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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끼 밖에 안 먹고 비서관 대화도 기피 … 우울증세 보여”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은 4월 7일 홈페이지에 직접 글을 올려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에게서 돈 받은 사실을 밝혔다. 사진은 이틀 뒤인 9일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유령회사가 동원되는 등 대통령 기록물과 원본 하드디스크 유출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뤄졌다”(청와대)

“경제위기에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란 사실은 잘 알고 계시지 않느냐”(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글’ 중에서)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적지 않은 갈등을 빚어왔다. 첫 충돌은 청와대 기록물 유출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며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통치자료를 가져갔다며 반환을 요구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이 이를 거부하자 청와대는 지난해 7월 노 전 대통령을 검찰에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이 곧바로 수사를 시작했다.

검찰은 지난해 정상문·이호철 전 청와대 비서관을 포함한 10여 명을 소환하고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인 ‘사람사는 세상’ 서버, 경기도 성남시 국가기록원 대통령 기록관 등을 압수수색하며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열람권부터 보장하라며 강하게 맞서던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중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겠다”고 몸을 낮췄다. 검찰이 국가기록물 무단유출 사건을 수사하던 지난해 7월부터 11월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세무조사 했던 때와 같은 시기다. 국세청이 박 회장을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기록물 유출 사건 수사는 후순위로 밀렸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현 정권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노사모 총회에서 퇴임 후 사실상 처음으로 시국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로 불거진 촛불시위가 ‘이명박 대통령 퇴진 요구’로 비화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매우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청와대에 살아봐서 아는데 청와대 행진은 별다른 소득이 없는 만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핵심지지층인 노사모 회원들을 설득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권퇴진 주장은 헌정질서에 맞지 않고 민주주의 질서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에게 요구할 게 많겠지만 적절한 수준에서 밀어붙여야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도 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촛불시위대를 독려하던 분위기에선 의외의 발언으로 받아들여 졌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수사망이 자신과 주변 인물로 좁혀오자 정면대응으로 바뀌었다. 그는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며 선제공격을 했다. 검찰에 소환된 4월 30일 이후에는 “검찰에 증거가 하나도 없더라”며 자신감을 보였다는 얘기가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그랬던 노 전 대통령이 소환 조사가 끝나고 20여 일 만에 진실 규명에 대한 검찰과의 법리 다툼을 스스로 포기하는 길을 택한다. 이와 관련, 검찰 핵심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몇 차례 이상 징후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사전구속영장이나 불구속기소 여부에 대한 검찰 결정이 임박한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리라는 예상까지는 아무도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 우울증세 보여
검찰 내 정보 담당 부서에서는 몇 주 전부터 노 전 대통령의 신상에 이상 기류가 있음을 감지했다. 특히 최근 들어 부쩍 노 전 대통령이 집에서 나오지 않고 혼자만 있으려 하고 측근들이나 비서관들과도 대화를 기피한다는 정보가 계속 올라왔다고 한다. 대검 범죄정보팀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해 이상 징후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들이 최근 계속 올라왔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특히 밥을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않을 정도로 식욕을 잃은 상태였다”고 전했다. 우울증세가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 화장해라. 마을 주변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

노 전 대통령이 컴퓨터에 남긴 유서에서 검찰 수사를 받는 동안 자신도 힘들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했다고 자책했다. 내용은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박연차 게이트로 인한 검찰 수사는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에 대한 미안함이 배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내용은 자신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을 연상케 한다.

남 전 사장은 2004년 3월 노 전 대통령이 전국에 중계되는 TV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직접 거론하며 인사 청탁을 하지 말라고 지적하자 그 길로 자택에서 나가 한강에 투신 자살했다. 남 전 사장은 노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에게 찾아가 대우건설 사장 연임을 청탁하며 돈을 준 혐의로 조사를 받았었다. 노 전 대통령은 남 사장의 죽음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주검으로 변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은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현 정권이 표적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법정 투쟁을 통해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 공식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인터넷 홈페이지 통해 결백 주장
노 전 대통령의 가족 연루 의혹이 있는 박연차 게이트가 터진 직후, 노 전 대통령의 방어 공간은 인터넷 홈페이지였다. 글이 무기였다. 노 전 대통령은 고비마다 자신의 생각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의 지지자들은 검찰이 몰아붙이기식 수사를 하고 있다며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노 전 대통령은 4월 7일 자신의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 첫 번째 글을 올렸다.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글은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2006~ 2007년 박 회장에게서 100만 달러와 현금 3억원을 받은 혐의로 대검 중수부에 체포된 직후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글에서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이라면서 “저의 집(권양숙 여사)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검찰은 그 돈이 노 전 대통령 측에 갔다는 데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돈을 받았다고 먼저 시인하고 나서자 검찰은 당황했다. 정 전 비서관에 대해 그달 10일 검찰이 청구한 영장은 ‘범죄에 대한 소명 부족’이라는 이유로 법원이 기각했다. 권 여사가 현금 3억원은 내가 받아 쓴 것이지 정 전 비서관이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한 것도 작용했다.

