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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소풍’ 첫날, 굴업도 밥상엔 갯냄새·사람냄새 넘실

2009년 6월 5일 낮 12시, ‘집단가출호’가 돛을 올렸다. 선장 허영만 화백을 구심점으로 모인 9명의 선원은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의 비좁은 수로를 바람의 속도로 빠져 나왔다. 독도까지 펼쳐질 머나먼 물길을 떠올리자 만감이 교차했다. 약한 바람을 그러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오후 3시에야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어, 저거 봐라.”

라면을 뜨던 허 화백이 배 좌현을 가리켰다. 돌고래의 친척뻘인 상괭이 서너 마리가 요트를 쫓아오고 있었다. 오후 8시 첫 번째 목적지 굴업도에 도착해 닻을 내릴 때까지 상괭이는 요트 주위를 맴돌았다. 전곡에서 굴업도까지는 직선으로 59.2km, 항해 거리로는 70㎞가 넘었다.

굴업도 선창에선 마을 서인수 이장이 마중 나와 있었다. 섬 사람의 밥상에선 갯내가 났다. 들기름을 발라 구운 돌김, 물텀벙 찌개, 소박하게 무쳐낸 취나물과 달래 장아찌.

갓 지어낸 밥을 두 그릇씩 비워냈다. 손 큰 안주인이 양푼 가득 내어온 박하지 게장도 깡그리 먹어 치웠다. 굴업도는 8가구 20여 명이 산다. 현존하는 이(里) 중 가장 작은 규모라고 한다. 이장댁 바로 앞에 있는 백사장에 야영장비를 풀었다. 달빛이 교교히 비추는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이장이 안주를 가져왔다. 아귀를 해풍에 반건조시킨 뒤 떡을 찌듯 그대로 쪄낸 물텀벙 백숙이었다. 달, 바다, 파도 소리, 곡차…. 모든 것이 완벽했으나 허 화백은 한 가지를 더 원했다.

굴업도 해변 침낭 속에서 비바크를 하고 있는 허영만 선장. 62세인 허 화백은 50대 중반부터 산악인 박영석씨와 함께 히말라야 등에 등반하며 야외 생활을 즐기고 있다. [사진=이정식]

“이장님, 가로등을 끌 수는 없을까요?”

서 이장이 빙그레 웃었다. 가로등이 꺼지자 해변은 온전히 달빛으로 빛났다. 바다의 잔물결은 달빛에 부서졌다. 달은 오전 1시 굴업도 남쪽 끝 개머리 너머로 저물었다.

이튿날엔 굴업도를 떠나 선갑도에 닻을 내렸다. 반찬거리가 없어 저녁 식사는 선장이자 알아주는 낚시꾼인 허 화백의 솜씨에 달려 있었다. 허 화백은 30분 만에 팔뚝만 한 노래미 3마리를 꿰어 올렸다. 선원들은 “선장님 만세”를 외쳐댔다.

해 질 녘, 커다란 어선 한 척이 우리 배 쪽으로 다가왔다. 낯선 배의 출현으로 잔뜩 긴장한 우리들 앞으로 대뜸 다가온 그들은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노란색 바구니를 내민다. 아귀와 갑오징어였다. 거칠게 표현된 바다 사나이들의 우정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답례로 아껴뒀던 고량주 한 병을 건넸다.

매운탕은 대실패였다. 쓸개를 빼내지 않고 끓여 쓰디 썼다. 이날 밤 시련의 전조였다.

해가 저물자 모기들의 공습이 시작됐다. 바닷가 모기는 드릴 같은 주둥이로 얇은 셔츠를 쉽게 뚫었다. 침낭에 들어가 숨을 쉬기 위해 내민 얼굴은 모기들의 무자비한 집중 공격 목표가 됐다.

허 화백은 그 순간에도 “이 동네 모기들은 오늘 우리가 안 왔으면 대체 뭘 먹고 살았을까”라며 유머를 잃지 않았다.

다음 날 정오 풍도에 도착해 한 민박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아침에 잡힌 꽃게로 끓인 탕은 신선했다. 민박집 주인 김양규씨가 허 화백을 알아보고 노래미 새끼 말린 것을 연탄불에 구워 내왔다. 법성포 굴비에 버금가는 맛이었다. 전교생이 6명인 풍도초등학교에 책을 전달한 뒤 다시 길을 떠났다.

피해야 할 어구가 지뢰밭처럼 깔린 바다엔 해무마저 짙게 깔렸다. 거대 선박들이 수시로 다니는, 바다 위의 고속도로쯤 되는 항로를 횡단할 땐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 VHF 무전기에서는 시계 500m의 안갯 속에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상선들의 긴박한 교신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오후 4시. 안개가 걷힌 가운데 낯익은 제부도의 빨간 등대와 누에섬의 파란 등대가 보였고, 사흘 전 떠났던 전곡항이 눈앞에 펼쳐졌다. 입항해 마무리 작업을 마친 뒤 우리는 비로소 악수를 나누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 텁수룩한 수염…. 무엇보다도 모기에 물려 얼굴이 퉁퉁 부은 모습이 가관이었다.

송철웅(익스트림 스포츠 칼럼니스트), 사진=이정식



허 화백 “가출 각오처럼” 제안에 요트 이름 ‘집단가출호’ 만장일치


허영만 화백은 수차례의 히말라야 트레킹,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 캐나디안 로키 트레킹 등 다양한 방랑 히스토리를 갖고 있다. 그 여행의 기록들을 『집단가출 시리즈』로 출간해 오고 있다. 여행은 반드시 기록을 남겨둬야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그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이번 한반도 연근해 요트 일주를 앞두고 배 이름을 어떻게 부를지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허 화백은 고민 없이 ‘집단가출호’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한 달에 3~4일 동안의 항해지만 가출하는 각오가 아니면 1년 동안 독도까지 가는 마라톤 항해를 해낼 수 없을 것이란 게 이유였다. 물론 일행은 모두 무릎을 치며 동의했다.

이달 5일 경기도 전곡항을 출발했고 계마항·여수항·덕산항 등 11개 중간 목적지를 거쳐 2010년 6월 6일 독도에 도착 할 계획이다. 독도에서 항해의 마침표를 찍고 나면 기록을 모아 가칭 『집단가출 3편-바람으로 떠난 조국의 바다』를 펴낼 예정이다. 집단가출호 가격은 그랜저 신차 값 정도라고 했다. 오른쪽 사진은 굴업도 남쪽 4.5㎞ 지점의 선단여를 지나고 있는 집단가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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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