그런 내면의 소리를 담은 것이라 본다.”

-불교적 깨달음과는 다른 차원인가.

“그렇다. 엄격히 말해 깨달음의 차원은 아니다. 그건 자신의 죽음을 향해 던지는 일종의 위안이다. 그런 독백의 소리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3년간 관 속에 들어가는 게 수행자의 1000일 기도다. 그런데 스님은 중간에 관 뚜껑을 열고 나온 셈이 아닌가.

“그것도 나의 업(業)이다.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하고, 매순간 결정을 한다.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런 선택과 결정이 자연스런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할 뿐이다. 봉은사에 있으면서도 사람들 만나고, 신문도 보고, 할 말도 하고 지냈다. 따지고 보면 안 나간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면. 다시 그런 상황을 맞는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봉은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이런저런 의견이 올라와 있다. 명진 스님의 결정에 대한 찬성이 8, 반대가 2쯤 된다. 간혹 신도들이 묻는다. “아휴, 스님. 1000일 기도 다 됐는데, 스님께서 꼭 나가셨어야 했습니까?” 주지실 툇마루에 선 명진 스님이 말했다. “그런 말 들으면 미안하지. 정말 면목없지. 그런 허물도 내가 안고 갈 몫이지.”

명진 스님의 1000일 기도 회향일(마지막 날)은 8월30일이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0일째와 겹친다. “1000일 기도 끝나면 뭘 할 건가?” 하고 물었다. 명진 스님은 “지금같이 살 뿐이다. 그냥 신도들과 도량 가꾸고, 수행하고, 공부하면서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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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