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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남을 통해 드러내기

가끔 대중 강의를 하러 다니게 된다. 이럴 때마다 질문하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강의보다 그런 토론시간을 더 즐기는 편이다. 물론 “질문 하실 분?” 하고 물어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나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간혹 용감하게 질문을 하는 사람이 한 명만 생기면 봇물 터지듯이 재미있는 토론을 하게 된다. 그런데 꼭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강의 잘 들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말하길 ‘용기는 두려움에 저항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대인관계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법을 한 수 듣고 싶습니다.” 

즉 ‘○○○이 말하길’과 같이 인용문으로 운을 떼는 말버릇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흔히 자기가 느낀 것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 권위를 가진 누군가의 말이나 통계치와 같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를 동원해야 안심이 되는 타입이다. 마치 친구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엄마가 없으면 형이라도 같이 가자고 해서 뒤에 세워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소심한 어린이의 마음 같다. 글로 읽을 때에는 인용문이 들어가 있으면 폼도 나고 객관화된 것 같다. 그렇지만 말로 할 때에는 남의 말이나 격언을 인용하는 것은 짧은 대화 속에 진짜 자기 생각을 최대한 숨기고 희석하려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또 다른 유형은 타인의 권위를 빌려 대중을 설득하려는 타입이다. 역시 강의를 하러 간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시작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자리를 정돈하느라 강의를 시작할 수 없었다. 이때 진행자가 “지금까지 오셨던 ‘강사들’이 그러는데, 처음부터 알아서 줄을 맞춰 자리에 앉는 회사는 절대 망하지 않고, 그렇지 않은 회사는 나중에 보니 없어졌다고 합니다”고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착석하도록 설득하고 있었다. 일리 있는 말 같기도 했다. 그러나 곰곰 들어 보니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아무리 들어도 한 명이지 ‘들’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들’이 되는 순간 단수형 체험은 복수형이 되면서 일반화의 길로 들어서서 꼭 지켜야만 하는 일같이 들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자기 생각에 남의 말을 얹어 일반화시키면서 복수형으로 확장하고 보니 슬그머니 ‘그러면 좋겠다’는 바람은 어느새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양질전환을 해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게다가 정확히 누가 한 말인지도 밝히지 않으니 쫓아가서 확인하기도 힘들다. 이런 언어의 마술은 힘이 들거나 어렵지도 않다. 흘리듯 ‘들’ 하나만 더 붙이면 된다. 요즘 모 개그맨의 유행어인 ‘참 쉽죠잉’이다. 생각해 보니 나도 흔히 의견을 얘기하면서 ‘그렇다고들 하죠’라고 하는 버릇이 있었다. 남의 말을 통해 내 생각을 드러내거나 일반화시키려는 노력에 이와 같이 품이 적게 든다면, 말을 할 때마다 일반화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야 설득력 있게 무게가 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인용과 ‘들’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자칫 사실을 왜곡할 수 있고, 인용의 권위 뒤에 숨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도 되는 자신감이 기본장착돼야 하리라.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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