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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일본군 콘돔 발견

최근 중국에서 일본군의 난징(南京) 대학살을 다룬 영화 ‘난징, 난징’이 개봉돼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콘돔의 사진이 공개돼 화제다.

“당시 콘돔은 매우 중요한 전략물자였습니다. 전쟁 초기 콘돔은 중요 전략물자와 함께 일본에서 직접 각급 부대로 보내진 후 다시 위안소로 배급됐어요. 콘돔을 군대에 보급한 것은 군인들의 성병 감염과 전투력 약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코 위안부의 임신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일전쟁 시기 장닝탕산(江寧湯山) 위안소에서 참담한 위안부 생활을 겪은 레이구이잉(雷桂英)의 회상이다. “일본 군인은 자기가 콘돔을 착용하고 들어온 뒤 사용 후 바로 버렸어요.”

중국 신화망은 9일 오랫동안 일제 위안부 역사를 연구한 주훙(朱弘)씨가 일본에서 보내온 사진과 함께 당시 위안부들의 비참했던 상황을 보도했다.

주훙씨는 “1998년 일본에서 중·일전쟁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당시 사용했던 콘돔 ‘돌격 1호(突擊一番·돌격 이찌방)’와 성병 방지용 연고에 대해 알게 됐다. 이후 그것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하다 마침내 일본에서 입수했다”며 직접 찍은 '돌격 1호' 사진을 신화사로 보내왔다.

당시 ‘돌격 1호’는 휴가를 나가는 병사에게 ‘외출 허가증’과 함께 지급하거나, 위안소를 직접 찾아 온 군인들이 돈을 지불하면 방 번호와 위안부를 지정하면서 함께 나눠줬다.

중국 침략기간 동안 일본군이 유린한 중국 여성은 20만 명이 넘었다. 당시 위안부들이 위안소 방 안에 누워있으면 보통 3명의 군인이 함께 들어와 한 명이 일을 끝내고 옷을 챙겨 입으면 다른 한 명이 바로 덮쳤고, 나머지 한 명은 급한 마음에 바지를 미리 벗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고 당시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증언한다.

당시 일본 군의관이었던 아소씨가 찍은 사진에 보이는 상하이(上海) 위안소 담벽의 규정에 따르면 “입장하는 이들은 반드시 접수처에서 구매한 입장권과 콘돔 1개를 소지해야 한다. 하급사관 및 군속의 입장료는 2엔이다”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과 ‘돌격 1호’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당시 위안부 한 명당 하루에 보통 29명의 일본군을 상대했고 많을 경우에는 100명 이상을 넘길 경우도 있었다. 적지 않은 위안부가 임신을 했으며 그들은 임신한 채로 강제로 일본군을 상대해야만 했다.

선우경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kysun.s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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