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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사기 올리려면 괴짜 행동도 과감하게”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22일 오후 10시 서울 신수동 서강대 메리홀.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연출한 ‘백조의 호수-사랑에 취하다’ 발레 공연이 끝난 뒤 인사하는 출연진에게 관객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무대 위에 검은색 연미복 차림의 서영태(58) 현대오일뱅크 사장도 눈에 띄었다. 이 발레 공연은 유명 기업인들이 카메오로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다. 서 사장은 이 공연에서 아리아 ‘금지된 사랑’을 열창해 관객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지그프리드와 오데트의 사랑을 훼방 놓은 마왕 역할을 맡았어요. 부조리한 현실이자 권력의 상징이지요. 열흘 내내 3시간씩 맹연습했는데 보람이 있네요.”

구슬땀으로 얼굴이 흠씬 젖은 서 사장은 밝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유난히 작았다. 그는 “다음 날도 공연이 있어 목을 보호해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수준급 성악 실력으로 그는 ‘테너 서’란 별명을 얻었단다. “쉰다섯에 체계적으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2시간씩 배우고 있는데 이게 엄청난 운동이 됩니다. 아랫배에서부터 올려 내뿜는 발성 에너지로부터 파워를 모을 수 있어 좋아요. 동호회 회원들과 1년에 두 차례씩 자선공연도 하고 있어 더욱 행복합니다.”


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이 여직원과 함께 ‘구준표 복장’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22일 ‘백조의 호수-사랑에 취하다’ 발레 공연에 카메오로 출연한 서영태(왼쪽) 현대오일뱅크 사장.


21일 오후 서울 을지로 내외빌딩 10층 웅진코웨이 사장실. 이 회사 홍준기(51) 사장이 최근 종영된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 구준표 복장으로 사진기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지난 3월 월례회의 때 구준표 복장으로 회의를 주재한 것을 연출해 달라는 중앙SUNDAY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하하하. 그 사연은 이래요. 월례회의를 들어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사원 한 명이 저를 가로막아요. 그러더니 막무가내로 구준표 옷을 입어달라고 조르는 겁니다. 사실 그때는 구준표가 누군지도 잘 몰랐어요. 요새는 사장이 힘이 없어서…(또 웃음). 직원들이 즐거워한다면 사장이 조금은 망가져도 됩니다. 물론 회의 분위기도 엄청 부드러워졌지요.”

인터뷰 중 직원들이 사장실 앞에 하나둘 몰려들더니 연방 디지털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홍 사장은 연신 웃기만 한다. 여기저기서 “간지난다”는 말이 튀어나왔고 이날 홍 사장은 ‘홍 간지’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간지난다’는 느낌·감각 등의 뜻을 지닌 일본어 ‘간지’에서 나온 조어로 분위기 있다, 멋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홍 사장의 변신은 이번만이 아니다. 한여름에는 밀짚모자를 쓰고 손수레를 끌면서 수박 장수로 변신해 직원들에게 수박을 나눠준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직원들에게 계란빵을 선물했다. 그는 자신이 회사의 최고령인 만큼 젊은 직원들과 함께한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연수 제도 덕분에 사업 기회 잡기도”
기업이나, 최고경영자(CEO)나 ‘감성’이라는 새 옷을 입으면서 기업도, CEO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CEO 스스로 ‘감성 엔진’이 되면서 조직에 활기가 생기고 업무 효율도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영태 사장은 이번 발레 공연에서 “유연성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렇게 유연한 조직 관리를 본 적이 없어요. 연습 스케줄이나 무대 연출을 조정하는 데 전혀 ‘고정된 각본’이 없어요. CEO 격인 조기숙 감독은 배우들의 이야기를 100% 들어주고 거의 대부분 수용합니다. 하지만 기업은 각본대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몰입돼 있잖아요.”

“기업이 유연성을 기르려면 현장과 효과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 서 사장의 소신이다. 사무실에서 서류를 뒤져보는 것보다 훨씬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다. 그만큼 현장을 자주 찾다 보니 ‘야전사령관’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구의 한 주유소에서는 주유원 복장으로 2박3일간 직접 주유를 하면서 고객 의견을 들은 적도 있다.

“CEO가 한 번 가면, 본부장은 두 번, 그 아래 부문장은 네 번을 가야 하지요. 경영층이 얼마나 현장에 열의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고객 만족도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방문하기 버겁거나 싫은 곳일수록 더 찾아가려고 합니다.”

