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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프로젝트

G8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및 러시아가 멤버인 선진국 클럽이다. 세계 인구의 불과 14%를 갖고 있는 8개국은 전 세계 총생산의 65%, 군비의 72%, 핵무기의 거의 10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매년 정상회담을 열어 세계가 직면한 각종 현안에 대해 토의하고 보조를 맞춘다.

그런데 G8 회원국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서로의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이다. 영문학·불문학·독문학·노문학·이탈리아문학·일문학은 이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의 근간을 이룬다. 셰익스피어와 헤밍웨이, 위고와 사르트르, 톨스토이와 솔제니친, 단테와 에코, 가와바타와 미시마 등은 국적과 국경을 넘어 이들 나라가 형성하고 있는 인식론적 공동체(epistemic community)의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그렇다. 선진 강대국들은 비단 정치·경제·군사적 이해관계로만 얽혀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나라의 국민과 엘리트들이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정치적·경제적 분쟁, 심지어 군사적 분쟁마저 이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

비근한 예로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을 때 프랑스는 격렬하게 반대했고 급기야 미국에서 ‘반(反)프랑스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로, 프렌치 토스트를 ‘프리덤 토스트’로 고치자는 법안이 미 하원에 상정될 정도로 호들갑을 떨면서 미·프랑스 관계는 급전직하의 상황으로 치닫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이런 해프닝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프랑스와 미국 간의 관계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밀접하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미국인의 과도하다시피 한 존경심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지난 10년간 소위 ‘반미감정’이 표출되면서 한·미관계는 급격히 냉랭해졌다. 중요한 동맹국이자 교역국임에도 불구하고 한·미관계는 작은 변화에도 크게 흔들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경심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비록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통해 급격하게 부상한 신흥국이지만 다른 나라의 시각에서 본다면 문화적으로는 ‘저발전 국가’군에 속할 뿐이다.

따라서 한국이 진정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문화에 투자해야 한다. 관건은 하루빨리 한국의 고급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그리고 고급 문화를 소개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 문화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인간형’을 소개하고 보급하는 것이다. 일본 문화는 ‘사무라이’가, 미국 문화는 ‘카우보이’가, 그리고 프랑스 문화는 ‘귀족’이 대변한다. 이런 이상적인 인간형들은 각 문명이 전통적으로 표방하는 윤리와 도덕, 국가관과 가족관, 형이상학과 미학을 체화하고 실천했다. 그런 인간형들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도 그들이 상징하던 세계관과 가치관은 후대에 전수돼 면면히 흐르면서 그 문명 특유의 멋과 맛을 제공해 준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 문명과 가치관을 대변할 수 있는 인간형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선비’다. 지금은 비록 사라진 ‘전(前)근대적’인 인간형이지만 아직도 한국인이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추종하는 충·효·인·의·예·지·신 등의 가치관들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리고 선비상은 현대 한국사회 속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해 왔다. 현대판 과거제도인 국가고시를 통해 선발된 엘리트들이 주도해 경제발전을 이룩했고 ‘현대판 재야’인 지식인과 학생들이 주도해 민주화를 이룩했다. 그런 의미에서 ‘선비’야 말로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인간형이다.

우리는 하루빨리 ‘선비’를 한국을 대표하는 이상적인 인간형인 동시에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고 전 세계에 보급하는 ‘선비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충절을 대표하는 사육신,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켜낸 의병장, 그리고 구한말 무너져 가는 전통 문명을 끝까지 지키면서 나라와 운명을 같이한 ‘마지막 선비’들의 생애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와 전시회·강연회를 선진국 주요 도시의 미술관·도서관 등의 문화공간에서 개최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인의 의식 속에 한국 선비의 이미지를 심을 수 있다. 동시에 선비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외국의 일반 대중 속에도 선비의 상이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선비 프로젝트야말로 선진국들이 주도하고 있는 인식론적인 공동체에 한국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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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