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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연어 대통령’의 꿈

강에서 태어난 연어는 바다를 누비며 살다 죽기 전에 다시 강으로 간다. 연어는 알을 낳고 죽고 새끼는 다시 바다로 간다. 시인 안도현은 “살이 해지고 지느러미가 갈라지면서도 연어가 강물과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건 오로지 산란(産卵) 때문”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어다. 봉하마을은 인간 노무현의 영육(靈肉)이 익은 곳이다. 그는 거기서 태어나 자랐고 사랑을 찾았으며 인생의 꿈(사법고시)을 이뤘다. 대처(大處)로 나갔어도 그는 봉하의 추억을 부적(符籍)처럼 간직했다. 보리피리와 버들피리, 소에게 풀 먹이던 자왕골, 형 건평이 지어준 고시공부 움막집, 그리고 마을 처녀 양숙과 밤이 이슥하도록 거닐었던 둑길과 논길…. 노 전 대통령은 “논길을 걷노라면 벼 이삭에 맺힌 이슬이 달빛에 반사되어 들판 가득히 은구슬을 뿌려놓은 것만 같았다”고 회고하곤 했다. 청년은 마을을 떠나 판사·변호사·국회의원이 됐고 나중엔 대통령이란 거봉(巨峯)에 올랐다. 그러나 결국엔 마을의 부엉이 바위로 회귀하고 말았다. 그는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연어였다.

연어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역사가 숨을 멈추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3일 동안 식사도 거르면서 사느냐 죽느냐를 고뇌했다. 그러곤 연어가 폭포를 거슬러 오르듯 그는 낭떠러지를 뛰어내렸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그는 허공에 몸을 던져 스스로 머리뼈와 척추를 부러뜨렸다. 한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처절한 몸부림이란 걸 알 것이다. 이토록 강렬한 몸짓으로 그는 뭘 얘기하려 한 것일까. 지느러미 대신 골반과 발목뼈를 부러뜨리면서 그는 무엇을 산란(産卵)하려 한 것일까.

유서에서 그는 저항과 불만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투신하기 전에는 “나는 몰랐다”고 항변했었다. 그런데 몸을 던지면서는 그런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대신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가 무죄를 항변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말대로 정말 몰랐을 수가 있다. 그래서 그의 투신은 피난일 수도, 항변일 수도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시간의 몫이거나 아니면 신(神)의 몫이 되고 있다.

‘연어 대통령’은 곧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정말 그는 무엇을 산란하려 했을까. 정답은 그만이 알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생각했건 더 중요한 건 남아 있는 이들의 몫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 이름을 ‘사람 사는 세상’이라 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나는 모두가 제자리에 제대로 서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자존(自尊)과 분수를 자랑스럽게 지키는 세상, 그래서 유서의 표현대로 ‘자연의 한 조각’들이 자연스레 맞춰져서 반듯한 퍼즐이 되는 그런 공동체 말이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가족·측근은 그들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자기 일을 하는 그런 세상, 그리고 한·미 동맹은 동맹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서민은 서민대로 자기 자리에 반듯하게 서 있는 그런 세상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의 비밀은 ‘균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을 미화해서도, 폄하해서도 안 된다. 열정과 의도의 순수성을 폄하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미숙과 잘못을 미화해서도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조용필의 ‘허공’을 즐겨 부르곤 했다. 곡을 지은 정풍송씨는 “‘허공’은 못다 이룬 꿈을 위로하는 노래”라고 설명한다.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이야기….” 연어 대통령의 꿈은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많은 지도자가 그런 꿈을 꾸었다. 꿈은 무상(無償)이지만 실천엔 고뇌가 따른다. 국민의 애도 속에서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이 무엇에 성공하고 무엇에 실패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슬픈 연어, 노 전 대통령이 저승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기를 바란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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