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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말은 필요없다

지난 17일 영화인 정승혜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영화계의 손꼽히는 인재였다. 그가 만든 영화도 영화였고 그의 인품도 인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를 함축해 표현하는 카피라이팅에서 그는 탁월했다. 그는 영화를 제대로 읽어 내는 전문성과 신념·철학까지 한 줄에 담아냈다. 그의 표현을 옷으로 입은 영화는 그 가치가 더 높아졌다.

지금 프로야구를 한 줄, 또는 한 단어로 표현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영화로 따지면 ‘넘버3’ 후반부에서 송능한 감독이 보여 준 ‘카오스(혼돈)’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에서 길거리 오락실 ‘두더지게임’의 두더지가 튀어나오듯 문제와 사건이 튀어 올라와 있다. 프로야구라는 ‘판’ 안의 질서와 규칙도 마구 뒤섞여 있다. 순서를 따지기도, 중요도를 저울에 올려 보기도 어렵다. 이렇게 단어 그대로 난무(亂舞)하는 이슈들은, 마치 풀리지 않게 얽힌 실타래 같다.

전직 선수 마해영은 지난주 “약물 복용 선수가 더러 있었다”고 폭로해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 폭로 덕분에 수면 밑으로 내려간 건 뭔가. 월요일 경기와 더블헤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더블헤더를 3년 만에 부활시킨 원칙 없는 행정이었다. 그 원칙 없는 행정 이전에는 뭐였나. “노조를 지금 만들어야겠다”며 노조 설립을 추진한 선수협의회와 “취지는 인정하나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맞선 구단의 대립이었다. 그 이전에 또 있다고? 야구팬을 실망시킨 프로야구 중계권 협상. 개막과 함께 팬들을 인질로 잡았던 그 중계권 협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째깍, 째깍” 소리를 내고 있는 시한폭탄이다.

이 오락실 두더지 같은 문제들을 헤쳐 나가(!)면서 리그가 계속되는 걸 보면 몇 년 전 유행했던 모 스포츠 음료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던 그 한마디. 지금 프로야구는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붕대 감고 한 발에 깁스까지 한 격이다. 그런 프로야구가 그래도 오후 6시30분이 되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운동장 문턱을 넘어서면서 “경기는…”이라고 한마디를 토해 낸 뒤 “플레이 볼!”을 외치는 격이니 말이다. 그러니 장하다고 해야 하나.

그 혼돈의 와중. 일각에서는 남을 탓하고, 특정인을 향해 거침없는 비난을 해 댄다. 그것도 행동으로서가 아닌 ‘말’을 통해서다. 그 말 안에는 동업자 정신, 페어플레이 정신 등 스포츠에선 꼭 지켜야 할 기본 덕목이 상실됐다. 한쪽에서 ‘개구리 돌팔매질’ 같은 일방적인 수사(修辭)로 치고 나오면, 반대쪽에서는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식으로 받아친다. 그 과정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건 뒷전이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무의미한 공방전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건 모 스포츠 용품사의 카피다. 역시 몇 년 전 영어로 나왔던 그 내용은 이랬다. “Shut up and play.” 우리말로 옮기기가 애매했다. 말수가 적고 입으로보다는 방망이로 말을 대신했던 이승엽의 홈런 행진이 한창일 때 “말은 필요 없다” 정도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다 요즘 같은 혼돈을 보고 있자니 좀 거칠고 예의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이런 식의 번역이 오히려 어떨까 싶다.
“닥치고 야구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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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