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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크게 다른 한·미 정치인 자녀 결혼 풍속

지난해 11월 17일 미국의 한 한인단체는 워싱턴 의원 7명에게 조그마한 나전칠기 상자를 돌렸다. 한·미 비자면제 협정이 발효된 날에 맞춰 그간 도움을 준 미 정치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의원들의 보좌관에게는 빠짐없이 종이쪽지가 건네졌다. 40달러짜리라는 가격표였다. 50달러 이상의 선물은 못 받게 한 미 의회의 ‘윤리규정’을 감안한 배려였다. 그래야 의원들이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어느 나라보다 의회 권력이 막강한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니 그냥 놔두면 의원들에게 퍼부어지는 뇌물 공세는 상상을 초월할 게 뻔하다. 그래서 미국 의원들을 옥죄는 윤리규정은 정말 심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철저하다. 의원들이 받을 수 있는 선물과 향응·접대에 관한 규정만 A4 용지로 35쪽이다. 친척들에겐 액수와 상관없이 선물을 받을 수 있되 4촌 이내에 국한한다는 식이다. 심지어 “약혼자로부터는 결혼 약속의 징표로 반지 등을 받을 수 있다”는 웃음을 자아내는 내용까지 있다.

물론 미국 정가(政街)도 사람 사는 곳이라 더할 수 없이 냉랭한 규정에서도 ‘인간의 얼굴’을 한 구석이 없을 순 없다. 미리 통보를 하면 예외적으로 결혼과 출산 시 받는 선물엔 금액 상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상식 선에서 친·인척 간에 따스한 정을 나누는 것마저 차단하진 않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단서가 달려 있다. 결혼 당사자가 아들, 딸이 아닌 의원 본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직무와 관련된 인사로부터는 선물을 받을 수가 없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는 유권자들의 심판이 기다린다. 실제로 1978년 찰스 윌슨이란 민주당 하원의원은 ‘코리안 게이트’의 주인공 박동선씨로부터 현금 600달러를 결혼선물로 받은 게 드러나 18년간의 정치인생을 마감했다.

한국과 미국의 관혼상제 풍습은 크게 다르다. 그러나 한 국가의 지도층으로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은 별반 다른 점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고위 정치인의 결혼식 같은 것이 미국에서 치러졌다면 당장 징계위원회가 열렸을 것이다. 자녀 결혼식 자리를 빌려 정치인이 현금이 든 축의금 봉투를 받는다는 것은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뉴욕에서 치러졌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장남 결혼식은 맨해튼의 작은 성당에서 거행됐다. 결혼식장에는 2~3개의 화환이 전부였고, 300여 명 정도였던 하객들도 신랑·신부의 친척과 친지들이 대부분이었다. 반 총장과 장인·장모만을 보고 찾아온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고 한다. 이렇게 조촐한 결혼식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궁금증은 결혼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자녀들이 “왜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우리 결혼식에 오느냐. 절대 알리지 말라”고 부모에게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라는 게 반 총장의 설명이었다. 일가족의 마음가짐이 이렇다면 호화결혼을 둘러싼 구설수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남정호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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