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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유명무실한 자율고를 원하는가

지난주 교육과학기술부는 내년부터 개교할 서울지역 자율형 사립고(자율고) 신입생 선발전형에 대한 기본방침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해당 자율고는 응시 대상의 중학교 내신성적 기준을 50~100% 범위 내에서 정하고 그 기준을 충족시키는 응시자들을 추첨으로 선발하게 된다. 듣기에 따라서는 자율고의 지원 대상을 내신성적으로 제한하는 듯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율고는 응시생을 대상으로 면접을 볼 수도 없고 내신성적 순으로 학생을 뽑을 수도 없다. 내신성적이 중간을 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비 뽑기’식으로 추리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학교의 자율성은 교육과정 운영, 학생 선발, 그리고 재정의 자율권을 뜻한다. 현재 자율고의 재정 충당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다. 더욱이 교육과정 운영 또한 완전 자율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학생 선발마저 이런 식으로 제한한다면 이를 ‘자율고’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이름만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사정으로 벌써부터 사립학교 관계자들 사이에선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자율고를 운영하겠느냐’라고 말이다.

물론 자율권이 ‘학교 마음대로 가르치고 학생을 뽑고 수업료를 받는’ 무제한의 자유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여건을 고려한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가 외부로부터 부여되는 것은 자율고의 설립 취지에 위배된다고 본다. 자율고는 다양화되고 특성화된 학교 교육을 통해 공교육에 대한 만족도를 높인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즉 획일화된 고교 시스템으로는 개인의 상이한 능력이나 특성에 따른 교육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보고, 일부 사립학교에 자율권을 부여하는 체제를 통해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대상이 하필 ‘사립고’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이렇다. 우선 사립고는 다채로운 건학이념을 통해 공립학교보다는 비교적 자유롭게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다. 아울러 교육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별 학교에 묻는 데 있어 공립보다는 사립학교가 용이하다는 점도 감안된 것 같다. 게다가 사립과 공립 간의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학교 교육의 만족도를 제고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다.

결국 개성 있는 교육이념으로 무장된 사립학교들이 학생들의 특성이나 수준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지게 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다 좋은 교육, 보다 흡족한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자율고 프로젝트의 핵심적 내용이다. 그럼에도 교과부는 왜 이러한 자율고를 유명무실화하려는 것인가? 그 이유는 바로 사교육이라는 엄청난 부담에 있다고 본다. ‘자율고가 사교육을 부추긴다’라는 비난은 고스란히 교과부, 아니 현 정부의 몫이 될 수도 있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느냐’고 관계자들만을 질책할 수는 없는 문제다. 예상되는 사교육의 증가 효과를 비현실적인 기우라고 일축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나라의 장래를 위한 비전(vision)을 제시하고 그에 일관된 교육정책을 펴가는 리더십이다. 오랜 기간 영국의 총리를 역임한 토니 블레어는 교원노조와 일부 학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 평가제도를 정착시켜 빈사(瀕死) 직전의 영국 공교육을 회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기는 잃으면 그만이지만, 권력은 잃더라도 책임이 남는다는 무서운 교훈을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싶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바른교육권 정책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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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