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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 탐사] 봉화산 바위 위의 마지막 새벽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그의 마지막 새벽이다. 그는 사신(死神)과 마주했다. 봉화산의 부엉이 바위로 그는 올라갔다. 그의 유년의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산골 가난했던 시절이다. 그는 그곳에서 칡을 캐고 진달래도 따고 바위를 탔다. 골짜기의 맑은 물에서 목욕하고 물장구를 쳤다. 그런 기억들이 그의 눈앞을 잠시 스쳐 갔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충격적인 비보다. 죽음을 결행한 극단의 선택은 어디에서 왔는가. 검찰 소환을 받은 데서 오는 낭패와 수치, 모멸감 때문인가. 정권의 도덕성에 상처가 났기 때문인가. 도덕성은 그의 자존심이었다. 저항의 표시인가.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는 책임감 때문인가. 그의 절망적 고뇌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나는 송기인(전 과거사위원장) 신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TV 자막에 긴급 뉴스가 나온 직후다. “(부산대학) 병원으로 가는 길이에요. 지금 할 얘기가 뭐 있겠습니까.” 목소리에 침통함이 담겨 있다. 송 신부는 노 전 대통령에게 정치에 입문하라고 권유했다. 1988년 4월 총선 때다. 그리고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불렸다.

20일 전쯤 나는 경남 삼랑진의 송 신부 집에 갔다. 박연차 사건에 대해 송 신부는 “안타깝다. 착잡하다”고 할 뿐이었다. 대신 “노 대통령이 퇴임 후 내 집에 온 적이 있다. 조미료가 안 들어간 시골 음식을 좋아하더라.” 그의 집은 김해 봉하마을에서 차로 30분쯤 떨어져 있다.

송 신부에게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기억을 다시 물었다. 그는 말을 아꼈다. 다만 “대통령 취임 때 세 가지 말을 했습니다. 개혁을 끝까지 추진하라. 청와대 주변에서 돈을 멀리 하라, 친인척 관리 잘하라는 등이지요…오래전에 (노 대통령과) 티베트 여행을 하기로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대통령 출마로 무산됐고, 노 대통령에게 티베트 여행은 어떻게 됐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퇴임 후 하지요’라고 했어요.” 그 여행 기회는 사라졌다. 전직 대통령의 이런 비극적 최후가 있을까. 국민은 “믿을 수 없는 죽음”이라고 했다. 송 신부의 첫 심정도 그랬을 것이다.

TV 화면에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나왔다. 청와대 본관의 세종실 앞 복도다. 그 벽에 9명의 역대 대통령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하와이 망명지에서 숨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시해당했다. 그 초상화들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과 고단함으로 다가온다. 초상화 속 노 전 대통령의 넥타이는 붉은색이다. 전날까지 노 전 대통령은 생존한 5명의 전직 대통령 중 가장 젊었다. 그 초상화는 이종구 화백의 작품이다. 그는 관록 있는 농촌 화가다. 최근에 나는 그와 초상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원래 회색 넥타이를 매셨는데 젊은 대통령을 상징하기 위해 내가 빨간색으로 바꿨다”고 했다.

이 화백은 “노 대통령다운 개혁의 카리스마와 부드러움, 당당함과 편안함의 이미지를 그림에 동시에 담으려 했다”고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사랑방에서 담배 피우고 농담하는 보통 서민으로 그려지길 바랐다.”

20년 전 4월 초 노 전 대통령을 그의 집(여의도 미성아파트)에서 만난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5공 청문회 스타였다. 청문회는 막판에 정치 타협으로 헝클어졌다. 그 무렵 그는 거기에 반발해 국회의원직 사퇴서를 냈다. 나는 그에게 민심을 들려주었다.

“노 의원만의 정치적 신선함과 용기를 계속 보여 달라는 게 여론이다. 사퇴를 번복하라”고 말했다. 권양숙 여사가 커피를 타 왔다. 그는 “고통스럽고 (번복하는 게) 부끄럽다”고 했다. 며칠 뒤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정치 신념과 브랜드로 키웠다. 때로는 파격과 변조도 있었다. 그리고 정상 도전에 성공했다. 노무현 시대를 열었다. 짧지만 강렬했다. 퇴임 후 그는 귀향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 문화’를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려 했다. 관광 명소 봉하마을도 그런 의지와 구상의 산물일 것이다.

권력은 무상한가. 정치는 허업(虛業)인가. 그의 죽음은 그런 말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노 전 대통령은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하지만 한(恨)마저 없었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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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