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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스러움은 결벽증… 원칙 어긋나면 못 참아”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한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경찰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 중에 ‘노무현스럽다’는 말이 있다.
‘노무현스러움’은 바로 결벽증의 다른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결벽증 때문에 종종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 선택’을 해 왔다. 스스로 설정한 원칙과 가치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났을 땐 참을 수 없어할 뿐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서도 별로 연연해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스타일이 ‘노무현 방식’이었다.

2003년 10월 10일. 당시 노 대통령이 예고 없이 청와대 춘추관 프레스룸을 찾았다.
“오늘 예정에 없이 이렇게 특별히 자리를 마련한 것은 최도술씨 문제에 대한 제 입장을 국민에게 설명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최도술씨는 20년 가까이 저를 보좌해 왔고… 그의 행위에 대해서 제가 (몰라도)모른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국민의 불신에 대해서 재신임을 묻겠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때도 큰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재신임이란 말도 생소했지만 “누가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측근이 돈을 받은 문제로 일국의 대통령이 자기 직을 거는 게 타당하냐”는 비판이 많았다.

아예 코너에 몰린 노 전 대통령이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노림수’를 쓴 것이란 해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오래 생활한 측근들의 주장과 해석은 한결같았다. 당시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측근이 받은 불법적인 돈조차도 괴로워하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결벽증이고, 그게 바로 노무현”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직에 대해 재신임을 묻기 전에도 민주당 대선 후보직이나 국회의원직을 내던진 적이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과거 이런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대선(2002년) 당시 여름을 지나면서 지지율이 추락하자 나를 부르더니 ‘정몽준 의원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내가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하자 ‘후보를 그에게 사퇴할 테니 정 의원 쪽에 다리를 놔 달라’고 했다. 지지율 하락으로 당원들에게 미안한 나머지 후보직을 내놓으려 한 것이다.”

정 의원과 노 전 대통령이 단일화하기 오래전의 일화다. 당시 정 의원 쪽이 거절해 후보 사퇴가 이뤄지진 않았으나 노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강한 결벽증에다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던지는 정치를 해온 노 전 대통령이기에 최근의 국면에선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얼마 전까지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을 자주 면담했던 한 인사의 설명이다.
“경위야 어찌 됐건 지난 5개월간 일어난 일들은 60 평생 지향해 왔던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소신이나 걸어온 길과는 배치된 것이었다. 구속이 되건 불구속이 되건 매번 재판에 출두하면서 자신뿐 아니라 가족·지지자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걸 노 전 대통령이 견뎌나갈 수 있었겠느냐.”

그는 “대통령에게 살아서 지킬 명예가 더 뭐가 남아 있었겠느냐”며 “잘했다 못했다 할 상황은 아니지만, 가장 ‘노무현스러움’을 보여준 가슴 아픈 장면”이라고 침통해했다.

한 전직 청와대 비서관 출신도 “‘그런 거 가지고 자살하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노 전 대통령을 잘 모르는 얘기”라며 “노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재판 진행 과정에서 고통받는 걸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으론 ‘투사’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가까이서 보필한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성품이 여리고 약한 편”이란 말을 자주 해 왔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대선 광고의 컨셉트가 ‘노무현의 눈물’이었듯, 실제로 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자주 목격되곤 했다.

노사모 지지자들을 만났을 때나 대선 승리 후 386 측근들이 “우리들의 영원한 도구가 돼 달라”는 편지를 읽었을 때 외부인들에게 눈물을 보였다.

유서에서도 노 전 대통령이 안고 있던 감정의 일단이 표출됐지만, 노 전 대통령은 최근 들어 부쩍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토로하는 일이 잦아졌다.

경희대병원 김종우(정신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단순히 수사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권력의 정점에 섰던 성공한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자기존중감의 상실이 그를 자살로 몰고 간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공개된 그의 글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엿보인다.

“그동안 고맙다는 인사도 변변히 한 일도 없는데 다시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니 참으로 미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강금원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면목 없는 사람 노무현”(지난 4월 17일, 강금원 회장과의 인연에 대한 글 중)

4월 22일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 올린 글에는 그가 느끼고 있는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좌절감이 어우러져 있다.

“형님 이야기가 나올 때는 ‘설마’ 했습니다. 500만 불, 100만 불 얘기가 나왔을 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전직 대통령의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이 나버렸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이 말이 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전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국민의 실망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이라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검찰과 언론의 추측과 단정에 반박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상문 비서관이 ‘공금 횡령’으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친구(정 전 비서관)가 저를 위해 한 일입니다.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사람 사는 세상’을 폐쇄했다. 한 달여가 지난 뒤엔 스스로 ‘사람 사는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강민석 기자, 김해=고성표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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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