검찰은 바로 다음 날인 11일 권 여사를 부산지검으로 비공개 소환해 조사했다. 권 여사는 “100만 달러와 3억원은 청와대에서 내가 받았다. 무슨 빚을 졌는지, 왜 달러로 받았는지는 얘기할 수 없다”고 사용처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이 즈음 대검 중수부에 소환된 아들 노건호(36)씨도 “박 회장이 2008년 2월 연철호(36·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씨에게 송금한 500만 달러는 나와는 상관없는 돈”이라고 부인했다.

노 전 대통령도 거들었다. 12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아내가 한 일이고 나는 몰랐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고 구차해 ‘내가 그냥 지고 가자’고 사람들과 의논도 해 봤지만 결국 사실대로 가기로 했다”면서 “몰랐던 일은 몰랐던 것이고 중요한 것은 증거”라고 말했다.“저는 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무슨 특별한 사정을 밝혀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할 것”이라며 “그의 진술을 들어볼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7일 글에서는 2007년 8월 열린 3자 회동(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박 회장, 정상문 전 비서관)을 설명하면서 “퇴임 후 바로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각종 조사와 수사가 시작되고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도 시작되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전직 대통령 후원자에 대한 표적 수사라는 주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러나 그달 22일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사람 사는 세상’을 폐쇄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소환조사 직후에도 “증거 없었다” 자신감
노 전 대통령 소환 조사 D-데이는 4월 30일이었다. 대검 중수부와 노 전 대통령 측은 소환을 앞두고 한 바탕 설전을 벌였다. 소환 며칠 전 노 전 대통령이 2006년 9월 회갑 때 박 회장으로부터 1억원짜리 피아제 시계 2개를 선물로 받았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발단이었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망신주기 위한 목적으로 흘렸다면 나쁜 검찰”이라고 비난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도 “노 전 대통령 측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쁜 빨대를 색출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노 전 대통령은 소환 당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주변에는 경찰 병력이 출동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노란 풍선을 든 노사모들과 노 전 대통령 구속 수사를 주장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대치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쯤 청사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렸다.“하실 말씀이 없느냐”는 질문에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면목 없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묻자 그 질문을 한 기자를 쳐다보았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 이호철 전 국정상황실장 등에 둘러싸인 노 전 대통령의 얼굴에는 힘이 없어 보였다. 그는 이날 10시간 이상 조사를 받았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운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 조사에서 우병우 중수 1과장이 “특가법상 뇌물수수 피의자로 조사받게 된다”고 고지하고 조사동의서에 서명을 요구하자 이름 석자를 쓰는 노 전 대통령의 손이 떨렸다고 한다. 검찰 간부들은 폐쇄회로 TV를 통해 이 장면을 봤다고 한다. 이후 그는 담담하고 평온한 어조로 조사에 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 과장과 심한 언쟁을 벌일지 모른다며 걱정했던 검찰은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한 대검 간부는 “임채진 검찰총장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다가 갑자기 가겠다고 할 경우에 대비해 검찰 고위 간부들을 상대로 긴급체포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기도 했었다”고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9월 회갑 때 박 회장이 선물로 줬다는 1억원짜리 피아제 시계 두 개에 대해서도 “집사람이 받아서 나는 모른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 봉하마을 어딘가에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조사 때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의 대질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과 박 회장은 대질신문을 원했지만 노 전 대통령 측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마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박 회장을 만나 진술을 들어볼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던 것과는 다른 행보여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사가 끝나고 검찰은 “조사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노 전 대통령 측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검찰이 증거가 전혀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소환 조사 이후 수사팀은 노 전 대통령의 딸인 정연씨에게 박 회장이 40만 달러를 보낸 사실을 밝혀냈다. 정연씨는 검찰 조사에서 40만 달러는 미국 뉴저지주의 160만 달러 아파트 ‘허드슨 클럽’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썼고 계약은 아직 해지되지 않은 상태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검찰은 권 여사가 정연씨에게 보낸 20만 달러가 계약금이고 박 회장이 2007년 6월 청와대로 보낸 100만 달러가 통째로 이 아파트 중도금으로 지불된 것으로 보고 있다. 40만 달러는 잔금일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권 여사와 건호씨에 이어 정연씨에게까지 미쳐 전 가족이 수사대상이 된 상황에 처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이 심리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는 보고를 받은 것도 이때부터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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