홍준기 사장은 사내에서 ‘해피 홍(Happy Hong)’으로 불린다. ‘일주일 중 하루는 직원들과 즐겁게 노는 CEO’라는 뜻에서 직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서 사장은 ‘하이팅’ 같은 사내 행사를 통해 오전엔 봉사활동, 오후엔 문화활동을 하면서 직원들의 의견을 격의 없이 듣는 창구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칵테일 만들기, 승마, 도자기 체험, 패션쇼 체험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가 선호하는 인재상도 ‘잘 노는 사람’이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생각에서다. 홍 사장은 이런 독특한 문화를 ‘신기(神氣) 문화’라고 부른다. 신나게 일하는 사람만이 창의력과 도전정신으로 탁월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기업 분위기는 비즈니스로 연결되기도 한다. 웅진코웨이에는 우수 직원을 선발해 보름간 해외 연수를 보내주는 ‘와(WAA)’ 프로그램이 있다. 홍 사장은 “직원 격려 차원의 단기 해외 연수인데 여기서 사업 기회를 찾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유럽으로 연수를 다녀온 직원들이 제안한 ‘태양광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계열사 웅진에너지를 설립했다는 것이다. 평소 탄산수를 즐기는 유럽인을 겨냥해 탄산수가 나오는 정수기도 개발하는 중이다. 홍 사장은 “론칭 5개월 만에 74만 명의 회원을 확보한 ‘웅진페이프리’(외환은행과 제휴해 렌털 요금을 깎아주는 신용카드) 같은 히트상품도 이런 자유로운 기업문화에서 나왔다”고 자랑했다.

“감성 경영하면 나긋나긋하다고? NO!”
두 사람의 감성 경영 성과는 어떨까. 기업 실적이 이를 대변한다. 사장은 ‘괴짜’지만 실적은 ‘알짜’라는 말이 그대로 들어 맞는다.

서 사장은 2002년 CEO 취임 이래 누적 적자가 6000억원이던 회사를 1년 만에 턴어라운드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과감한 구조조정 덕분이다. 그는 사장 취임 직후 900억원에 이르는 비수익성 자산을 매각하고 임직원의 30%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했다. “당시 현대오일뱅크는 채권단으로부터 신뢰를 잃어 원유 구매를 위한 신용장 개설도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지요. 사무실 한편에 내 사직서가 들어 있는 액자를 걸어 놓았어요. 2001년 말 살로먼스미스바니를 그만둘 때 쓴 것인데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보면서 당시 각오를 다집니다.”

감성 경영을 한다고 해서 CEO가 무조건 나긋나긋하고 아량이 넓다고 지레 짐작하면 오산이다. 서 사장은 스스로에게 더 깐깐하다. 그는 자신이 사용한 판공비를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결재받는다. 팀장급 이상 간부에게는 모든 회의록를 공개한다. 정보 권한 독점과 인사 줄서기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다. 서 사장은 “감성 경영을 통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투명 경영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윤리 경영 실천에 철저하다. 선물을 주고받거나 향응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협력업체와 처음 거래 계약할 때 반드시 윤리 경영 서약을 받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2007년 국세청 특별세무조사를 받았는데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유가 급등으로 고전했지만 올해 1분기에 2조4150억원 매출에 1300억원이 넘는 흑자를 냈다. <도표 참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투자도 활발하다. 이 회사는 2011년까지 2조5000억원을 들여 5만2000배럴 규모의 중질유 분해시설을 조성하고 있다. 서 사장은 “고유황 중질유(벙커C유)를 재처리해 값비싼 휘발유·등유·경유 등으로 바꾸는 고도화 설비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투자가 완료되면 수익성이 상당히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6년 삼성전자에서 영입된 홍 사장 역시 서글서글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경영자다. 스스로도 “직원들을 많이 닦달하는 편”이라고 털어놓았다. 그에게는 ‘해피 홍’ 말고도 ‘홍 반장’이라는 별명도 있다. 발 빠른 업무 처리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주문하다 보니 붙은 별명이다. “올림픽에서 땀 흘리지 않고 금메달 딴 사람이 있습니까. 금메달 따려면 땀을 더 많이 흘리라고 독려합니다. 권한 위임도 과감하게 하고 있지요. 외환은행과 페이프리카드 발행 협상을 주도한 것도 과장급 사원이었습니다.”

웅진코웨이는 널리 알려진 대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정수기 렌털(임대)이란 신종 사업으로 급성장했다. 홍 사장은 “그런 만큼 성장통(痛)도 있었다”고 말했다. “(2006년 8월) 대표이사에 취임하자마자 처음 한 일이 재고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창고에 두 달치 재고가 쌓여 있더군요. 890억원이 잠겨 있는 거였죠. 당장 재고를 15일치로 줄이니 그해 이익이 400억원 늘어났어요. 이런 식으로 업무방식, 프로세스를 개선하니 영업이익률이 7.7%에서 14.5%로 개선됐습니다.”

홍 사장은 요즘 해외 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올해 1억 달러어치를 수출해 내수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뗄 것”이라며 “1조4000억원대 매출 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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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